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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를 지키는 미친개

von 외인 · 2026-09-06

점심시간. 급식실은 전쟁터처럼 시끄러웠다.

나는 식판에 밥을 고봉으로 퍼 담고, 제육볶음을 산처럼 쌓아두고 먹고 있었다.

이민지: 설아 너 진짜 잘 먹는다.

여학생2: 근데 살은 왜 안 쪄? 억울해.

민지와 친구들이 부러운 듯 쳐다봤다.

나는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설아: 기초대사량이 높아서 그래. 너네도 새벽 5시에 뛰면 이렇게 됨.

이민지: 으, 절대로 안 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내 시선은 자꾸만 구석 테이블로 향했다.

백유리. 녀석은 밥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마른 애가 요즘 얼굴이 반쪽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옆 반의 '일진 호소인'들. 박혜진과 김소영 무리가 앉아 있었다.

박혜진: 야, 유리야. 너 이번 시즌 신상 샀어?

여학생1: 우리 이번 주말에 풀빌라 가자. 네가 예약할 거지?

박혜진이 유리의 식판에 있는 소시지를 쏙쏙 집어가며 깔깔거렸다.

유리는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 어… 그래. 알았어.

표정이 썩어 있다. 집에서는 그렇게 도도하게 굴더니, 학교에서는 완전 호구가 따로 없다.

자기가 싼 똥(호구 짓)은 자기가 치워야 하는데, 쟤는 지금 치울 힘도 없어 보인다.

'저 바보 같은 게.'

나는 젓가락을 딱 내려놓았다.

지난 2개월 동안 지켜봤다.

유리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운동하고 오면 식탁에 물병을 툭 놓고 간다거나, 새엄마가 잔소리하려 하면 은근슬쩍 화제를 돌려주기도 했다.

크리스마스에 라면을 나눠 먹었고, 생강차를 타 왔고, 옷장에 걸어만 놓으라며 원피스를 사 줬다.

결론 : 백유리는 나쁜 년이 아니라, 센 척하는 쫄보다.

설아: 민지야.

이민지: 응?

설아: 나 먼저 일어난다.

나는 식판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이민지: 어? 야! 고기 남았잖아! 설아 너 어디 가!

민지가 경악하며 불렀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잔반을 남기는 건 김철수 인생에 큰 죄악이지만, 지금은 잔반보다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보였으니까.

나는 식판을 반납하고, 매점으로 향했다.

덜컹. 자판기에서 차가운 캔 커피 하나를 뽑아 들었다.

단순히 마시려는 게 아니다. 이건 훌륭한 [투척 무기]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식당을 빠져나가는 박혜진 무리와 그 뒤를 힘없이 쫓아가는 유리의 뒤를 밟았다.

방향은 체육관 뒤편. CCTV 사각지대. 학교 폭력의 국룰 장소다.

체육관 뒤쪽, 낡은 창고 벽 뒤.

나는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

박혜진: 야, 백유리. 너 요즘 좀 뻣뻣하다?

리더 격인 박혜진이 유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옆에 있던 김소영은 유리의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김소영: 내가 빌려달라는 가방, 왜 안 가져왔어? 까먹었어?

유리: 아니… 그건 엄마가 아끼는 거라 안 된다고 했잖아. 다른 거 가져왔잖아.

김소영: 하, 엄마 핑계. 야, 너희 아빠 친아빠 아니라며?

움찔.

유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선 넘네, 저것들.

유리: ……그 얘기는 하지 마.

김소영: 왜? 찔려? 야, 솔직히 너네 집에서 너 찬밥인 거 다 알아. 네 언니가 진짜라며?

박혜진이 킥킥대며 웃었다.

드디어 내 얘기가 나온다.

박혜진: 그 병신… 아, 아니지. 병자 언니? 걔 오늘내일한다던데. 야, 걔 죽으면 그 재산 다 네 거 되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리한테 좀 써도 되잖아. 미리 땡겨 쓴다 생각하고.

