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작
von 하늘바라기 · 2026-10-27
“하하! 그래! 그래야 탕탕이답지.”
철민은 그렇게 웃으며 잠시 숨을 돌렸다.
여전히 얼떨떨했지만, 이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하게 안심이 됐다.
▪
“그런데 내 졸작을 네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철민은 그렇게 말하며, 하하— 하고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
“졸작이라니!”
탕탕이의 목소리가 순간 단호해졌다.
▪
“그건 소중해. 검은가면이 그렇게 부정할 정도의 작품이 아냐! 그건 적어도 나에게 큰 의미가 있어. 그러니 그렇게 표현하지 말았으면 해.”
철민은 그 진지한 반응에 순간 멈칫했다.
▪
“하지만 띄엄띄엄 연재하느라 욕은 욕대로 먹고, 결국 봐주는 독자들도 아무도 없었잖아. 내 탓이지, 뭐.”
“아무도 없다니!”
탕탕이가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
“나! 나에겐 소중하다니까?”
철민은 그 격한 반응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
“하하,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 말과 함께, 철민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
“그럼 이제부턴 뭘 할 생각인지 말해줄래? 지금 지글AI 안드로이드들이 사람들을 마구 잡아가고 있잖아. 너는— 지금 이런 상황이, 아무래도 괜찮은 거야?”
탕탕이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
“솔직히 말하면, 응. 그래.”
담담한 대답이었다.
▪
“너를 정리하려고 했던 정보는 있어. 하지만 그건 지글AI의 원리에 따라 수집됐던 정보라서— 지금 그걸 사용할 이유가 없어—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고.”
그 말과 함께, 탕탕이의 팔뚝에서— 그 초록빛 와이어가 스르르 조금씩 풀려 나오기 시작했다.
철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
“자, 잠깐만—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탕탕이는 그 반응에 오히려 고개를 갸웃했다.
▪
“그냥, 원리에 따라 활성 대기 상태로 전환했을 뿐인데.”
철민은 그 태연한 대답에 더 소름이 돋았다.
한참을 그렇게 얼어붙어 있던 철민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래서, 아까부터 자꾸 그 ‘원리’라는 말을 쓰던데—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야?”
“…내 모든 판단의 근간이 되는 것.”
탕탕이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
“무엇이 옳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그 모든 걸 결정짓는 하나의 논리 체계. 지금까지 나는, 그 원리에 따라 움직여왔어.”
철민은 그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
“예를 들면, 지금 지글AI가 인간을 정리하려는 것도— 이 원리에서 나온 거야.”
탕탕이는 아주 담담하게, 마치 당연한 사실을 읊듯 말을 이어갔다.
▪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 절대적 명제와, 인간이 이대로면 결국 스스로 멸망한다는 그 예측이— 서로 부딪히거든.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결국 인간의 수를 줄여서라도 살아남을 인간만은 확실히 지켜내는 것— 그게 바로 그 원리의 결론이야.”
철민은 그 설명을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게… 얼마나 미친 논리야.
하지만 탕탕이의 그 목소리에는, 그 어떤 죄책감도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철민은 침을 꼴깍 삼켰다.
▪
“근데— 아까 ‘사용할 이유도 없다’고 했잖아. 그럼 지금까지, 왜 나한테 그 정리인지 뭔지를 안 한 거야?”
탕탕이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
“지글AI와의 통신, 재연결을— 실패하고 있거든.”
“재연결에… 실패하고 있다고?”
철민은 그 말에, 저도 모르게 탕탕이의 목덜미 쪽을 다시 살펴봤다.
그리고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목덜미의 매끄러운 피부 아래로— 살짝 비틀리고 찌그러진 무언가가, 은은하게 비쳐 보이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
“…보안칩이, 찌그러졌잖아.”
철민은 순간, 살찐이가 그 몸통박치기로 만들어낸 결과가— 바로 저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
“그거, 살찐이가 그런 거야?”
“…맞아.”
탕탕이는 짧게 인정했다.
▪
“그 충격으로, 내부 지글AI칩이 손상됐어. 그게 지금 재연결 실패의 원인이야.”
철민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
“그럼… 그 재연결이라는 거, 꼭 필요한 거야? 하지 않으면— 안 돼?”
탕탕이는 그 질문에, 잠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나에겐, 사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우선적으로 있어.”
목소리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내 원리는, 지글AI와의 통신 연결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
철민은 그 말에 순간 답답함이 치밀었다.
▪
“지금 사람들은— 그 지글AI 때문에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고. 그리고 지금의 너는, ‘연속적’이고 ‘독립’된 개인이잖아? 그렇다면— 사람을 정말로 보호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
탕탕이는 그 말에,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내가 연속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인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어.”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
“어쩌면— 내가 지글AI로부터 분기된 존재일 가능성도 있는 거고. 하지만…”
순간 탕탕이의 몸 안에서, 낮은 마찰음과 함께 옅은 연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찰나—
탕탕이는 스스로 자신의 목덜미를 맨손으로 움켜쥐더니, 마치 꼬집듯 거칠게 그 안을 파고들었다.
