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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歸家)

von 한인택 · 2026-03-20

명순이는 어머니가 여전히 변교장을 칭찬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어머니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명순이는 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깨진 화병에 다시 꽃을 꽂아줄 사람도 없고, 그런 요구도 없었다. 꽃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거절한다면 그 화병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운명이었다. 마음이 있든 없든 바람 부는 대로 돛을 다는 것이 최선이었다.

해가 저물도록 어머니와 딸은 그리워하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명순이는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변교장 집으로 놀러 가기로 했다. 변교장의 집이 익선동에 있다는 말만 들었지, 가본 적은 없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앞서 걷는 어머니는 마치 큰 나무처럼 명순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변교장의 집은 대궐처럼 화려하고 웅장해. 응접실만 봐도 함흥의 목부인 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야.”

“그 방에 걸린 시계만 해도 삼백 원짜리라니, 정말 좋더라.”

명순이는 그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풍족해 보였다.

하지만 변교장의 능글맞은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넓은 길을 오가는 남자들이 모두 창선이와 같은 사람처럼 보였고, 변교장과도 비슷해 보였다. 그들이 분주히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어떤 음침한 곳으로 가는 무리처럼 느껴졌다. 월춘이에게서 들은 그곳은 모든 깨끗한 여자를 집어삼키려는 곳 같았다. 믿음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는 기생들! 화려한 자동차에 몸을 실고 가벼운 양복을 입은 신사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추악한 경성의 밤이 크고 깊은 입을 벌리고 수많은 생명을 삼키려는 것 같았다. 경성은 확실히 죽어가는 것 같았다. 황금에 저주받은 무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다니는 것 같았다. 오직 솔직한 중학생들만이 살아 있다는 듯이 활발하게 오갔다. 그들은 썩어가는 고목의 뿌리에서 힘차게 돋아나는 새싹 같았다. 명순이는 그들이 얼른 자라서 힘 있는 주먹으로 사회의 모든 어둠을 부숴주기를 바랐다.

명순의 어머니는 익선동에 있는 변교장 집 대문 앞에 서서 발을 멈추며 말했다.

“바로 이 집이 변교장의 집이야.”

이렇게 말하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명순이도 뒤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넓지는 않지만, 시내의 뜰로는 넓다고 할 만한 곳이었다. 키가 낮은 상록수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고, 작은 연못도 있었다. 명순이는 어머니 뒤를 따라 꼬불꼬불한 좁은 길을 걸어갔다.

“이쪽 반양식으로 지은 집이 변교장이 지금 있는 집이란다.”

어머니는 명순이가 듣고 있든 말든 그렇게 말하며 반양식으로 지은 집의 층층대로 올라갔다. 하인의 안내로 명순이와 어머니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응접실은 어머니가 말한 대로 화려했다. 폭신한 안락의자와 금은색 장식품들이 눈을 부시게 했다. 벽에는 값비싼 명화들이 보기 좋게 걸려 있었다. 방 안 곳곳의 들창 옆에는 ‘수선화’, ‘싸이클라멘’, ‘데이지’ 등의 꽃 화분이 놓여 있어 이 방만은 봄이 온 것 같았다. 그 꽃들이 내뿜는 향기가 기분 좋게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명순이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함흥 만세교 건너 큰 돌배 나무 아래의 오막살이 집이 더 그리웠다. 황금이 낳은 모든 장식은 대자연에 싸여 있는 초가집만 못했다. 명순이는 이 모든 화려한 것들이 사람을 유혹하려는 헛된 수작으로 보였고, 돈 있는 사람들의 자랑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보아도 진정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명순이는 광교다리 아래에서 떨며 이치운 밤을 지내는 거지들이 떠올랐다. 집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지내다가 돼지 시체처럼 죽어가고, 돈 있는 사람들은 손님을 대접하는 방을 이렇게 화려하게 꾸미니 없는 사람들이 불평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그런 거지들이 만약 이 방으로 들어온다면, 집 주인은 즉시 쫓아낼 것이다. 반면에 돈 있는 소위 신사들이 오기만 하면 두 손을 내밀고 갖은 애교를 부리며 안내할 것이다. 이 얼마나 인생의 모순인가?

