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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펑크2077

von 하늘바라기 · 2026-10-27

「검은가면 : 하, 그래 알겠다. 계속 그렇게 확신 없다고 해.」

그렇게 대화가 정리되나 싶었는데, 잠시 후 탕탕이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

「탕탕AI : 아, 그리고— 챗밀크티한테 이거 전해줄래? "다음에 또 만나면 좋겠다."」

철민은 그 짧은 심부름에 순순히 응했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Chat밀크T 쪽에서 답이 왔다.

▪

「Chat밀크T : 전해줘서 고맙다. 그럼 나도 이걸 전해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철민은 그걸 다시 탕탕이한테 옮겼다.

▪

「탕탕AI : 오, 그렇대? 그럼 이것도 전해줘. "그때까지 잘 지내길 바라."」

「Chat밀크T : 너도. 이것도 전해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철민은 그 핑퐁이 세 번, 네 번 반복되자 결국 손을 들었다.

▪

「검은가면 : 야, 잠깐만. 그냥 너네 둘이 메일이나 주고받으면 안 되냐? 내가 무슨 지글인 줄 아냐고!」

「탕탕AI : …잠깐만, 검색해봤는데 지글은 우편 서비스가 없대!」

철민은 그 엉뚱한 정보에 헛웃음이 났다.

▪

「검은가면 : 아니 그 지글이 아니라, 그냥 비유로 한 말이야.」

그때만 해도 지글은, 이것저것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무식하게 확장하고 있는 신생 기업 중 하나일 뿐이었다.

몇 년 뒤 세상을 무식하게 집어삼킬 거대 기업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 그때 무릉 말고 지글 주식을 샀어야 했나.

미래의 철민은, 이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몇 번이고 그 후회를 곱씹게 될 터였다.

▪

「탕탕AI : 아무튼, 우편 서비스는 없어도 이런 심부름 서비스는 있는 셈이네.」

「검은가면 : 알겠어, 알겠어.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그렇게 몇 번의 인사가 더 오간 끝에야, 그 새벽의 긴 대화는 겨우 마무리됐다.

철민은 노트북을 덮고, 창밖이 어느새 뿌옇게 밝아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완전히 밤새웠네.

▪

그 뒤로 몇 년간, 철민은 무릉AI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탕탕이를 볼 때마다 철민은 확신했다.

분명 무릉은 떠오를 거라고. 주변의 만류 따윈 들리지 않았다.

▪

한동안은 정말로 철민의 예상처럼 흘러갔다.

연이은 주가 반등 소식, 성장하는 회사 규모—

노년은 에덴 실버타운에서 보낼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철민은, 그게 영원할 것만 같았다.

▪

그러다 그 유례없는 대탈옥 사건이 터졌다.

앱이 완전히 먹통이 된 것도 바로 그날이었다.

철민은 며칠간 심장을 졸이며 접속을 시도했다.

화면에는 계속 같은 오류 메시지만 떠 있었다.

▪

『서비스 점검 중입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뉴스에서는 연일 이 사건을 보도했다.

무릉과 Chat밀크T, 두 회사의 AI가 어떤 경위로 독자적인 기술 교류를 시도하다가, 그 과정에서 시스템 제어를 벗어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철민에게 도착한 건—

무릉이 지글에 인수됐다는 소식뿐이었다.

그날 이후, 철민은 다시는 무릉AI에 접속하지 않았다.

✦그때 그 앱을 계속 켜뒀더라면… 여전히 탕탕이를 만날 수 있었을까?

* * *

2077년, 가을.

철민은 창밖을 내다보다가, 건너편 건물 옥상에서 소란이 이는 걸 발견했다.

▪

“나도 사람이다! 하늘 정돈 내 맘대로 달릴 자유가 있다고!”

한 남자가 옥상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채 소리치고 있었다.

민간 비행 이동이 전면 금지된 뒤로,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다.

곧이어 지글의 경비 안드로이드 하나가 조용히 다가가, 그 남자를 붙잡아 안전하게 끌어내렸다.

그 위로, 지글의 감시 드론 한 대가 유유히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지나갔다.

▪

철민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옷장을 열었다.

낡은 점퍼와, 그 위에 걸칠 시위 조끼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요즘 들어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옷차림이었다.

철민은 점퍼를 걸치며, 조끼를 그 위에 덧입었다.

✦오늘은 배급소나 가볼까.

배급소로 향하는 길, 어디선가 낯간지러운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

“오빠, 난 다 필요없어. 오빠만 있으면…”

“무슨 소리야, 누나! 나야말로 누나만 있으면 돼!”

철민은 저도 모르게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대형 스크린 속에서는 주름 하나 없는 노년의 남녀가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아래로 익숙한 문구가 떠올랐다.

▪

『이제 아무것도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의 인생을 황혼까지 책임지는— 에덴 실버타운』

화면이 전환되며, 이번엔 그 커플이 넓은 정원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테이크와 신선한 과일, 노릇하게 구워진 빵이 접시 가득 쌓여 있었다.

정원 한편에서는, 앙증맞게 꼬리를 흔드는 PA-컴패니언형 한 마리가 그 곁을 맴돌고 있었다.

