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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歸家)

von 한인택 · 2026-03-20

돈만 아는 영감님은 인정이나 도덕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명순이는 그에게서도 암울한 권리를 가질 수 없었다.

“좋아, 어떻게든 되겠지.”

명순이는 이렇게 외치며 서울에 있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의 내용은 오로지 돈을 보내달라는 말뿐이었다. 어머니에게 돈이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면 변교장이 돈을 보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변교장이 어머니의 말을 듣고 몇백 원이라도 바로 보내줄 것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명순이는 세상에 버림받고 돈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스스로 몸을 팔기로 결심했다. 변교장의 돈을 쓰는 날, 자신이 그에게 시집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관에서 밥값을 못 내고 창기나 작부로 팔리는 것보다는 변교장에게 시집가는 편이 나았다.

이렇게 된 이상 더 타락하지 말고, 아무에게나 시집가는 것이 당면한 문제였다. 명순이는 죽더라도 월춘이와 같은 더러운 생활은 하고 싶지 않았다. 병신이든지 뭐든지 한 남편을 얻어 생활하고 싶었다.

그 다음 날 오후, 어머니에게서 전보로 돈이 도착했다. 청수한 돈의 배나 되는 금액이었다.

명순이는 속으로 변교장이 나에게 미치도록 반한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아무리 변교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창선이보다는 몇 배나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보내는 목적이 좋든 나쁘든, 마굴에서 구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변교장이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자신이 어떤 곤경에 처했을지를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명순이는 그날 밤차로 서울로 올라왔다.

집에 돌아온 명순이는 지나간 모든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늙은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딸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맞아주는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니 자신이 그 인자한 어머니를 버리고 간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고통을 참고 집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쓸데없는 후회였다. 어머니는 죽어간 딸이 돌아온 것처럼 명순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네가 아주 멀리 가버린 줄 알았는데, 개성에 있었다니 누가 알았겠니?”

명순이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변교장도 네가 어디 갔는지 걱정하더라. 젊은 여자가 세상에서 어떤 풍파를 겪고 있는지 걱정했어. 고생은 안 했니?”

“고생은 무슨, 여관에 가서 밥 사 먹고 놀았지요.”

명순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비밀을 어디까지 숨길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더 묻지 않기를 바랐다.

“내가 간 동안 편지가 안 왔었니?”

명순이는 이렇게 딴청을 부렸다. 편지가 올 리도 없었지만, 이야기를 돌리고 싶었다.

“참, 엽서 편지가 한 장 왔더라.”

어머니는 책상 위를 뒤적이며 엽서 편지 한 장을 가져와 명순이 앞에 놓았다.

그 편지는 연순에게서 온 것이었다. 연순이라는 이름을 보니, 마치 선녀와 같은 순결한 여자의 이름처럼 느껴졌다. ‘철하 씨의 장래 부인’이라는 글을 보며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명순이는 편지의 내용을 보지도 않고 찢어버렸다. 창선의 사촌누이이자 자신의 애인이 될 것이라는 질투로 그 글씨만 보아도 치가 떨렸다.

연순 때문에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된 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연순이 창선이를 얌전한 청년이라고 칭찬한 덕분에 자신이 그를 믿고 믿자 결국 파멸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 놈을 얌전하다고 한 것을 보면 연순이 어떤 음모를 꾸민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명순이 편지를 찢는 모습을 보고 앉아 있다가 물었다.

“어디서 온 편지길래 찢어버리니?”

명순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명순의 태도를 유심히 살폈다. 처음에는 객지에서의 고생으로 생각했지만, 차차 말을 걸어보고 그녀의 행동을 살펴보니 큰 근심이 있는 것 같았다.

“명순아! 왜 그렇게 수척해졌니?”

“객지에서 고생을 하니까 그렇지요.”

명순이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분명히 무슨 큰 걱정이 있는 것 같다. 말해봐, 어떤 걱정이 있니?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겠니?”

“무얼, 어머니는 자꾸 그러시네요. 집을 떠나 있었으니 낯빛이 틀려진 것이지요. 며칠만 지나면 다시 활기를 찾을 거예요. 제가 무슨 걱정이나 근심이 있겠어요?”

명순이는 정신을 차리며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정! 홀로 애태우는 그 사정을 어머니가 듣고 자신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다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비밀―― 가장 가까운 모녀 사이일지라도 그 말만은 할 수 없었다.

“아직도 감옥에 간 철하를 생각하고 있니?”

“철하 씨 말이에요? 그 사람 이야기는 아예 하지 마세요.”

명순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철하라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한 지 오래였다. 생각하면 속만 상할 뿐, 그 사람의 얼굴도 감히 쳐다보지 못할 신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명순의 마음이 이전보다 달라진 것을 속으로 반갑게 생각했다.

“철하도 똑똑한 사람인데, 돈이 없으면 똑똑해도 무슨 소용이겠니? 이번에도 봐라! 네가 돈을 보내라는 편지를 받고 변교장을 찾아갔고, 그 사정을 말했더니 변교장은 조금도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청수한 금액보다 더 주더구나. 그렇게 고마운 사람이 어디 있겠니?”

돈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수단인 줄 모르는 어머니는 세상에 변교장 같은 사람이 없는 듯이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