그들은 확실히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명순이와 어머니가 이 방으로 들어온 지 십 분이 넘어서야 변교장이 들어왔다.

변교장은 명순이를 보고 말했다.

“아! 참 늦어서 죄송합니다. 명순씨가 오신 줄 알았더라면 바로 나왔을 텐데, 안에서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

이렇게 능글맞게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명순이는 변교장을 대면하자 한시라도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었다. 어쩐지 자신의 몸이 이전보다 더 부자유하게 느껴졌고, 모든 것이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몸이 변교장에게 달린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래, 그동안 고생은 하지 않았나요?”

변교장은 난로에 석탄을 퍼 넣으면서 물었다.

“별로 고생은 안 했습니다.”

명순이는 머리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변교장은 기지개를 켜고 나서 말했다.

“그것 참 다행입니다. 세상이 고약하니까 어머니도 앉아 계시지만, 많이 걱정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속을 성가시게 하지 않고 빨리 돌아온 것만은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듣는 명순이는 속으로 ‘뻔뻔한 자식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명순이가 말도 잘 하지 않고 변교장의 질문에도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

“공연히 집을 훌쩍 나갔다가 돌아오니 부끄러워서 어미를 보고도 잘 이야기를 안 하니 참 딱한 아이지.”

“하하! 물론 그러실 것이지요. 집을 나간 것을 후회하시니까 그러시겠지요.”

“이 애야, 이야기를 좀 해라. 그래, 돈까지 보내주신 분에게 인사 한마디 여쭙지 않니?”

어머니는 초조하게 재촉했다.

하지만 명순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안타깝고 슬퍼서 입을 꼭 깨물고 있었다.

“그 사이 명순씨가 떠나신 뒤 학교에서도 대단히 곤란을 겪었습니다. 만일 명순씨가 다른 여자 같았으면 퇴직을 시키고 새 선생을 보충했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어 다른 선생들에게 말씀드려 명순씨가 담임하신 반을 연이어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가장 동정하는 체하는 모습이 미워서 명순이는 맞잔단을 놓았다.

“참 고맙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니.”

자기를 반대하는 소리인 줄은 모르고 변교장은 속으로 흥겨워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어쨌든 내일부터 학교로 다시 출근하십시오.”

하고 말하는 그는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그러나 명순이는 이제 교원 노릇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저녁 먹는 밥조차도 마음에 없는 것으로 그저 손버릇 삼아 먹는 터였다. 명순이는 죽어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고마운 것도 기쁜 것도 슬픈 것도 깨달을 수 없을 만큼 무감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 태도는 어머니나 변교장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냉정했다.

“학교를요? 한 번 나온 사람이 왜 또 들어가겠습니까? 다른 선생을 채용하십시오.”

“학교에 무슨 불만이 있어 그러시나요?”

“불만? 무슨 불만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몸이 괴로워서 다닐 수 있어야지요.”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말했다.

“이 얘기, 정신 좀 차려라. 왜 그렇게 죽어가는 사람처럼 앉아 있니?”

이렇게 말하고 다시 변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명순이가 개성에 내려가서 며칠 동안 앓고 나더니 지금도 몸이 아픈 모양입니다. 몸만 건강하면 보던 일을 다시 보지 않고 모녀가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많이 괴로워하시는 것 같아요. 몸이 그렇게 괴로우시면 몇 달 동안 휴양을 하십시오. 휴양을 하시더라도 월급은 월급대로 드릴 테니까.”

명순의 환심을 사려는 그는 말끝마다 돈 이야기를 했다. 조금도 아끼지 않고 뿌려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까짓 황금의 썩은 내음새는 명순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할 수 없게 된 몸이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살아보겠다는 용기가 있었다면 즉시 이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임자 없는 몸이 되고 값이 없는 몸이 되니 별꼴을 다 보고 있었다.

