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von 뮤즈 · 2026-03-16
지후가 자신의 티와 바지를 가져와 건냈다.
지후: 입어, 그렇게 하고는 못 나가.
그리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남자로 변했어도 마음은 여자다. 남자가 지켜보는 앞에서 옷을 갈아 입을 수는 없었다.
내가 주춤거리자 지후가 금방 눈치채고 문 밖으로 나갔다. 항상 느끼지만 눈치 하나는 꽤 빠른 녀석이다.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오자 휙 던진 내 슬리퍼가 발끝에 걸렸다.
지후: 신어. 밖에 나갈 거면.
슬리퍼도 역시 자기거다. 내건 신을 수가 없다.
지윤: 알아.
발을 넣으며 후드 모자를 다시 눌러썼다. 이 얼굴로, 이 키로, 이 체격으로 밖에 나가는 게 아직도 너무 무서웠다. 문을 나서자, 복도 형광등 아래 선 지후가 나를 한번 훑었다.
지후: 걷는 것도… 달라졌네.
지윤: 뭐가.
지후: 여자일 땐 발끝 조용히 디뎠는데, 지금은… 그냥 성큼성큼이야.
지윤: 그걸 굳이 말해줘야 되냐.
지후: 어색해서.
지윤: …나도 어색해.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지후는 입을 다물었다. 승강기 안에 들어가자, 거울이 또 있었다. 어색한 남자 둘.
아니, 남자 하나와… 남자가 된 여자 하나.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모자 챙이 얼굴 반 넘게 가려졌다.
지후: 너.
지후가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말했다.
지훈: 모자 너무 누르지 마. 오히려 더 수상해.
지윤: 그럼 어떻게 하냐.
지후: 그냥 평소처럼. 시크하게.
지윤: …씨.
그 말에, 모르게 입이 약간 비틀렸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표정.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병원은 집에서 가까웠다. 걸어서 10분. 그 10분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내 직장이기도 한 이 병원이 오늘은 너무나 낯설고 두렵다.
혹시 누가 쳐다보는지 계속 주위를 살폈다. 누가 나를 아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누가 “지윤 씨?” 하고 부르면? 누가 나를 남자로 착각해서 말을 걸면? 몸은 익숙하게 움직이는데, 머리는 계속 피하고만 있었다. 지후가 내 옆에서 말했다.
지후: 걱정하지 마. 아는 사람 만나면 내가 다 설명할게.
지윤: 뭐라고 설명할 건데.
지후: 교통사고? 성형수술? 도플갱어?
지윤: …제발 입 다물어.
지후: 알았어.
병원에 들어서자 익숙한 로비가 낯선 장소처럼 보였다. 나는 여기서 일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출근해서 카드 찍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환자 데이터 정리하고, 인사하고, 야근하고…
오늘, 이 얼굴로 여기 서 있다.
지후: 어지러우면 벽 잡아.
지윤: …아니.
그러나 나는 이미 벽에 손을 대고 있었다. 지후가 접수 창구로 가서 설명을 했다. 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입 열면 또 그 낮은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지후가 와서 설명했다.
지후: 일단 내 보험으로 접수했어.
지윤: 왜? 그러다 걸리면...
지후: 바보야, 네 이름으로 접수하면 더 쉽게 걸릴거다.
할말이 없다.
정밀 검사 우선 예약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차갑고 밝았다. 기계음, 간호사들의 발소리, 소독약 냄새. MRI 기계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라 하자, 나는 멍해졌다.
지윤: 지후야.
지후: 응?
지윤: 나… 옷… 어떡해.
지후가 내가 입은 트레이닝 바지를 보더니,
지후: …아,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는데?
지윤: 남자 환자복이잖아.
지후: 지금 네 몸 남자야.
지윤: 그래도… 나… 속옷…
내가 그 말을 입에 올린 순간, 지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잠깐, 서로 말이 없어졌다.
지후: …아.
지후가 턱을 긁적였다.
지후: 그건… 어떡하지.
지윤: 네가 왜 고민해. 내 문젠데.
지후: 그냥… 네가 불편하면…
지윤: 불편하지. 존나 불편하지.
지후: …응.
결국 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넓어져버린 어깨 때문인지, 남자 환자복이 더 잘 맞았다. 그게 너무 끔찍했다. MRI 안으로 들어갔을 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보다도 숨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위잉~
두구두구~
철컥~
검사 내내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게 진짜라면… 나는 이제 여자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다, 그냥 호르몬 문제일 거라고 머리로는 부정하면서도 신체는 아무리 봐도 ‘남자’였다. 눈가가 다시 뜨거워졌다. 기계 안에서 울면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해서, 입술만 꽉 깨물었다.