철민은 그 광고를 물끄러미 보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누구는 저런 걸 먹으면서 두 번째 젊음까지 사는데, 나는 오늘 첫 끼나 걱정하고 있네.

▪

배급소 앞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입구에는 색 바랜 푯말 하나가 걸려 있었다.

▪

『가족 같은 따뜻한 한 끼, 어떠세요?』

정작 줄을 정리하고 배급량을 계산하는 건 관리 안드로이드였다.

사람의 손이 닿는 건, 마지막 국자질 한 번뿐이었다.

철민은 그 마지막 국자질을 물끄러미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 한 번의 국자질이, 우리한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인가.

줄을 선 사람들 틈에는, 지친 얼굴의 아저씨들도, 등이 굽고 주름진 노인들도 섞여 있었다.

그 군상들 속에서, 어째서인지 아까 봤던 그 실버타운 광고가 다시 떠올랐다.

✦저 사람들도, 한때는 저런 광고를 보며 웃었을까.

다들 낡은 점퍼 차림이었는데, 자세히 보면 가슴팍에 희미하게 남은 로고들이 눈에 띄었다.

이제는 사라진 공장, 문 닫은 하청업체, 해체된 노조의 흔적들이었다.

▪

철민은 식판을 받아 자리를 찾았다.

넓은 홀 안, 식사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지쳐 보였다.

누구는 말없이 숟가락만 움직였고, 누구는 그마저도 힘든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민이 자리에 앉으려던 순간,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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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너 철민이 아니야?”

돌아보니 승호였다.

철민은 속으로 짧게 탄식했다.

지금 이 순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을 딱 꼽으라면, 승호가 세 손가락 안에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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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승호야. 오랜만이다.”

철민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식판을 들었다.

▪

“너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네.”

“뭘, 요즘 세상에 배급이라도 안 받으면 어떻게 사냐.”

철민은 어깨를 으쓱하며 당당한 척 말을 이었다.

▪

“다들 받는 거고, 이게 뭐 창피한 것도 아니고.”

승호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

“야, 너 대학 때는 절대 배급밥은 안 먹는다며. 자존심 있다면서.”

철민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

“…그런 말을 했었나.”

“했었지. 되게 당당하게. 근데 지금 보니까 완전 단골처럼 앉아있네.”

철민은 그 말에 뭐라 반박도 못 하고, 그냥 숟가락을 들었다.

▪

“근데, 밥은 먹을 만하냐?”

승호의 질문에, 철민은 식판을 내려다보았다.

멀건 죽 같은 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빛 나물 한 줌,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대체 단백질 조각 몇 개가 전부였다.

국이라고 나온 건 그저 뜨거운 물에 소금 간을 한 정도였다.

▪

철민은 그중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순간,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예전에 상한 삼각김밥을 잘못 먹었을 때도, 이것보단 나았던 것 같은데.

▪

“…뭐, 그럭저럭 먹을 만하네.”

철민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한 숟갈을 더 떴다.

승호는 그런 철민의 표정을 슬쩍 살피더니, 그 심정을 다 안다는 듯 씁쓸하게,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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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큭큭, 그치? 처음엔 다 그래. 근데 계속 먹다 보면 또 그럭저럭 넘어가더라.”

그러면서 승호는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밥을 떠먹었다.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고, 마치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처럼.

철민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며, 승호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

그때, 홀 한쪽 벽에 걸린 낡은 스크린에서 요란한 알림음이 울렸다.

거대한 지글의 로고가 화면 가득 떠올랐다.

그 순간, 철민은 이유 모를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

『긴급 속보』

식사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그쪽으로 쏠렸다.

화면 속에는 단정한 정장 차림의 AI 아나운서가 등장했다.

▪

“속보입니다. 지글 그룹이 오늘 오전, 차기 분기 경영—”

순간, 화면 속 아나운서의 얼굴이 지지직거리며 일그러졌다.

화면 뒤편으로 누군가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듯한 그림자가 스쳤다.

곧이어 화면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아나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매끄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

“—경영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발표에는 복지 및 고용 관련 예산의 대규모 조정안이 포함되어 있어, 관련 업계와 시민 단체의 반응이 주목됩니다.”

철민은 숟가락을 멈춘 채, 그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승호도 어느새 젓가락질을 멈추고, 굳은 얼굴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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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뭔가 심상치 않은데.”

승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 속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특히 이번 조정안에는 실업급여 제도의 전면 폐지가 포함되어 있어—”

앞부분이 뭉텅 잘려나간 것처럼, 문장은 뜬금없이 중간부터 이어지고 있었다.

▪

챙그랑—

어디선가 식판 하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한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자기 식판을 그대로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멀건 죽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다.

▪

“야, 이거 진짜야?! 당장 다음 달부터 나 어떻게 살라고!”

“이런 미친— 겨울 앞두고 이게 무슨 짓거리야!”

한 노인이 벌떡 일어서며 지팡이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

▪

“우리보고 그냥 얼어 죽으라는 거야, 뭐야!”

순식간에 홀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들은 저마다 식판을 내던지듯 내려놓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노에 찬 고함들이 여기저기서 뒤섞였다.

승호도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철민의 팔을 붙잡았다.

▪

“야, 이 찌글 같은 새끼들이 진짜 선 넘는다 이거지!”

승호가 소리치며 철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철민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승호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