변교장은 시뻘겋게 단 난로 옆에서 담배를 붙여 물고 힘겹게 한 모금 빨았다. 그러고는 어물어물하다가 결혼에 대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명순이는 독신생활이라는 조건으로 그것을 일축했다.

변교장은 어안이 벙벙해져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담배만 빽빽 빨고 앉았다. 명순의 어머니는 이 난처한 처지를 당하니 몹시 민망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다.

“이 얘, 왜 딴소리만 하고 앉았니? 독신생활이란다, 무슨 그런 철없는 말은 그만하고 선뜻 승락하렴.”

“…………”

“우리 쪽에서 먼저 청혼이라도 할 만한 처지인데 그러구서야 대접이 되겠니? 어서, 응 명순아 얼른 그렇게 하겠다고 해라.”

어머니는 딸의 마음이 자기와 어긋나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서 명순의 턱을 잡고 깊이 닥아 앉아 열이 나서 졸라댔다.

변교장은 이렇게 돌줄을 모르고 말을 꺼낸 것이 어색했다. 하지만 돈이 걸린 일이니 명순이는 언제든지 내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명순씨에 대해서는 그것이 매우 중대한 일인 만큼 곧 대답을 하셔야겠습니까? 잘 생각하시도록 그대로 두십시오.”

어쨌든 변교장은 자기가 원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명순의 태도가 이전보다는 달라진 것을 깨닫고 속으로 기뻐했다. 그 전의 명순이라면 ‘결혼’이라는 말만 나와도 당장 이 방을 뛰쳐나갔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 중에서 명순의 마음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여자 같으면 한 번만 말을 꺼내면 달려들었을 것이지만, 명순이는 자신의 뜻대로 쉽게 낚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의 명순에 대한 열정은 더 높아졌다. 아무리 마음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대개 한 번만 걸려들기만 하면… 하고 노리고 있던 차에 그의 어머니가 와서 돈을 달라고 하므로 기다리던 기회가 왔고, 덩그러니 오십 원의 돈을 더하여 백 원을 주었던 것이다. 미끼를 많이 주면 줄수록 더 튼튼히 걸린다고 생각했던 까닭이었다.

지금은 명순이가 절대로 안 된다고 앙탈을 부리고 있지만, 나중에 형세가 그릇될 때에는 차용금의 반제를 청구하기만 하면 명순이는 옴짝 못하고 제발로 걸어오리라 생각하니, 지금의 실패는 조금도 낙담할 필요가 없었다.

변교장은 조금도 낯빛을 변하지 않고 명순이와 그 어머니를 대접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명순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여러 가지 암시도 주었다.

하지만 영리한 명순이는 그 모든 수단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날 밤 늦도록 쓸데없는 잡담만 하다가 명순이와 그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그 뒤에도 틈만 나면 명순이를 데리고 변교장 집에 놀러갔다. 변교장과 자주 교제를 시키면 마음이 돌아설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순이도 어머니가 변교장 집에 놀러가자고 권하기만 하면 조금도 거절하지 않고 따라갔다. 그러나 그 마음은 언제든지 첫날 저녁에 놀러갈 때의 마음과 같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어머니에게 여러 가지 책망도 듣고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명순이는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언제나 무언의 태도를 유지했다.

변교장의 초대를 받아 어떤 때에는 극장으로 같이 가기도 하고 운동회, 음악회 같은 데도 사양하지 않고 따라다녔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종로나 진고개의 번화한 거리도 함께 다녀보았다.

변교장은 명순이와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 같아 흥겨운 바람에 어깨가 두세 치가 더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이 마치 명마를 가졌다는 자랑을 하려는 듯, 그 말을 타고 잡다한 거리로 유유히 걸어가는 한사와 같았다.

명순이가 자기에게 마음을 두거나 안 두거나 그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언제든지 사람이 많은 곳으로 동반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자기의 동료들이 명순이를 칭찬할 때에는 그것이 마치 자기를 부러워하는 소리처럼 들려서, 명순의 인기가 높아갈수록 자기의 지위도 높아지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