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ließen

세상은 널 비추지 않아. 기억할 뿐.

von 제이여라

​

​

서늘한 총구가 세 사람을 둘러쌌다. 레베카가 몸을 돌려 달려왔다. 그녀의 온 얼굴이 일그러졌다.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레베카는 그대로 크리스와 세라를 감싸 안으려고 두 팔을 벌렸다. 단말마처럼 총성이 울렸다. 피가 주변으로 튀겼다.

​

“엄마……?”

​

크리스가 쓰러진 레베카를 안아 들었다. 그녀는 눈을 반쯤 뜬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하얀 손끝 위로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크리스는 계속해서 레베카를 흔들었다.

​

엄마. 크리스가 천천히 그녀를 불렀다.

​

대답이 없었다.

​

크리스의 중얼거림이 허무하게 사그라졌다.

​

그녀의 피부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

세라가 비명을 내질렀다.

​

“엄마!”

“시끄러워!”

​

군인 한 명이 다시 총을 겨누었다. 철컥, 쇳덩이들의 마찰음이 방안을 울렸다. 크리스는 휘청이는 세라를 부축했다. 군인들 사이에서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한 사람이 레베카를 발로 찼다.

​

“명령대로 처리 완료. 목표는 살아있군.”

​

크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

무언가 잘못되었다. 본능에 따라 크리스는 손바닥을 펴 눈을 가리고 세라를 감싸 안았다. 군인들 중 한 명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

“이렇게 공을 들여 달랠 필요없다. 그냥 데려가. 시간이 없어. 황명이 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

큰 굉음이 집 안에 울렸다. 집 문이 부서진 것 같았다. 군인들이 술렁이며 총구를 뒤쪽으로 겨누었다. 챙이 아주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우아하고 섬세한 몸짓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

“누구냐!”

​

크리스는 순간 넋을 놓았다. 상황에 맞지 않는 표현이었지만 그녀가 싱긋 웃는 입꼬리가 마치 사람이 아닌 듯 아름다웠다. 허벅지까지 풀어진 머리카락은 자아를 가진 듯 구불구불 움직이더니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한 군인의 목덜미를 낚아채 그대로 벽에 꽂아 넣었다.

​

겨우 상황을 파악한 군인들이 그녀를 향해 총을 일제히 쐈다. 그녀는 날개가 달린 듯 가뿐히 총알들을 피하며 한 명씩 숨을 끊었다. 그 비현실적이게 아름다운 모습에 크리스와 세라는 두 눈을 깜빡였다. 후, 숨을 내쉰 그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머리를 올려 묶었다. 그러곤 천천히 크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크리스가 세라를 안고 다시 몸을 웅크렸다.

​

“음, 혹시 상황을 이해 못 한 건가?”

​

가까이 다가온 그녀의 얼굴은 상황에 맞지 않지만 황홀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도자기처럼 생긴 걸까. 마치 하나하나 공들여 세공한 것처럼 각져있다. 리에는 힐끔 레베카를 바라보다 활짝 웃었다.

​

“그래도 늦지 않았네.”

“다, 다가오지 마!”

​

세라가 급하게 말을 막았다. 크리스가 세라를 쳐다봤다.

​

“아무리 봐도 너랑은 초면인데 널 어떻게 믿어? 우리도 죽일 생각이지? 아니면 어두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던가……!”

​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세라에게 눈을 맞췄다.

​

“반은 정답, 반은 틀렸어. 어두운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난 밝은 곳에서 왔어.”

“뭐?”

​

크리스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녀가 천천히 허리를 펴며 모자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

“그러면 신뢰의 의미로 눈과 이름을 보여줄게. 내 이름은 리에.”

​

그녀의 눈동자는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에는 세라에게는 맨손을, 크리스에겐 흰색 머리카락 덩이를 내밀었다. 머리카락을 잡고 일어서는 느낌은 묘했다.

​

“네 어머니의 일은 유감이야. 내가 늦었어.”

​

리에는 레베카를 포함한 사상자를 모두 땅에 묻어주었다.

​

묻는 그 순간까지도 세라는 레베카의 손을 놓지 못했다.

​

“우리 엄마 추운데⋯⋯.”

​

크리스는 세라를 껴안아주었다.

​

리에는 천천히 그녀의 무덤을 내려다보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

“……당신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네요.”

​

세라는 만들다가 만 목도리를 천천히 무덤에 둘러주었다. 아직 다 뜨지 않은 짧은 목도리였다.

​

레베카는 항상 목도리를 길게 만드는 걸 좋아했다. 목에 감으면 누군가 안아주는 것 같다나.

​

세라는 항상 레베카를 위해 긴 목도리를 뜨려 했지만 실패하곤 했다.

