13-1
von 한용운
순영은 경성에 도착하자 잠시 멍해졌다.
불과 이태 남짓 살았던 곳인데도 그 사이 거리 모습이 제법 달라져 있었다.
새로 생긴 가게도 있었고, 사라진 집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날마다 드나들던 골목이었다.
굳이 사람에게 길을 물을 필요는 없었다.
순영은 천천히 익숙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송씨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문 앞에는 싸리나무를 엮어 대충 만든 등 하나가 걸려 있었다.
흰 종이가 씌워진 그 등이 비에 젖어 축 처져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가는 사람도.
떠드는 소리도.
적막했다.
순영은 괜히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문턱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안쪽을 바라봤다.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천천히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에구, 아씨 오시네!”
부엌 쪽에서 행랑어멈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그리고 순영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에구… 마님이 돌아가셨어요…”
순영은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이 행랑어멈 손으로 넘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뜨거운 눈물이 먼저 쏟아졌다.
“순영이 왔구나.”
마루 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시궁골 김 선달이 담뱃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서 올라오너라.”
순영은 비틀거리듯 마루로 올라갔다.
하지만 시신이 있는 방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방문 앞에 무너져 앉듯 엎드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소리 없이 울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순영은 차차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송씨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 끝에 뇌일혈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이틀 만에 숨을 거두었다.
원래 친척도 거의 없었다.
데리고 살던 여자애들도 이미 다 흩어져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운옥은 목포에 갔다가 다시 함흥 어느 요릿집으로 옮겨 갔는데 병이 들어 오지 못했다고 했다.
집안은 생각보다 더 쓸쓸했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송씨가 죽기 직전—
김 선달과 동네 사람을 불러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원래 사글셋집이었지만, 순영을 팔아 받은 칠백 원 가운데 오백 원을 떼어 전세로 돌려 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집과 세간살이, 옷가지까지—
남은 재산 전부를 순영 앞으로 남겼다.
순영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며칠 동안 그녀는 장례 일에 매달렸다.
초종이며 장지 준비며 모든 일은 김 선달이 도맡아 처리했고, 순영은 그 곁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재산 정리도 해야 했다.
빚을 갚고.
장례 비용을 치르고.
애써 준 사람들에게 조금씩 사례까지 나눠 주고 나니—
마지막에 순영 손에 남은 건 이백 원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 돈은 순영에게 아주 큰 의미였다.
장례가 끝난 뒤 인천으로 돌아가려 할 때—
순영은 문득 대철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정확한 주소를 몰랐다.
결국 만나지 못한 채 그대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송씨 집을 마지막으로 나서던 순간.
순영은 꼭 긴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행랑어멈은 울면서 끝까지 따라 나왔다.
순영은 말없이 돈 십 원을 더 쥐여 주었다.
사숙 친구들이나 예전 알던 사람들도 찾아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나중에…’
정말 행복해졌을 때.
대철과 결혼하고, 더 사람답게 살게 되었을 때—
그때 찾아가고 싶었다.
바람이 불었다.
빗발도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다.
송씨 장례를 치르고 인천으로 돌아온 뒤—
순영의 마음은 이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늘 불안했다.
혹시 송씨가 또 자기를 다른 곳에 팔아버리지는 않을까.
삼 년 기한이 끝나더라도 다시 돈을 요구하며 붙잡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수도 없이 해왔다.
물론 순영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은 한 번 팔린 몸이었다.
그 돈으로만도 이태 동안 길러 준 비용은 충분히 갚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맞서 볼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시끄럽고 창피한 일이 될 게 뻔했다.
그런데 이제는 달랐다.
송씨가 죽으면서 그 걱정 자체가 사라졌다.
게다가 뜻밖에도 자기 손에 이백 원이라는 돈까지 남았다.
그 돈이면—
숙자에게 남은 기한 값을 치르고도 충분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기는 언제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대철과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순영은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불안이 찾아왔다.
대철은 아직 아무 소식도 없었다.
순영은 경성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생각했다.
‘분명 편지가 와 있겠지.’
적어도 짧은 안부 정도는 남겨 놨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마자 물어본 대답은 차가웠다.
“편지? 안 왔는데.”
그 한마디에 순영은 괜히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처음엔 스스로를 달랬다.
‘바쁘겠지.’
금광 출원 때문에 정신없을 테니까.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자—
점점 서운한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 사람 입장이었으면…’
순영은 혼자 생각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편지했을 텐데.’
단순히 자기 소식을 전하려는 게 아니었다.
상대 소식이 궁금해서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점점 야속해졌다.
섭섭했다.
하지만 또 금세 마음이 흔들렸다.
‘아니야…’
혹시 정말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남자는 여자와 다르다고 하지 않던가.
큰일을 앞두면 다른 것에 정신 못 쓰는 사람도 많았다.
아니면—
괜히 자주 연락하면 오히려 자기 마음만 더 흔들릴까 봐 일부러 참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오히려 편지를 기다리며 안달하는 자기 쪽이 더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순영은 매일같이 편지를 기다렸다.
사람 발소리만 들려도 문 쪽을 돌아봤다.
우편 배달부 그림자만 지나가도 괜히 심장이 뛰었다.
그러다가도 아무것도 없으면 괜히 혼자 웃었다.
‘내가 왜 이러나…’
하지만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대철이 떠난 지 스무 날이 넘어서야.
마침내 편지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