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벼락 맞고 로그아웃
von 뮤즈 · 2026-03-11
내 스펙을 소개하지.
이름, 김철수.
키 197cm, 체중 150kg.
뚱뚱하다고?
아니다. 통뼈에 나머지는 근육이다. 체지방률은 고작 10%. 흔히 말하는 '근육돼지' 완성형이다.
이 정도 피지컬이면 길 가다가 어깨빵? 그딴 건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먼저 길을 터준다.
가끔 헬스장 전단지 나눠주는 형들이 쭈뼛거리며 먼저 스카우트 제의를 할 정도다.
"저기 회원님… 혹시 트레이너 말고, 저희 센터 '가드'로 일해보실 생각은…?"
직업?
지금은 서울 변두리 체육관 관장님이지만, 왕년엔 [헤비급 격투기 동양 챔피언]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덩치 빨로 챔피언 먹은 줄 안다.
이거 엄청난 오해다.
나, 섬세한 남자다.
그라운드 기술? 예술이다.
스탠딩 타격? 내 발차기 궤적은 태권도 국가대표도 울고 갈 정도로 우아하다.
근데 왜 지금은 이 모양이냐고?
세상은 불공평하거든.
관중들은 '작은 놈이 큰 놈을 때려눕히는 반전'에 열광하지, '큰 놈이 기술까지 써서 작은 놈을 압살하는 팩트 폭력'은 재미없어하더라고.
"에이, 쟤는 피지컬 빨이지."
"노잼. 밸붕이네."
덕분에 스폰서 안 붙어, 경기 안 잡혀.
결국 강제 은퇴하고 동네 체육관 관장으로 전직했다.
아, TMI 하나 더.
나 고아다.
부모님 얼굴 모른다.
어릴 때 내가 워낙 많이 먹어서 식비 감당이 안 돼 버린 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 중이다. 원장님 말씀으론 내가 돌 때 이미 밥솥 하나를 다 비웠다니까.
하지만 반전 매력 하나 더.
나, 공부 잘했다.
장래 희망은 과학자였다.
격투기는 돈이 없어서(학원비 안 드니까) 선택한 길이었지만, 머리는 비상했다.
챔피언 상금 타자마자 뭐 했게?
차? 명품? 여자?
아니.
건물 샀다.
서울 변두리 낡은 상가 하나를 경매로 싸게 낙찰받아서, 2층엔 체육관을 차리고 옥상엔 내 방을 올렸다. 월세 없이 내 건물에서 먹고 자고 운동한다.
이게 바로 [뇌섹남의 재테크] 아니겠냐.
안 그랬으면 지금쯤 편의점 폐기 도시락이나 까먹고 있었겠지.
아무튼, 자기소개는 여기까지.
결론.
보기에는 무서워 보여도 나는 지극히 건전하고, 상식적이고, 준법정신 투철한 시민이다.
조폭? 그런 어둠의 세계랑은 1도 관련 없다.
* * *
날씨, 죽이는 날이다.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랗고, 구름 한 점 없다.
수능 끝난 지 며칠 안 돼서 그런가, 도로도 뻥뻥 뚫려 있다.
이런 날은 뭐다?
라이딩이다.
부우우웅.
내 애마, 50cc 스쿠터 '뽈뽈이'가 힘차게 비명을 질렀다.
솔직히 나도 안다. 2미터 가까운 거구가 이 조그만 스쿠터에 접혀 타 있는 모습이 남들 눈엔 '곰이 서커스단 세발자전거 훔쳐 타고 도망가는 꼴'로 보이겠지.
하지만 이 녀석, 착하다. 150kg을 태우고도 불평 없이 굴러간다.
이것이 바로 과학의 승리, 내연기관의 기적이다.
"으으… 근데 머리가 좀 띵하네."
헬멧 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는데도 숙취가 가시질 않는다.
어제 너무 달렸나 보다.
그럴 만도 하지. 내 수제자, 강지훈 녀석이 드디어 사고를 쳤으니까.
한국 챔피언. 내 체육관에서 배출한 첫 챔피언이다.
녀석이 챔피언 벨트를 차고 엉엉 울던 모습이 생각나서, 기분이 째지는 바람에 소주를 물처럼 들이부었다.
그런데 3차쯤 갔을 때였나? 필름이 살짝 끊겼다.
'내가 지훈이 녀석한테 뭘 준다고 했던 거 같은데…….'
희미한 기억 속에 번쩍거리는 간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법무법인 태산].
술 취해서 거기까지 택시 타고 가서, 변호사 멱살 잡고 뭐라고 떠들었던 것 같은데.
각서를 썼나? 아니면 보증을 섰나?
'에이, 설마. 내가 아무리 취해도 보증은 안 서지. 뇌섹남인데.'
기억은 안 나지만 별일 아닐 거다.
아마 기분 좋아서 녀석한테 용돈이나 좀 쥐여줬겠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잡생각을 털어냈다.
다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상쾌한 바람, 적당한 엔진 진동. 모든 것이 완벽한 출근길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 건널목 앞,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나는 또 이런 거 못 지나치는 '프로 오지라퍼'다.
브레이크를 잡고 갓길에 세웠다.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 보니…….
"……!"
어린 여학생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아주 작은 소녀.
얼굴이 미친 듯이 하얗다.
창백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그냥 투명해져서 사라질 것 같았다.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떡해, 어떡해!"
"누가 신고 좀 해봐!"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들었다.
"비키세요! 119 불렀어요?!"
사람들이 끄덕였다.
나는 바로 무릎을 꿇고 상태를 확인했다.
코 밑에 손을 댔다. 숨이 없다.
가슴에 귀를 댔다. 심장이 안 뛴다.
뺨에 손을 대봤다. 차갑다. 마치 얼음장처럼.
'아… 늦었나?'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의사가 사망 선고 내리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운동선수 필수 코스, 심폐소생술 자격증 보유자 김철수 나가신다.
나는 양손을 깍지 끼고 소녀의 가슴 중앙을 압박했다.
하나, 둘, 셋, 넷!
"제발! 눈 좀 떠라, 아가씨야!"
"아직 갈 때 아니잖아! 숨 쉬어!"
온 정성을 다해 흉부를 눌렀다.
이 작은 몸이 부서질까 봐 겁났지만, 지금은 살리는 게 우선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번쩍.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섬광.
콰아아앙!
……응?
지금 날씨 맑음 아니었나? 구름 한 점 없었는데?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그리고 그 수억 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떨어진 벼락이,
하필이면, 착한 일 하고 있는 나의 뒤통수에 정확히 꽂혔다.
찌리리릿!
전신이 타들어 가는 고통.
눈앞이 화이트아웃 되며 세상이 꺼져갔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와, 씨. 억울해서 어쩌냐.'
'나 착한 일 하고 있는데…….'
'하느님, 이건 아니잖아요. 잘못 쏘신 것 같아요…….'
그리고, 천하의 김철수는 그대로 로그아웃되었다.
로그아웃된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