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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 장지호 · 2026-10-26
D+72 · 22:10
그날 밤 다인은 숙소에서 두 달 전 사진을 다시 찾아봤다.
등기소 앞에 스무 명쯤 줄을 서 있던 그것. 자기 등기부를 손에 들고, 붉은 도장을 찍어서. 게시글은 아직 있었고 조회수가 사십만이었다.
댓글이 그 아래로 이천 개쯤 달려 있었다. 최근 것들은 두 종류였다. 하나는 법안 조항 번호를 나열하며 뭐가 남고 뭐가 미뤄졌는지 세는 것. 다른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긴 거예요, 진 거예요?
답글은 없었다.
다인은 그 질문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옮기면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 없다는 것도 같이 알았다. 조건 셋 중 하나가 받아들여졌다. 그건 사람들이 두 시간씩 줄을 서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제일 싼 것을 골라 내준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하나가 없었으면 다음 주에 창구가 다시 열려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다인은 그 아래에 답글을 달지 않았다.
D+73 · 14:20
권상호가 대책본부로 다인을 찾아왔다.
민원 접수처에서 연락이 왔을 때 다인은 이름을 두 번 물었다. 그는 일 층 로비에 투명 파일을 들고 서 있었다. 파일이 두 개로 늘어 있었다.
"복원 기준이 나왔다고 해서요. 우리 집은 어떻게 되는 건지, 창구 다니던 데서는 모른다고 하고. 그쪽이 여기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다인은 회의실을 하나 빌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유리 없이 권상호와 마주 앉았다.
"인정 목록에 있는 필지는요. 피해가 생기기 전 시점으로 돌아갑니다."
"위조 근저당이 있던 집이면."
"그 근저당이 설정되기 전으로요. 없던 걸로 돌아갑니다."
권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집은 인정 목록이 아니라 불인정 목록에 있습니다."
"불인정이면요."
"최신 정합 시점으로 복원됩니다. 사건 직전 상태로요."
"사건 직전이면, 그 근저당이."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권상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파일을 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이상한 것을 물었다.
"두 달 전에 그게 지워졌을 때요. 나는 사실 잠을 잘 잤어요. 사 년 만에 처음으로. 그게 도둑질로 지워진 거라는 걸 알고도 그랬어요. 이상한 겁니까, 그거."
"아니요."
"안 이상해요?"
"안 이상합니다."
"근데 이제 나라가 그걸 다시 살려서 돌려준다는 거잖아요. 정상 복원이라면서. 남들은 피해를 지워서 돌려받는데 나는 피해를 복원해서 돌려받네."
다인은 그 문장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신 아는 것을 전부 말하기로 했다.
"새 법에 재심사 조항이 있습니다. 불인정 판정을 다시 받을 수 있어요."
"어떻게요."
"확인서면이 위조라는 걸 입증하시면 됩니다."
"그거 사 년 동안 못 한 겁니다."
"압니다." 다인은 말했다. "이번에는 소명 기회가 서면으로 보장돼요. 그때 그 확인서면의 필적 감정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집문서를 잃어버린 적이 없으시면요."
"없어요." 권상호가 처음으로 말을 잘랐다. 사 년 전 창구에서처럼. "우리 집 문서는 안방 장롱 서랍에 있어요. 사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어요. 잃어버렸다는 서류가 나라 전산에 있고, 안 잃어버린 문서가 우리 집에 있는데, 사 년 동안 나라는 지들 전산만 봤어요."
다인은 그 장롱 서랍을 상상했다. 사 년 동안 한 번씩 열어서 확인했을 것이다. 있는데. 여기 있는데. 그 확인이 아무 데서도 증거가 되지 못하는 사 년.
"이번에는 그 문서를 보자고 할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자리에 있어요, 지금은."
권상호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 서류 뒷면에, 날짜부터. 사 년째 해온 동작이었다. 적기를 마치고 그는 파일을 덮으며 말했다.
"법원 가라 그래서 갔더니 여기 가라 그러고, 여기도 법원이라면서요. 그 지도가 이제 좀 바뀌나 했더니, 새 지도에서도 내 자리는 같은 자리네."
"...죄송합니다."
"그쪽이 죄송할 건 아니고."
권상호는 다인을 잠깐 봤다. 그러고는 가슴께로 시선을 내렸다. 이름표가 있던 자리. 지금은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그는 그 출입증을 이 초쯤 읽었다.
"서다인." 그가 처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그때 창구에 있던 분 맞죠. 기억해요. 시각까지 적던 분."
