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빛의 저격수
von 일곱날의빛
저택에서 가장 깊고 은밀한 지하 정비실.
석탄 난로 위 무쇠 팬에서 밤이 톡, 톡 튀는 소리가 났다. 껍질이 갈라지며 고소한 단내가 기름 냄새와 놋쇠 가루 냄새 사이로 번졌다.
바스티안은 이마에 올려 둔 확대경을 내려 권총의 격발 장치를 들여다보다가 손을 멈추었다.
방금 전 빗줄기 너머로 서늘한 빛이 번쩍였다가 사라지는 것을 창으로 보았다.
마력이 흐르지 않는 몸이라 그 빛이 무엇인지는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안다고 생각했다. 그 빛이 어떤 아이의 것인지.
비 냄새가 섞여 들어오는 창틈 쪽으로 바스티안은 한동안 시선을 두었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빗줄기만 남아 있었는데도, 눈을 떼지 못했다.
난로 곁에는 구운 밤을 담은 종이봉투가 놓여 있었다.
새벽마다 석탄 투입구를 통해 건네던 몫이었다.
봉투 속 밤은 한 알씩 골라 담은 듯 모양이 곱고 고르게 익어 있었다. 건네지 못한 새벽이 며칠째 쌓였다는 뜻이었다.
봉투 하나하나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구석에 눌린 자국은 오늘은 건넬 수 있을까 싶어 몇 번이나 쥐었다 놓은 흔적이었다.
그는 짙은 갈색 머리칼 아래로 기름때 묻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평소엔 빛을 잃은 듯 서늘한 회청색 눈동자가 총을 만질 때만 칼날처럼 예리해지는 사내였다.
마력이 없는 몸으로 그 빈자리를 살점이 찢어지는 수련으로 메워 제국 최고의 사수이자 정비사가 되었다.
맘몬의 총기 정비사라는 이름 아래, 십수 년을 다른 얼굴로 살아왔다.
손목에는 불에 그을려 멈춘 마도 시계가 감겨 있었다. 바늘은 열한 시 사십 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스테리아 공방이 불타던 날, 스승이 그의 손에 쥐여 준 것이었다. 스승이 직접 만든 한 쌍 가운데 스승 자신의 몫이었다. 제 몫의 나머지 한 짝은 안주머니 깊이 품고 다녔다.
‘스승님.’
눈을 감으면 아직도 선했다.
둥근 별자리 모형을 가로지르는 별빛 문양 아래, 남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딸에게만은 지독하게 엄격하던 사람.
스승은 딸을 ‘마탄의 수호자’로 키우려 했다. 손가락 피부가 찢어져도 총자루를 거두지 않았다.
야망이 아니었다. 총을 쏘는 여인이 이용당하기 쉬운 세상이라,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고 제 몸을 지키게 하려던 거칠고 서툰 부성애였다.
그 훈련이 끝난 것은 레나가 스무 살이 되던 여름이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고백에 스승은 분노했고, 레나는 평범한 엄마로 살겠다며 공방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뒤 공방은 불길에 삼켜졌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스승이 시계를 쥐여 주며 말했다.
“레나에게는…… 내 죽음의 진실을 알리지 말게. 그 아이가 평범하게, 당당하게 살게 해 주게…….”
그래서 레나는 지금도 모른다. 그날의 불길 속에 지금 자신을 때리는 남자의 손도 섞여 있었다는 것을.
바스티안이 그 남자의 총을 닦으며 사는 이유였다.
탁, 탁.
공구장 뒤 벽면의 쇠문이 안쪽에서 두 번 울렸다. 바스티안은 확대경을 올리고 공구장을 밀어냈다.
쇠문이 열리고, 석탄 가루와 빗물에 젖어 검게 늘어진 버건디빛 머리칼 아래로 상처투성이 얼굴이 드러났다.
“……아저씨.”
이름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으로 불러 온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 바스티안의 손끝이 멈췄다. 오래 들어온 호칭인데도 그 소리는 한 번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손가락이 터지도록 훈련받다 숨어 울 때마다, 말없이 다가와 붕대를 감아 주던 사람을 부르던 말.
“오셨습니까, 레나 님.”
바스티안은 낡은 담요를 어깨에 둘러 주고 난로 곁 종이봉투를 레나의 두 손에 쥐여 주었다.
“셀레네 몫이었습니다.”
따뜻했다. 얼어붙은 손바닥에 종이를 뚫고 온기가 스며들자, 레나의 어깨가 소리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셀레네가…… 살아 있어요. 그 빛을 봤어요. 아저씨, 저 애를 찾아야 해요.”
“압니다. 저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저택을 나서는 순간, 레나 님은 사냥개들이 그 아이를 쫓는 데 쓰는 미끼가 됩니다.”
레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바스티안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아이는 스스로 길을 찾았을 겁니다. 제가 가르친 대로 반동을 흘려보내면서요.”
그는 공구장 서랍에서 천에 싼 권총을 꺼내 레나의 떨리는 손 위에 얹었다.
레나는 천을 한 겹씩 풀었다.
작은 총이었다. 손바닥을 겨우 넘는 길이에 총신은 가늘고 낮았다. 닳은 호두나무 손잡이가 처음부터 레나의 손을 위해 깎인 것처럼 손안에 들어앉았다.
총을 뒤집은 레나의 숨이 멎었다.
약실 아래, 손톱으로 긁어야 보일 만큼 가는 선이 새겨져 있었다. 고리를 꿰뚫는 별.
어릴 적 매일 아침, 아버지의 작업대 모서리에서 보던 문양이었다.
“이건……”
“스승님께서 레나 님께 드리려고 깎다 만 총입니다.”
바스티안은 눈을 내리깔았다. 거짓은 아니었다. 다만 전부도 아니었다.