MRI를 마치고 나오니, 지후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후: 괜찮아?
지윤: 몰라.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갈라졌다. 지후가 나를 쳐다보는 눈이 조금 흔들렸다. 피검사, 신체검사, 혈압, 맥박, 호르몬 수치.
검사하는 직원이 말했다.
“남성 호르몬 수치가… 상당히 높네요.
혹시 보충제를 따로 드시나요?”
나는 대답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지후가 대신 말했다.
지후: 아뇨. 아무것도.
다음은 의사 상담.
의사는 내 자료를 보고, 내 얼굴을 보고, 한참을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의사: 음… 이 분야 전문 팀으로 넘기는 게 좋겠습니다. 수치가… 일반적인 경우와 많이 다르네요.
지윤: 제가… 원래 여자예요.
내 입에서, 스스로 그 말이 튀어나왔다. 의사의 표정이 굳었다.
의사: …뭐라고 하셨죠?
지윤: 어제까지… 여자였어요.
지후가 끼어 들었다.
지후: 갑자기 이렇게 변했어요. 오늘 아침에.
의사는 웃는 것도 아니고, 진지한 것도 아닌 애매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는 표정 같았다.
의사: 음… 제가 농담을 이해 못한 것 같은데...
지윤: 농담 아니에요.
나는 손등을 내밀었다. 햇빛을 받지못한 여성용 시계의 끈자국이 좁고 하얗게 보였다.
“어제까지… 제가 이 몸 아니었어요.”
의사는 대답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 아침에 성별이 변하다.
상상이나 했겠는가.
의사: … 혹시 성정체성 문제 이시거나 한 거면 정신과나 가정의학과 쪽으로…
말을 잘랐다.
지윤: 그런게 아니예요. 전 정신 건강한 여자 였어요.
난감한 의사가 대답을 짜내느라 고생하는 것 같았다.
의사: …이건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저희 병원 내에서도, 연구 쪽 팀에서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은 결국, “의료진조차 설명할 수 없다.” 는 뜻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식은땀이 났다. 지후가 내 손목을 잡았다.
지후: 나가자. 일단 나가.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로비로 내려오자,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중 일부는 나를 흘끔 봤다. 나는 모자를 더 눌러썼다. 지후가 문을 잡아줬다.
지후: 이제, 어디 갈 거야?
나는 알았다. 이 문제가 이 병원 수준에서 해결될 게 아니라는 걸. 이 모든 게 시작된 곳은 하나였다.
지윤: …루멘 바이오.
지윤: 거기 다시 가봐야 해.
지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우리는 병원 밖으로 걸어나왔다. 햇빛이 이전보다 훨씬 날카롭게 느껴졌다. 루멘 바이오 클리닉 근처에 다다르자, 건물은 어제와 똑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더 음산해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지윤: 지후야.
지후: 응?
지윤: 나… 무서워.
지후가 옆으로 와서 작게 말했다.
지후: …나도 무서워.
잠시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후가 말했다.
지후: 근데 네가 혼자 가라고 해도… 난 같이 갈 거야.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문으로 향했다.
지윤: 좋아.
자동문이 ‘칙’ 하고 열렸다.
그 순간.
여의사: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놀람도, 반가움도 아닌… 공포에 가까운 경악.
여의사: "……윤… 지윤 씨?"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내 이름을 보자마자 알아본다는 것. 이 얼굴로. 이 모습으로. 이 키로.
지후가 옆에서 속삭였다.
지후: …야, 방금 뭐라 그랬냐.
나는 작게 속삭였다.
지윤: 내 이름… 불렀어.
여의사가 카운터에서 일어났다.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여의사: 어떻게… 이렇게 빨리…
지후가 당장 앞으로 튀어나가 막았다.
지후: 잠깐만요. 뭐가 빠르다는 건데요.
여의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다가오며 속삭였다.
여의사: 혹시… 어젯밤에 아무도 안 왔죠?
나는 멍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윤: 누구… 오긴 누가 와요.
그 순간, 여의사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여의사: 망했다…
그녀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여의사: 정말… 망했어…
지후가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쳤다.
지후: 설명이나 해요. 지금 당장.
그녀는 카운터 쪽 전산 모니터를 재빨리 껐다. 그리고 문 쪽을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의사: 지윤 씨. 그리고… 친구분.
여의사: 일단… 안쪽으로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