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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von 한용운

“그래서?”

순영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빨라져 있었다.

“김 선생님이 그 이야기만 하셨어? 다른 말은 없었고?”

그녀가 정말 듣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정순은 그런 순영의 속을 다 안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저께 여기 와서 네한테 대접 잘 받았다고 엄청 미안해하더라.”

“……”

“그리고 네 칭찬을 얼마나 하는지 아주 입에 침이 마르더라니까.”

정순은 일부러 과장스럽게 말했다.

“아무튼 김 선생은 네게 완전히 반했어. 죽고 못 사는 눈치더라.”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도 그런 사랑 한번 받아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에구 요런.”

순영은 웃는 척하며 정순을 흘겨봤다.

“너야말로 서 선생한테 더 사랑받으면서.”

하지만 입가의 웃음은 감추지 못했다.

정순은 순영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슬쩍 물었다.

“근데 김 선생이 한 가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순영이 눈을 깜빡였다.

“뭘?”

“네 속마음.”

순간 순영의 표정이 굳었다.

“내 속마음?”

“네가 전에 말했잖아.”

정순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살려준 은혜 갚고 싶다고. 종노릇이라도 하겠다고.”

“그랬지.”

“근데 김 선생이 그걸 진심으로 한 말인지, 그냥 인사치레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순영은 곧장 몸을 일으켰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단호했다.

“사람이 왜 그런 걸 거짓말해?”

“……”

“목숨 살려준 은인인데.”

순영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너 같으면 그런 사람한테 거짓말할 수 있겠니?”

정순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순영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나는 정말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그분이 원하신다면 종노릇이라도 하면서 은혜 갚고 싶어.”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정순은 그런 순영을 한참 보다가 갑자기 물었다.

“그러면 말이야.”

“응?”

“김 선생이 결혼하자고 하면 하겠니?”

순영은 순간 숨이 막혔다.

“얘는 갑자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고 웃어야 할지 숨겨야 할지 몰라 시선까지 흔들렸다.

정순은 피식 웃었다.

“왜, 저번 월미도 갔을 때 내가 중신 서 준다고 했잖아.”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나는 허튼말 안 해.”

정순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진짜 네 마음만 있으면 내가 중신 서 줄게.”

순영은 웃으면서도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그럼… 그이가 정말 그런 생각이 있다는 말이야?”

정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 이야기를 직접 꺼낸 건 아니야.”

“……”

“근데 잘못하면 너 때문에 병나겠더라.”

순영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에구, 너 정말…”

“진짜라니까?”

정순은 키득거리며 말했다.

“약 지어 들고 다니면서 병구완하지 말고 빨리 허락이나 하래.”

순영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답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쉽지 않았다.

그건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로서의 삶 전체가 걸린 문제였다.

순영은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나는… 그분이 원하시는 거라면 못 할 게 없어.”

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였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어.”

“……”

“근데…”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분이 정말 나 같은 여자랑 결혼하려 하겠니.”

그 말 속에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정순은 그런 순영을 보며 말했다.

“근데 김 선생이 한 가지 꺼리는 게 있더라.”

순간 순영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 때문은 아니야.”

정순은 손을 저었다.

“형편 문제지.”

“형편?”

“응.”

정순은 조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김 선생이 지금 사정이 많이 어려운 모양이더라.”

순영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결혼이야 하고 싶지만…”

정순은 대철의 말을 전하듯 천천히 말했다.

“생활이 안 되는데 어떻게 데려가서 고생시키냐고 하더라.”

순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럼…”

그녀는 숨을 삼켰다.

“정말 나랑 결혼할 마음은 있다는 거네?”

“그럼.”

정순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도 없는데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겠니?”

그리고 조금 몸을 앞으로 숙였다.

“사실 나도 처음엔 남자 말이라 못 믿었어.”

“……”

“그래서 몇 번이나 다시 물어봤다니까?”

정순은 피식 웃었다.

“근데 김 선생도 진심 같고, 서 선생도 그러더라.”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돈은 없어도 사람은 반듯하고 장래성 있는 사람이라고.”

순영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있잖아.”

정순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김 선생이 네 칭찬한 게 얼굴 때문만은 아니더라.”

“……?”

“보통 여자 같으면 목숨 구해준 일도 금방 잊어버리는데, 너는 아직까지 은혜를 갚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게 대단하다고 하더라.”

순영의 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

“자기 욕심 때문에 그런 여자를 데려다 고생시키는 게 맞겠냐고도 하고.”

정순은 혀를 찼다.

“그 말 듣는데 나도 괜히 감탄했다니까.”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다.

“너희 둘, 진짜 신기하게 잘 만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