우드득.

내 손에 들려 있던 캔 커피가 찌그러졌다.

유리가 주먹을 꽉 쥐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어 피가 날 것 같았지만, 대들지는 못했다.

여기서 대들면, 그나마 유지하던 '무리'에서 쫓겨나 다시 철저한 혼자가 될 테니까.

그 외로움이 무서워서 버티는 거다. 미련하게.

혼자 트리를 켜 놓고 앉아 있던 크리스마스가 무서워서.

박혜진: 말 좀 해봐. 벙어리냐? 너네 언니처럼 심장이라도 멈췄어?

박혜진이 손을 올려 유리의 이마를 툭 밀치려는 순간.

캉!!!

무언가가 박혜진의 발치 바로 옆, 시멘트 바닥에 꽂혔다.

찌그러진 캔 커피였다.

안에 있던 갈색 액체가 튀어 혜진의 흰 양말을 적셨다.

박혜진: 악! 뭐야 씨발!

박혜진과 무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봤다.

나는 벽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뿔테 안경을 검지로 치켜올리며.

설아: 아, 미안. 손에 땀이 나서 미끄러졌네.

유리: ……?!

유리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유리: ……백설아?

박혜진이 인상을 구기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펑퍼짐한 교복, 촌스러운 안경. 만만해 보였는지 곧바로 표정이 험악해졌다.

박혜진: 뭐야, 이 찐따는? 야, 너 여기 왜 왔어? 미쳤냐? 꺼져.

일진들은 내가 아직도 1학년 때의 '병약한 투명 인간'인 줄 아나 보다.

하긴, 지난 한 달 동안 학교에선 공부만 하는 너드 코스프레를 했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다가갔다.

뚜벅뚜벅.

설아: 찐따라니 섭섭하네. 나 아주 펄펄하거든?

나는 유리 앞을 막아서며 등 뒤로 녀석을 숨겼다.

그리고 박혜진과 정면으로 눈을 맞췄다.

겨울방학 특훈 덕분에 키는 내가 좀 더 크다. 시선이 내려다보는 각도가 나온다.

설아: 야, 너네 입에서 내 얘기가 나오길래. 내 욕하는 건 상관없는데.

나는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박혜진이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 눈빛. 뿔테 안경 너머, 링 위에서 상대 선수를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던 그 '살기'를 살짝 풀었다.

설아: 패드립은 좀 아니지 않냐? 가정교육 독학으로 배운 티 내는 것도 아니고.

박혜진: 뭐… 뭐? 이 미친년이!

박혜진이 욱해서 손을 치켜들었다.

내 뺨을 때리려는 기세였다.

뒤에서 유리가 비명을 질렀다.

유리: 언니! 너 미쳤어? 얘네 일진이야!

오, 급하니까 언니네. 훌륭하군.

물론 나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을 들이밀었다.

설아: 쳐봐.

박혜진: ……어?

박혜진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때리라고 대주는데, 내 눈이 웃고 있지 않아서 멈칫한 거다.

나는 눈을 희번덕거리며(이건 광기 어린 연기 100%다) 낮게 속삭였다.

설아: 나 심장병 있는 거 알지? 너네가 방금 그랬잖아. 오늘내일한다고.

나는 내 가슴을 톡톡 쳤다.

설아: 여기 작년에 세 번이나 멈췄었다는 거 알지? 툭 치면 억 하고 죽을 수도 있어. 그럼 넌 바로 살인자 되는 거야. 뉴스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나오겠네? '여고생 일진, 병약한 급우 때려 사망'… 와, 타이틀 죽인다. 그치?

박혜진: ……!!

박혜진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때리고 싶어도 때릴 수가 없다.

내가 진짜로 쓰러져서 119라도 실려 가면, 얜 인생 종치는 거다.

이게 바로 [병약함]을 이용한 최강의 방어술이다.

설아: 왜? 못 치겠어? 쫄려?

