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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빛의 저격수

von 일곱날의빛

콰앙—!

지하 사격장의 석벽이 낮게 울렸다. 눅눅한 공기 속으로 화약 냄새가 훅 번졌다.

마도총의 맑은 스파크 소리와는 전혀 다른, 귀 안쪽을 긁는 둔탁한 폭음이었다.

폭음이 석벽을 한 바퀴 돌아 내 갈비뼈로 되돌아왔다. 소리가 아니라 몸으로 받는 충격이라는 걸, 첫 발에 알았다.

“컥……!”

어깨가 뒤로 꺾이며 나는 석판 위를 굴렀다. 팔꿈치가 쓸려 화끈거렸고, 손바닥에는 쇳덩이의 진동이 웅웅 남아 있었다.

그래도 총신은 놓지 않았다.

마정석도 오팔빛 코어도 없는, 강철과 화약뿐인 총.

그 투박한 무게가 어린 어깨를 비웃듯 짓눌렀다.

“자세가 무너졌습니다.”

관람석 난간에 기댄 줄리앙이 회중시계를 손바닥에 올린 채 말했다.

지하 사격장의 불빛은 낮고 누랬다. 석벽에 맺힌 물기가 불빛에 번들거려서, 쏟아진 총성이 아직도 벽 안쪽을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잿빛 눈동자에는 걱정도 비웃음도 없었다. 시계 태엽만이 착, 착, 일정하게 굴러갔다.

“마력은 뼈와 근육이 버텨 줄 때 비로소 정밀해집니다.

이 정도 반동도 받아 내지 못하는 몸에 마도총을 쥐여 줄 수는 없습니다.”

철창 너머에서 팀원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단 위 창으로 스며든 눈 녹은 물이 벽을 타고 똑, 똑 떨어졌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시간을 세는 것 같았다. 똑, 하고 떨어질 때마다 어머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는 기분이었다.

지하는 바깥보다 더 추웠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고, 석판에 닿은 무릎에서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어젯밤 처음 내린 눈이 지붕에서 녹아 이 깊은 곳까지 스며든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입안에서 비릿한 쇳맛이 났다.

탄환을 하나씩 밀어 넣고 화약을 다지는 손가락이 자꾸만 떨렸다. 조준선은 총의 무게에 출렁였다.

총신 끝의 표적은 개미만큼 작았다. 저 점 하나를 못 꿰뚫어서 어머니를 못 구한다면, 세상은 너무 터무니없이 작은 문으로 닫혀 있는 셈이었다.

마력으로 탄도를 비틀 수도, 충격을 흘려보낼 수도 없었다. 오직 몸으로 받아야 했다.

화약 연기가 코끝을 스친 순간, 아득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볼트의 눈을 피해 들어간 허름한 창고 뒤편.

서글프면서도 단단한 눈빛의 사내가 낡은 화약총을 어린 내 손에 쥐여 주고, 작은 어깨를 꾹 잡아 주었다.

“총은 어깨 힘으로 받아치는 게 아니란다, 셀레네. 발끝에서부터 뼈의 축을 세우고, 튀어 오르는 충격을 몸 전체로 삼켜서 흘려보내야 해.”

바스티안 삼촌.

그가 심어 준 감각이 피멍 든 어깨를 따라 서늘하게 깨어났다.

그 가르침 덕에 나는 어두운 저택에서도, 비 내리던 그날 밤에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반동을 거스르지 마. 뼈로 씹어 삼켜.’

그날 삼촌은 내 어깨에 무거운 손을 얹고 말했다. 처음엔 아파서 울어도 돼. 그런데 울면서도 놓지는 말거라.

총을 놓는 순간이 사람이 지는 순간이란다. 어린 나는 대답 대신 울면서 방아쇠를 당겼다.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는, 울면서도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때 삼촌의 손바닥은 장갑처럼 두껍고 따뜻했다. 기름 냄새와 쇠 냄새가 밴 그 손이 어깨에 얹혀 있는 동안은, 반동이 조금 덜 아픈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은 몸보다 앞서 달렸다. 저택 지하에 홀로 남은 어머니의 얼굴이 스쳤다.

지금 당장 볼트의 이마에 탄환을 박고 싶은데, 정작 나는 화약 한 발에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콰앙—!

또 어깨가 꺾였다. 세 번째, 다섯 번째, 일곱 번째.

넘어질 때마다 석판의 냉기가 뺨에 닿았고, 일어설 때마다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 이를 악문 건 오기가 아니라 약속 때문이었다.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되풀이할수록 소맷단이 피에 젖어 무거워졌다.

피는 곧 차게 식었다. 식은 피는 아프지 않았다. 아픈 건 그 아래서 다시 터지는 살갗이었다.

손바닥의 물집은 이미 터져 장갑 안쪽이 끈적했다. 그 끈적임이 피인지 땀인지 구분하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체력은 형편없는데 오기 하나는 독하구먼.”

지크가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손안에서 굴리던 돌멩이가 얼결에 푹 꺼졌다.

루체는 터뜨리려던 물방울을 입술 앞에 둔 채, 웃음기 가신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이 동정이 아니라는 게 다행이었다. 동정에는 갚을 길이 없지만, 걱정에는 괜찮다고 답할 수 있으니까.

열 번째. 열한 번째.

“컥, 쿨럭……!”

어깨뼈가 부서지는 듯했다. 무릎이 꺾였다.

난간에 팔을 짚고 말없이 보던 레이너의 미간이 어느새 깊게 패어 있었다.

“그만하지, 셀레네.”

레이너의 목소리가 사격장의 소음을 갈랐다.

“열네 살 몸으로 화약 저격총 반동을 열 번 넘게 받는 건 무리다. 뼈에 금 가기 전에 내려놔.”

