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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結婚)

von 한용운

순영은 즐거움과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어느덧 열여덟 살이 되어 있었다.

봄이 순영에게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순영 안에서 봄이 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순영은 봄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다. 몸도 봄이었고 마음도 봄이었다. 살결에서 풍기는 냄새가 봄의 향기라면, 감정 속에서 피어오르는 공상은 봄의 꿈 같았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어떤 이성을 마음속에 그려 보기도 하고, 아직 오지 않은 행복을 손끝으로 미리 맛보려 하기도 했다.

그날은 하늘이 맑고 공기마저 후덥지근한 여름날이었다. 숙자의 집에서는 술집 계집애들을 한 달에 두 번씩 돌아가며 쉬게 해주는 날이 있었는데, 마침 그날이 순영 차례였다. 순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월미도 조탕에 가서 해수욕을 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를 마친 순영은 손님들에게 팁으로 받은 돈을 조금 찾아 챙겼고, 숙자가 점심 사 먹으라며 준 일 원도 보태었다.

전날 같이 가기로 약속한 정순이 일찍 찾아왔다.

“정순이냐? 일찍 왔구나. 들어와.”

순영은 반갑게 맞아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지금 가면 너무 이르지 않을까? 들어와서 조금 놀다가 가자.”

하지만 정순은 고개를 저었다.

“조탕은 일찍 가야 좋은 자리를 잡지. 조금만 늦어도 사람들로 꽉 차서 앉을 데도 없어. 지금 가도 늦을지 몰라.”

“그럼 지금 갈까?”

순영이 손목시계를 보더니 입을 벌렸다.

“어머, 벌써 열 시가 다 됐네. 지금 가면 열한 시쯤 되겠는데?”

“그러니까. 지금 가도 늦을 것 같아. 어서 가자.”

둘은 서둘러 길을 나섰다. 상인천역에서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더욱 걸음을 재촉했다. 서울에서 오는 차가 도착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자리를 빼앗길까 봐서였다.

월미도로 가는 정기 자동차 앞까지는 먼저 도착했지만, 차는 사람들을 더 태우느라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애를 태우며 운전수에게 재촉했으나 소용없었다. 순영은 순간, 세상 남자들이 모두 저 운전수처럼 남의 사정에 둔하다면 처녀들의 봄이 가을까지 시들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생각을 떨치려 애쓰며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일찍 출발한 덕분에 조탕에는 먼저 도착했다. 이층에는 아직 빈자리가 남아 있었고, 두 사람은 바다 쪽으로 시원하게 트인 자리를 골라 앉았다. 핸드백이며 수건, 부채를 늘어놓아 마치 사람들이 더 와 있는 것처럼 꾸며 두고는, 다른 사람이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그런 뒤 욕탕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탈의장에 나온 순영은 옷을 입으려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몸을 보고 잠시 멈췄다. 희고 윤기 나는 살은 따뜻한 물기 때문에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고, 마치 보석으로 만든 인형처럼 보였다. 부끄럽고도 신비한 느낌에 사로잡힌 순영은 자기 몸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이런 몸을 내어주는 건 욕되고 죄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울타리 없는 집처럼 허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조촐하고 믿음직한 품에 안기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일어났다.

다시 이층으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맡아 둔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순영은 그것이 그렇게도 반가웠다. 두 사람은 과자를 먹고 사이다를 마시며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순영은 월미도 남쪽 바다를 멍하니 보다가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너 왜 그래?”

정순이 묻자 순영은 말했다.

“나는 왜 그런지 바다를 보면 가끔 슬퍼져.”

정순도 덩달아 눈물이 고였다. 둘은 서로를 보고 웃었지만, 순영이 지난해 봄 숙자에게 얻어맞고 죽으러 나왔던 그 바다를 보며 우는 까닭은, 서해 바다와 월미도만이 아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