​

“미안해, 난 또 엄마한테 줄 목도리를 만들지 못했어.”

​

이제는 영원히 주지 못하게 된 목도리.

​

그 위로 눈이 내렸다.

​

세라는 고개를 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

크리스는 흐느끼는 세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 허공에서 멈추었다. 거친 바람이 세 사람을 감쌌다.

​

몸과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행복이란 유리와도 같다는 말을 책에서 본 기억이 있다. 가장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깨지면 그만한 아픔이 없다고…….

​

온몸에 유리 조각이 박힌 듯한 고통.

​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크리스와 세라를 감쌌다.

​

“가자.”

​

리에가 손짓했다. 크리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

“어디로 가는 거야. 도와준 건 고맙지만, 우리가 아직 널 믿어야 하는 이유는 없어.”

“너희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마침 있어서. 예를 들면 장로라던가. 너희도 돌봐주겠대.”

​

리에는 천천히 크리스와 세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세라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

“엄마⋯⋯.”

“응?”

“엄마는 어떻게 해? 우리 엄마 혼자 놔두면 안 돼.”

​

휘청이는 세라를 부축하며 크리스가 말했다.

​

“엄마 물건이라도 챙기게 해줘. 부탁할게.”

​

그 말을 마지막으로 크리스는 세라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리에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근처 벽에 기대섰다.

​

집 안으로 들어가던 크리스의 발치에 무언가 치였다.

​

레베카의 거울이었다.

​

크리스는 천천히 거울을 들어 올려 주머니에 넣었다.

​

“다 챙겼어?”

​

리에가 고개를 까딱이며 앞장섰다.

​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나무엔 불이 붙어 있었고 어제 봤던 우리 집도, 빵집도 전부 다 타서 재가 돼버렸다. 그 광경을 멍하게 보던 세라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

“워워, 울지마. 예쁜 아가씨.”

​

리에가 세라의 어깨 위로 머리카락 덩이를 올렸다. 세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리에를 바라봤다.

​

“애초에 네가 늦게 오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직 살아있었을지도 몰라⋯⋯.”

“으음⋯⋯.”

​

리에의 낯빛이 약간 변했다. 리에가 이어 말했다.

​

“맞아. 난 항상 한발 늦더라.”

​

세라의 이마 위에 핏줄이 솟았다. 달려들 기세의 세라를 겨우 말린 크리스가 리에에게 물었다.

​

“목적이 뭐야.”

“목적이라⋯⋯.”

​

리에가 잠깐 고민에 빠지더니 고개를 저었다.

​

“아직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래도 한 가지는 알려줄게. 네 어머니는 그냥 고아원 선생님이었는데 왜 군인에게 최후를 맞아야 했을까?”

​

크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

“질문의 답을 원해? 우리가 도와줄 수 있어. 일단 가서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리에는 그들을 사방이 가려져 있는 마차에 데려갔다. 리에가 돈뭉치를 건네자 마부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그들을 숨겨주었다. 마차는 끝없는 오솔길을 달렸다. 리에한테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도 리에는 아무런 말 없이 그 수려한 입꼬리를 위로 올릴 뿐이었다.

​

마차가 멈춘 곳은 숲 한 가운데였다. 그들이 내리자 마부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 사라졌다. 세라가 말했다.

​

“여긴 어디야. 집 같은 것도 보이지 않잖아.”

“여기서부턴 걸어가야 해.”

​

리에가 앞장서며 천천히 손짓했다. 그렇게 다시 오랫동안 숲 속을 걸어가니 아주 작은 폐가가 나왔다. 리에가 폐가의 바닥을 더듬자 다락문이 하나 나왔다. 리에는 다락문을 열고 두 사람을 다락문 안쪽으로 밀었다.

​

“뭐, 뭐하는 짓이야!”

​

그렇게 밀려온 다락문의 안쪽은 또 다른 숲 속이었다. 그런데 뭔가 다른 숲과는 달랐다. 크리스와 세라의 상식 속에선 숲이란 구불거리는 나무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었는데 이 숲은 나무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올곧게 뻗어 있었고 나뭇잎이 없었다. 동물의 울음소리나 풀벌레가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도 않았다.

​

“여긴 어디야.”

“자, 안쪽. 집 보이지?”

​

시선을 옮기자 아주 큰 저택이 서 있었다. 아니, 저택이 아니라 대저택이라 불릴 정도로 크고 앙상한 집이었다. 리에는 두 사람의 어깨를 잡고 다시 대저택의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엄청난 힘으로 밀려난 두 사람은 어느덧 대저택의 거실 안쪽에 서 있었다.

​

“너희로구나.”

“누구야?”

​

커튼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천천히 사람 형체를 띄었다. 목소리는 그 형체에서 나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