“어깨 충격 누적 수치가 한계를 넘었습니다.”

줄리앙이 태엽을 멈췄다.

“더 쏘면 사수로서의 수명만 깎일 뿐입니다.”

나는 바닥을 짚은 채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아직이에요.”

갈라진 목소리가 이 사이로 새어 나왔다.

“아직 백 미터 표적 중앙을 꿰뚫지 못했어요.”

‘이 방아쇠 하나 못 누르면 엄마를 구하러 갈 자격도 없어.’

그 문장을 되뇌자 이상하게 숨이 길어졌다. 엄마라는 두 글자가 아직 내 안에서 연료로 쓰이고 있었다.

그 글자를 입안에서 굴릴 때마다 아픈 곳이 한 군데씩 뒤로 물러났다. 오래 외운 기도처럼, 뜻을 따지기도 전에 몸이 먼저 따랐다.

부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섰다. 개머리판을 쇄골 깊숙이 밀어 넣자 멍든 살이 비명을 질렀다.

조준경 너머, 백 미터 밖 붉은 점이 작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심장 밑바닥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 움직였다.

처음 총을 쏘던 그 밤의 열기. 하지만 이번에는 밖으로 터져 나가지 않았다.

오팔빛 기운이 핏줄을 타고 올라와 뼈와 근육, 그리고 눈 속으로 가라앉듯 스며들었다.

안으로, 더 안으로 눌려 들어가며 뼈마디를 단단히 조여 갔다.

스르륵—

눈앞이 서늘해졌다. 흑청색 눈동자 위로 오팔빛이 번졌다.

거짓말처럼 떨림이 멎었다.

비틀리던 손가락이 풀리고, 묵직하던 총신이 내 골격과 하나로 맞물렸다.

“어……? 어깨 떨림이 완전히 멈췄는데?”

루체가 눈을 크게 떴다.

“마력을 밖으로 내뿜지 않고 몸 안에 눌러서 뼈를 받치고 있어. 저 나이에 반동을 몸속 마력으로 씹어 삼킨다고?”

줄리앙의 손에서 태엽이 처음으로 딱 멈췄다.

시계 소리가 멎자 사격장이 갑자기 넓어졌다. 이 사람이 시간을 재는 일을 잊은 건 처음일 거라고 직감했다.

그림자 속에서 카론의 눈이 번뜩였고, 지크는 웃음을 거두었다.

신엘은 입가에 손을 올렸다. 놀라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아주 오래 기다려 온 사람처럼.

더는 조급하지 않았다. 숨을 들이쉬고, 반쯤 내쉬고, 멈췄다.

콰아앙—!

탄환이 바람을 찢고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지만 내 어깨는 물러서지 않았다. 몸속에 눌러 둔 오팔빛이 반동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아픔이 더는 나를 이기지 못했을 뿐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갈비뼈 사이로 열기가 천천히 빠져나갔다. 어깨는 여전히 떨렸지만, 그 떨림은 이제 온전히 내 것이었다.

툭—

백 미터 밖 표적지 정중앙이 깨끗하게 뚫렸다.

귓속이 윙윙 울렸다. 코끝에는 화약 냄새와 눈 녹은 물 냄새가 뒤섞여 있었고, 갈라진 입술에서는 피 맛이 났다.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픈데도 그 아픔이 낯설지 않은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연기가 걷히는 사격장에서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관람석을 올려다보았다.

관람석의 시선이 한꺼번에 내게 모여 있었다. 감탄도 걱정도 아닌, 방금 일어난 일을 믿어도 되는지 가늠하는 눈빛들이었다.

난간 앞으로 걸어 나온 레이너의 묵빛 눈동자가 내 눈에 번진 빛과 공중에서 맞물렸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4년 전 눈 속의 소년도, 지난 열흘 동안 복도 끝에서만 보이던 그도 짓지 않던 표정. 나는 그 표정을 얼른 마음 깊은 곳에 접어 넣었다.

접어 넣은 자리가 괜히 간지러웠다. 이런 것에 마음을 쓸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그 표정은 접히지 않는 종이처럼 자꾸 모서리를 세웠다.

“줄리앙. 화약총 훈련은 여기까지다.”

줄리앙이 안경테를 고쳐 쓰고 오동나무 총집을 열었다.

흑철빛 마도총 한 자루가 누워 있었다.

“실전만을 위해 깎아 낸 아르카눔의 걸작입니다.

총성과 섬광을 안쪽에서 거의 다 지워 주고, 적은 마력으로도 탄환을 밀어 주는 압축 회로가 달려 있습니다.”

피멍 든 손으로 총자루를 감싸 쥐자 겨울 밤하늘처럼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에 척 감겨 왔다.

소리도 빛도 없이 적의 심장만 꿰뚫을 진짜 칼날.

그 순간 총신의 룬 각인이 하나, 둘 점등되려 했다.

희미하게 번지던 빛이 꺼졌다.

소리도 없이.

방금까지 내 몸을 채우던 오팔빛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흩어졌다.

줄리앙의 손가락이 시계 위에서 멈췄다. 레이너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반응이 있다가 끊겼군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손안의 총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내 안에 가득하던 빛이, 어째서 이 총 앞에서만 사라진 걸까.

레이너가 총집 뚜껑을 천천히 닫았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오늘 본 건 이 방 밖에서 입에 올리지 마라.”

명령이라기보다,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조용히 건네는 경고처럼 들렸다.

그 목소리가 낮았던 건 비밀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를 아주 오래 두려워해 온 사람 같았다.

나는 대답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어깨의 열이 식어 가는 자리에 이유 모를 한기가 들어찼다.

천장 너머에서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눈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오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는 그것이 착각이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