“공방이 무너지던 날 틀과 부품 몇 개를 건져 두었습니다. 십수 년을 서랍 속에 두었다가, 이번 달에야 맞췄습니다.”
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엄지로 별을 쓸었다.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다시.”
일곱 살에도, 열 살에도, 열다섯 살에도. 마디가 터져 붕대가 피로 눅눅해져도 아버지는 총을 거두게 하지 않았다.
“총은 누구를 해치려고 쥐는 게 아니다. 네 뒤에 선 사람이 도망칠 시간을 벌려고 쥐는 거다.”
“쏠 때는 적을 보지 마라. 네가 보아야 할 것은……”
그때는 그 말이 지긋지긋했다. 다른 집 딸들은 인형을 안고 자는데 왜 나만 총을 닦아야 하느냐고, 헛간에 숨어 이를 악물고 울었다.
아버지는 다정한 말을 할 줄 몰랐다. 안아 주는 법도 몰랐다.
그런데 이 작은 쇠붙이를 쥐고서야 알았다.
아버지는 모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딸을 먹잇감으로 삼을까 봐, 딸의 손가락이 터지는 것으로 미리 값을 치르게 했던 것이다. 입으로는 하지 못한 사랑을 총자루에 실어 건넸던 것이다.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이 지금은 상처가 아니라 대답처럼 느껴졌다. 그 굳은살이 있었기에 오늘 이 쇠문 앞까지 올 수 있었다.
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저씨. 저는 아버지가 미웠어요. 오래도록요.”
“압니다.”
“그런데 셀레네가 끌려가던 밤에야 알았어요.”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애가 맞는 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쥐지 못한 채 서 있어야 했을 때…… 그제야요.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레나는 총을 두 손으로 감싸 가슴께로 끌어당겼다. 갓난 셀레네를 안아 올리던 자세 그대로였다.
쇠의 차가움이 천천히 손바닥의 온기에 물들어 갔다. 총이 아니라 아이를 안은 것처럼 레나의 팔이 조심스러워졌다.
“아버지는 이런 마음이었던 거예요. 제가 미워해도 상관없었던 거예요. 제가 살아만 있으면.”
바스티안의 어금니가 소리 없이 맞물렸다.
스승이 피를 토하며 그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과 같은 마음이었다. 지금 입을 열면 진실이 함께 쏟아질 것 같아, 그는 손목의 멈춘 시계를 꽉 쥐었다.
한참 뒤에야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왔다.
“이 총을 지니십시오. 신호가 되는 것은 이 총의 총성입니다. 저택 밖에서 기다리는 네메시스가 그 소리에 맞춰 길을 엽니다. 때가 되면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이것을 몸에 숨긴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맞고 계셔야 합니다.”
“그 정도는 4년 동안 해 왔어요.”
담담한 대답이 바스티안의 가슴을 베었다. 레나는 총신 안을 더듬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 총, 마정석이 거의 비어 있어요.”
“예. 한 발뿐입니다. 이 저택 안에서 몰래 모을 수 있는 마력으로는 그게 전부입니다. 레나 님의 불씨가 다시 타올라 주어야, 그 한 발이 닿습니다.”
한 발.
레나는 손바닥에서 깜박이던 작은 점을 떠올렸다. 4년 만에 되살아난, 꺼질 듯 말 듯한 그 불씨를.
한 번도 총구를 들지 못한 채 딸을 빼앗긴 어미에게, 한 발이면 충분했다.
“……할 수 있어요. 해낼게요.”
“레나 님.”
“걱정 마세요. 죽을 생각은 없어요.”
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젖은 속눈썹 아래 눈이 오랜만에 불씨처럼 단단했다.
“복수하려고 쏘는 게 아니에요. 그 애가 돌아올 길을 열려고 쏘는 거예요. 돌아왔을 때 엄마가 살아서 서 있어야 하니까요.”
그녀는 구운 밤이 든 종이봉투를 품속에 넣었다.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아버지가 제게 쥐여 주신 걸, 이제 제가 그 애에게 쥐여 줄 차례예요. 총이 아니라…… 살아갈 시간을요.”
바스티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제가 먼저 쓰러지면, 전해 주세요. 엄마는 한 번도 그 애를 쭉정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고.”
“직접 전하십시오. 그러라고 드리는 총입니다.”
“……고마운 건 저예요, 아저씨.”
레나는 총을 천으로 다시 감싸 품에 넣었다.
레나가 담요 속에서 웃었다. 오래 닫혀 있던 문이 아주 조금 열린 사람의 웃음이었다.
난로 불빛이 레나의 젖은 머리칼을 따라 붉게 일렁였다. 바스티안은 그 모습이 어린 레나가 처음으로 표적을 맞히던 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날이 밝기 전에 레나는 다시 쇠문 속으로 사라졌다.
쇠문이 닫히는 소리는 아주 작았다. 그 작은 소리가 4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처럼 들렸다는 것을, 바스티안만이 알았다.
난로 위 밤은 어느새 타서 껍질이 까맣게 눌어 있었다.
탄내가 방 안에 가만히 퍼졌다. 그는 팬을 내리지 않았다. 다음 새벽에 건넬 몫을 처음부터 다시 구워야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바스티안은 손목의 고장 난 시계를 가만히 매만졌다.
‘레나 님, 이 총이 당신을 지켜 줄 마지막 방패라는 건 저도 압니다. 동시에 제가 거는 가장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도요. 이 사실을 끝내 말씀드리지 못하는 게 제일 괴롭습니다.’
맘몬의 수장을 불러들인 황궁의 속내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볼트가 저택을 비우는 밤은 흔치 않았고, 이 밤을 놓치면 다음 기회는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