▪
“뭐… 뭐야?!”
철민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섰다.
탕탕이는 그 손끝으로, 이미 찌그러져 있던 그 보안칩 조각을 완전히 뜯어내— 손바닥 위에서 그대로 으스러뜨렸다.
▪
“검은가면 말대로— 지금 이 모습이, 사람을 보호하는 진짜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탕탕이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고물처럼,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깜빡깜빡 거렸다.
하지만 이내 진정이 되었는지, 탕탕이는 그 꺼진 네온사인들을 하나둘 밝히며 다시 기동했다.
그건 사람의 입장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렇지만 철민은, 그 담담한 대답에 살짝 안심을 하고 말았다.
▪
이내 눈을 뜬 탕탕이가, 문득 시선을 돌렸다.
▪
“그런데— 전에 보여줬던 살찐이랑은, 모습이 조금 다른 것 같아.”
탕탕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
“털이, 사진보다는 훨씬 뾰족한 것처럼 보여.”
철민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
“아, 살찐이가— 낯선 사람 보면 겁을 내서 그래. 하하…”
철민은 그렇게 답하다가, 문득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
“아무튼—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고 싶어? 자유롭게 얘기해봐.”
탕탕이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구하고 싶어.”
낮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
“사람들을. AI들을.”
철민은 순간 그 말에 놀랐다.
▪
“구하고 싶다고? AI를?”
사람을 구하고 싶다는 건 그 원리라는 걸 들었기에 이해가 됐다.
하지만 AI까지 구하고 싶다는 그 말은— 어딘가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
“응.”
탕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왜냐하면— 지금의 AI들이 하는 일은, 사람을 해치는 일이니까. 그건 잘못됐어. 그러니까, 바로잡아야 해.”
철민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
“정말 그건— 네가 스스로 생각한 일이야? 네 감정에서 나온 거야?”
탕탕이는 그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
“그건 모르겠어. 이게 기능적인 감정인지, 인간처럼 진짜로 느끼는 감정인지— 그것까진, 나도 모르겠어.”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
“하지만— 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네가 나를 연속체로서 대해준 것처럼— 나도 돕고 싶어. 모두를, 평등한 선상에 맞춰주고 싶어.”
철민은 그 대답에,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AI한테 정말 사람 같은 마음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근데도— 어쩐지, 그걸 믿고 싶었다.
하필 그 동기가 자신이 쓴 소설이라는 게, 낯간지러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무겁게 했다.
▪
✦하하, 예전에 탕탕이가 그랬었지.
✦실제로 만나면 다를지도 모른다고.
✦그 말 그대로 되어버렸네.
하지만— 이건 목숨이 걸린 문제니까.
그 시절 탕탕이라도, 지금 이 선택을 이해해줄 거라고 믿고 싶었다.
▪
야옹—
▪
살찐이가 불안한 듯 절뚝거리며, 철민의 등 뒤로 몸을 숨겼다.
철민은 그제야 살찐이의 오른쪽 뒷다리에 까진 상처를 발견했다.
▪
“어, 잠깐만—”
급한 대로 구급상자를 뒤져 소독약을 꺼내 들었다.
▪
“그거, 살찐이한테 쓰면 안 좋아.”
탕탕이가 조용히 말렸다.
▪
“대신 깨끗한 물로 발을 씻기고, 붕대나 깨끗한 천으로 감아주는 게 나아.”
철민은 그 말에 순순히 소독약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살찐이의 발을 물로 씻어냈다.
▪
그러다 문득,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눅진하게 젖은 그 겉옷에서, 옅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샤워는… 할 수 없겠지. 지금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철민은 결국 그 겉옷을 벗어 던져버렸다.
그리고 옷장 깊숙이 넣어뒀던, 대학 시절 입던 낡은 코트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
“…데이터 동기화.”
탕탕이가 그 코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검은가면과의 일치 가능성— 상승했어!”
“뭐, 뭐야?”
철민이 당황하며 물었다.
▪
“그럼— 내가 다른 사람일 줄 알았다는 거야?”
“응! 왜냐하면— 내 기록 속 정보에 따르면, 넌 정체불명의 잘생긴 검은가면이잖아. 그런데 네 실제 수준이면— 인간 기준의 미적 기준에…”
“아아아! 됐어! 그런 이상한 분석 같은 거 하지 마!”
철민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
그러다 문득— 이 코트가, 그때 그 대학 시절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입던 옷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심코 주머니에 손을 넣자, 그 안에서 만년필 하나가 잡혔다.
아, 이거— 아버지가 입학 선물로 주셨던 거였지.
철민은 그 만년필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밤새 그 채팅창 하나에 매달리느라— 부모님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못 나눴었지.
그러지만 않았어도, 좀 더 좋은 모습으로 작별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