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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von 한용운

순영은 결국 결심했다.

대철에게 필요한 돈 백오십 원.

그 돈은 자기가 마련해 주기로.

그녀는 그것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기가 대철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운명의 인연 같은 것이라고까지 느껴졌다.

설령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대철이 그렇게 곤란한 처지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자기 힘으로 도울 수 있는 돈쯤 내놓는 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가 혼자 꿈꾸던 미래와는 조금 달랐다.

순영은 원래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대철과 정말 결혼하게 된다면—

결혼한 뒤에도 계속 남의 집에서 술을 따라 주며 살 수는 없다고.

그렇다고 몸이 팔린 처지에서 약속한 기간도 채우지 않고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남은 기간의 몸값을 물어줘야 했다.

삼 년 몸값 칠백 원.

그걸 계산하면 남은 일 년 값은 대략 이백 원 남짓.

지금까지 모아 둔 돈이면 간신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순영은 마음속으로 꿈꾸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생활에서 벗어나—

따뜻한 집에서 대철과 함께 살아 보는 날을.

그런데 그 돈 가운데 백오십 원을 대철에게 주고 나면—

몸값을 치를 돈이 모자랐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순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내 팔자엔 아직 액운이 남았나…’

그녀는 조용히 눈가를 훔쳤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음 날.

순영은 기회만 되면 직접 대철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 대철이 먼저 자기를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어쨌든 다시 만나게는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자기 쪽에서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이미 두 번이나 충분히 마음을 드러냈다.

직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누구라도 알아챌 만큼은 표현했다.

그런데도 대철 쪽에서 아무 말이 없다면—

더는 억지로 붙잡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만약 정순의 말이 사실이라면—

순영은 아무 조건 없이 대철에게 백오십 원을 내줄 생각이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정순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철 역시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조금 전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불안이 스르르 풀어졌다.

달콤한 꿈처럼.

다음 날도 날씨는 흐렸다.

어제 내리던 비가 완전히 개지 않아 공기 전체가 눅눅했다.

황혼이 내려오자 원래라면 아직 환할 시간인데도 거리엔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전등불도 평소보다 일찍 켜졌다.

순영은 몇 번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혹시 대철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다가 문득 마음이 조급해졌다.

‘내가 찾아갈까…’

그녀는 결국 술청 밖으로 나와 대철이 묵고 있는 여관 방향을 바라보았다.

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순영은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옷 갈아입고 직접 가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들어가려던 순간—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멈춰 섰다.

멀리 우산 하나가 보였다.

빗물이 고인 길을 조심조심 골라 걸어오는 사람.

그 모습은 분명—

대철이었다.

순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뛰어나가 맞으려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괜히 먼저 반기는 게 부끄러워졌다.

순영은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는 모란이 앉아 있었다.

순영은 얼른 옷이라도 갈아입고 싶어졌다.

하지만 모란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일부러 태연한 척 말했다.

“에구, 비가 와서 그런가 몸이 후줄근하네.”

그녀는 벽에 걸린 적삼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옷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가장 아끼던 세모시 생풀 적삼을 꺼내 입었다.

치마까지 갈아입으려다 괜히 민망해져 손만 대고 말았다.

그때 밖에서 산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영아, 손님 오셨다.”

순영은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

“어떤 손님?”

“엊그제 밤에 오셨던 손님 말이야.”

순영은 입가를 숨기듯 돌아섰다.

“응… 그래.”

그녀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대철을 보자 얼굴이 환해졌다.

“선생님 오셨어요? 그렇잖아도 제가…”

순영은 하던 말을 멈췄다.

주변 사람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얼른 다른 방으로 대철을 안내했다.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순영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조금 있다가 찾아뵈러 가려 했는데 이렇게 오셨네요.”

하지만 대철의 표정은 어딘가 무거웠다.

“일전에 너무 감사하게 대해 주셔서 인사도 드릴 겸…”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곧 떠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