나는 박혜진의 귓가에 대고, 예전 김철수 시절, 체육관에 행패 부리러 온 양아치들에게 썼던 가장 저렴하고 살벌한 말투로 속삭였다.

설아: 그러니까 적당히 해라, 꼬맹아. 내 동생 한 번만 더 건드리면.

나는 입꼬리만 올려서 씩 웃었다.

설아: 그땐 내가 심장마비로 죽는 한이 있어도, 귀신 돼서 네 머리채 잡고 지옥까지 같이 갈 거니까. 알았냐?

박혜진은 얼어붙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보였다.

주변에 있던 쫄병들도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자기들이 알던 그 '순한 호구 설아'가 아니었다.

이건 그냥 '눈 돌아간 미친개'였다.

설아: 가자, 유리야.

나는 멍하니 서 있는 유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갔다.

등 뒤에서 박혜진이 자존심 챙기려고

박혜진: 야! 거기 안 서! 씨발!

하고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리고 있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왼손을 들어 쿨하게 답해주었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물론 머리 위로 말고, 어깨 아래로 살짝. 난 품위 있는 재벌가 딸이니까.)

건물 뒤편 벤치까지 와서야 나는 유리의 손을 놓았다.

유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유리: ……너.

설아: 어.

유리: 미쳤어?

첫 마디가 그거냐.

설아: 그래, 미쳤다. 얌전히 있는 사람 건드리면 미치는 거지.

유리: 아니, 쟤네가 누군 줄 알고… 쟤네 아빠가 학교 운영위원이고… 우리 엄마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유리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겁에 질린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일이 커질까 봐, 그리고 억울하고 분해서.

나는 자판기에서 이온 음료 하나를 더 뽑아 유리 볼에 대주었다.

유리: 앗, 차가!

차가운 캔이 닿자 유리가 움찔했다.

설아: 운영위원이고 나발이고. 넌 백도훈 회장 딸이야. 꿇릴 게 뭐가 있어?

유리: ……그래도.

설아: 그리고, 쟤네 친구 아니잖아.

내 말에 유리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유리: ……알아. 아는데… 혼자 다니기 싫단 말이야. 나도 너처럼 왕따 되기 싫다고…….

아. 이 바보 같은 게.

외로움이 무서워서, 혼자가 되기 싫어서 그 모욕을 참으며 호구를 자처했다는 거네.

나는 한숨을 쉬고 벤치에 털썩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 하늘을 한번 올려다봤다.

설아: 야, 백유리.

유리: …….

설아: 왕따가 뭐 어때서. 그리고 너 이제 왕따 아니야.

유리가 눈물을 닦으며 나를 쳐다봤다.

설아: 언니가 있잖아.

나는 캔 뚜껑을 탁 따서 건네주었다.

설아: 앞으로 심심하면 나랑 놀아. 저런 싸구려들한테 돈 쓰지 말고, 나랑 맛집이나 가. 라면도 끓여 주고.

유리는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코를 훌쩍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리: ……재수 없어.

근데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드디어 웃었네, 여우 동생.

설아: 그래, 나 재수 없다. 근데 쫌 든든하지?

유리: ……메롱.

그날 오후. 5교시 쉬는 시간.

박혜진 패거리들이 또 우리 반에 왔으나, 유리는 더 이상 박혜진 눈치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박혜진이 째려보자,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슬그머니 내 자리로 와서, 내 책상 위에 젤리 한 봉지를 툭 던져주고 갔다.

쪽지도 없이, 말도 없이.

나는 젤리 봉지를 들고 피식 웃었다.

[시스템 : 동생 '백유리'가 파티에 합류했습니다.]

[칭호 획득 : 여우를 지키는 미친개]

학교생활, 이제 좀 할 만해지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지 정확히 일주일 뒤.

우리 반의 확성기가 내 앞에 나타났다.

김세린: 아, 진짜! 백설아 너 그거 안 벗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