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von 한용운
“에구, 너는 정말 언제나 말이 번지르르하다.”
순영은 웃으며 말했지만,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돈 있는 사람만 시집가고 장가가면… 돈 없는 사람은 평생 혼자 늙어 죽으란 말이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
그러자 정순이 곧바로 받아쳤다.
“너 정말 하루라도 빨리 시집가고 싶어 죽겠는 모양이다?”
“얘는 또 그런다.”
“그렇게 급한데 지금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니?”
정순은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까지 했다.
“좋아. 내가 지금 당장 가서 김 선생 데려올게.”
“뭐?”
“서 선생은 함진아비 시키고, 나는 들러리 서 줄 테니까 오늘 이 방에서 바로 혼례 올려라.”
“에구!”
순영은 웃으며 정순 팔을 붙잡았다.
“앉아. 놀리지 말고.”
“놀리긴.”
정순은 다시 자리에 털썩 앉으며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표정을 바꿨다.
“근데 있잖아.”
“응?”
“김 선생이 여기 온 건 단순히 너 보러 온 것만은 아니었더라.”
순영의 눈빛이 순간 달라졌다.
“무슨 뜻이야?”
정순은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급한 일이 있었대.”
“급한 일?”
“응.”
정순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어디서 금광을 발견했는데…”
순영의 눈이 커졌다.
“금광?”
“그걸 출원하려면 인지 값이랑 이것저것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없는 거야.”
“……”
“그래서 서 선생 찾아와서 어떻게든 마련해 보려 했는데 잘 안 된 모양이더라.”
정순은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김 선생이 엄청 답답해하더라고.”
순영은 어느새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금광이 아주 싹이 좋은 모양인데…”
정순은 혀를 찼다.
“지금 출원 못 하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나 봐.”
“그럼…”
순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필요한데?”
“인지 값이 백 원.”
정순은 손가락을 접어 가며 말했다.
“거기에 이것저것 비용까지 합하면 한 백오십 원쯤.”
“백오십 원…”
순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돈만 있으면 금광을 차지할 수 있다는 거네?”
“그렇지.”
정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출원만 먼저 해 놓으면 남이 못 가져간다더라.”
순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요즘 금광으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그녀도 많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럼 김 선생은 지금…”
“허탕치고 간 셈이지.”
정순이 씁쓸하게 웃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돈 구해 보겠지만 쉽겠니.”
순영은 턱을 괴었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다른 데 가도 안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네…”
“그러니까 서 선생까지 찾아온 거겠지.”
정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노자까지 떨어진 모양이더라.”
순영의 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
‘백오십 원…’
그 돈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돈도 아니었다.
순영은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까지 푼푼이 모아 둔 돈.
아무도 모르게 숨겨 두었던 돈.
그 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 돈으로—
대철의 앞길을 열 수 있다면?
순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막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정순이 왔구나?”
갑작스럽게 들려온 숙자의 목소리에 두 사람 모두 화들짝 놀랐다.
“너희 둘 무슨 얘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하니?”
숙자가 안쪽에서 걸어 나오며 방 안을 들여다봤다.
순영과 정순은 마치 몰래 나쁜 짓이라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순이 먼저 어색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비도 오고 심심해서 잠깐 놀러 왔어요.”
그러고는 황급히 말했다.
“이제 가봐야겠네요.”
“가긴 왜 가.”
숙자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비도 와서 손님도 없는데 더 놀다 가.”
그러고는 순영을 힐끗 바라봤다.
“우리 순영이 네 얘기 맨날 한다.”
정순은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에요, 그냥…”
하지만 숙자는 이미 술청 쪽으로 다시 걸어가고 있었다.
“놀다 가.”
순영도 얼른 정순을 붙잡았다.
“좀 더 있다 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순은 평소와 달랐다.
“아냐. 오늘은 그냥 갈게.”
그녀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순영은 급히 뒤따라 나갔다.
무언가 꼭 더 해야 할 말이 남은 것 같았다.
하지만 술청 근처에는 사람들 눈이 있었다.
게다가 밖에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순영은 멀어지는 정순의 뒷모습만 바라보다가—
천천히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