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von 한용운
대철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천천히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마… 꽤 늦을 겁니다.”
순영의 표정이 굳었다.
“늦어요?”
“금광이라는 게 출원만 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거든요.”
대철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가서 직접 시굴도 해야 하고, 사람도 써야 하고, 이것저것 손볼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낮게 덧붙였다.
“겨울 안에는 돌아오기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겨울 안에요…?”
순영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지금은 아직 가을 문턱이었다.
그 말은 곧—
몇 달 동안 얼굴도 못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자연히 그렇게 되기 쉽다는 말입니다.”
대철은 일부러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더 빨리 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순영은 이미 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그녀는 힘없이 웃었다.
“어떻게 기다려요…”
순영은 몸을 조금 틀며 애써 웃는 얼굴을 만들었지만, 눈빛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대철은 술잔을 손끝으로 굴리며 말했다.
“만사는 결국 돈을 조금 만들어 놓고 봐야 하니까요.”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시간은 금방 갑니다.”
“……”
“조금 있으면 단풍 들고, 낙엽 우수수 떨어지고…”
그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조금 지나면 눈이 펄펄 내리겠지요.”
순영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쉽게 말하면 그렇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묘한 서러움이 섞여 있었다.
“사람 일생도 잠깐이라고 하면 잠깐이고…”
그녀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삼 년도 금방 간다고 하면 금방 가는 거겠죠.”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하지만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도 있잖아요.”
대철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순영은 낮게 말을 이었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는데…”
그녀의 눈빛이 흐려졌다.
“눈 한 송이 날리는 걸 보며 머리가 세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어떻게 기다려요…”
방 안 공기가 잠시 조용해졌다.
대철은 그런 순영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꼭 그렇게 오래 걸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
“필요하면 그 사이에도 얼마든지 올 수 있겠지요.”
순영의 눈빛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대철은 다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예?”
“결혼 시기는 꼭 지금이어야 합니까?”
순영은 곧바로 대답했다.
“저는 하루라도 빨랐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숨김없이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순영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솔직히 이제 술잔 드는 것도 싫어요.”
그녀는 웃으려 했지만 눈빛은 슬펐다.
“선생님 형편만 괜찮으시면… 저는 내일이라도 하고 싶어요.”
대철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이 집에서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순영은 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현실을 떠올렸다.
“그게…”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네요.”
대철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순영은 조용히 설명했다.
“제가 여기 들어올 때 삼 년 계약을 하고 왔거든요.”
“……”
“햇수로는 삼 년째지만 실제로는 아직 일 년 정도 남았어요.”
그녀는 손끝으로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지금 나가려면 남은 몸값을 물어줘야 할 거예요.”
“얼마나 필요합니까?”
“원래 모아 둔 돈이면 어떻게든 될 뻔했어요.”
순영은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선생님 금광 자금까지 드리고 나면 모자라겠죠.”
그리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면 돼요.”
“순영 씨…”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쓸 수는 없잖아요.”
그녀는 오히려 대철을 위로하려 했다.
“약속만 굳으면 결혼식이 조금 늦어져도 괜찮아요.”
대철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럼 그 백오십 원은 없던 일로 합시다.”
순영이 눈을 크게 떴다.
“왜요?”
“그 돈은 몸값으로 쓰세요.”
대철의 목소리는 갑자기 차가워져 있었다.
“나는 다른 데서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습니다.”
“안 되면 어쩌시려고요?”
“안 되면 할 수 없지요.”
“선생님.”
순영은 급히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 돈 드리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거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선생님 일이 안 되는 것보단 제가 조금 더 고생하는 게 낫잖아요.”
대철은 고개를 돌린 채 말이 없었다.
순영은 애써 밝게 웃으며 술잔을 채웠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마시고 쓰세요.”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저는 선생님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고생할 수 있어요.”
대철은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씁쓸하게 웃었다.
“사내자식이 돈이 없어서 이 꼴이 되니…”
그는 천장을 바라봤다.
“결혼은 무슨 결혼입니까.”
순영은 깜짝 놀랐다.
“에구, 선생님 왜 또 그러세요?”
그녀는 얼른 술잔을 들어 그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떨리는 웃음을 지었다.
“사랑만 있으면 됐지…”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돈이 뭐가 중요해요.”
대철은 결국 그녀 손에 이끌리듯 술을 마셨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그럼 남은 인생은…”
그의 눈빛이 순영에게 향했다.
“사랑 하나 믿고 살아볼까요?”
순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면요…”
그녀는 수줍게 웃었다.
“저는 선생님 위해 살고…”
말끝이 흐려졌다.
“선생님은 저 위해 살고…”
그 순간이었다.
대철이 갑자기 몸을 기울였다.
순영은 깜짝 놀라 몸을 피했다.
거의 입술이 닿을 뻔한 거리였다.
그녀는 미꾸라지처럼 재빨리 몸을 빼며 얼굴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