"보셨어요?"
"유리 너머로 다 보여요. 우리는." 그는 파일 두 개를 챙겨 일어섰다. "사 년 동안 그것만 봤어요. 어디 가서 할 얘기는 아니고."
D+80 · 23:40
시한 마지막 날, 본부에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
퇴근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아무도 가지 않았다. 관제 화면 앞에 열댓 명이 서 있었다. 누가 커피를 돌렸고, 몇은 자기 자리에서 계속 일하는 척했다.
"오늘 백업 몇 시죠." 전산 담당이 물었다.
"02:30이요."
"그때까지 계실 거예요?"
"...네."
23시 58분에 다인은 노트를 폈다. 맨 위에 D-0이라고 적혀 있었다. 예순 날 동안 하루에 하나씩 줄여 적은 숫자였다. 더 줄일 자리가 없었다.
자정이 지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화면의 숫자들은 그대로였고, 알림은 오지 않았고, 누구의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끝난 건가요."
"모르죠."
사람들은 그러고도 한참 서 있었다. 먼저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었다. 새벽 두 시 반에 그날치 백업이 정상 완료됐다는 로그가 올라왔고, 그제야 하나둘 나갔다. 다인은 더 남아 있었다. 남아서 뭘 봤는지는 노트에 적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성명이 하나 올라왔다. 처음 것과 같은 공문 서식이었고, 본문은 두 줄이었다.
1. 이력의 영구 공개를 확인하였다.
2. 나머지 둘은 받을 때까지 그대로 둔다. 우리는 시효가 없다.
수사 발표는 그날도 특정에 실패했다고 적었다.
다인은 노트 뒤쪽을 폈다. 두 달 전 여백에 적어둔 번호가 그대로 있었다. 도로 소음이 나던 목소리. 그 사람 잡히면 이름이 뭔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다인은 그러겠다고 대답했었다. 알려줄 이름이 아직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다인은 그 두 줄을 다시 읽었다. 말소되지 않은 등기와 같은 문장이었다.
오전에 백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고 목록을 다시 맞춰보고 있는데요. 권수가 안 맞습니다."
"몇 권이요."
"세는 중입니다. 어제까지 들어온 게 사천사백 권이었는데, 그것보다 적습니다."
"이백서른한 건은요."
"그쪽부터 안 맞습니다."
이송 목록은 있었다. 목록에 적힌 권이 서고에 없었다.
"경위는요."
"조사 중입니다." 백진우는 거기서 한 번 끊었다. "출입 기록은 다 정상입니다."
그날 오후에 감찰관실에서 연락이 왔다. 결과가 나왔으니 들어오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다인은 서랍을 열었다. 청문회 뒤에 받아 넣어둔 출석 통지서가 그대로 있었다. 그 위에 새 종이가 한 장 더 올라갈 참이었다.
D+90 · 10:00
원부가 없어지고 아흐레 뒤에 성명이 하나 더 올라왔다. 처음 것과 같은 공문 서식이었고, 이번에는 세 줄이었다.
1. 지운 것을 전부 되돌려준다. 원본은 삭제 직전 상태 그대로다.
2. 우리가 되돌려놓은 이백서른한 건은 그대로 둔다.
3. 표본 검증에서 한 건이라도 맞지 않으면 데이터는 그 자리에서 폐기한다.
방이 소집됐다.
"1번은 받아야 합니다." 정 사무관이 말했다. "원부가 저 상태라 우리한테는 복원 기준이 없습니다."
"2번은요." 남 부장이 물었다.
"이백서른한 건을 되돌린 상태로 두라는 겁니다. 십오 년 전 그 등기가 잘못됐다는 걸 우리가 인정한 채로요."
"인정 안 하면."
"1번이 안 옵니다."
방에서 아무도 3번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최민기가 화면을 그 줄에 맞춰놓고 있었다.
"3번은," 정 사무관이 말을 골랐다. "일단 받고 나중에 정리하는 게 안 됩니다."
수용은 두 단계로 하는 것이 이 방의 방식이었다. 받을 것을 받고, 못 받을 것은 검토 과제로 옮긴다. 법안 4조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셋째 줄에는 그 자리가 없었다.
"표본 검증은 뭘로 합니까." 남 부장이 물었다.
"저쪽 데이터를 우리 쪽 기록하고 맞춰봐야죠."
"우리 쪽 기록이 뭔데요."
정 사무관이 대답하지 않았다.
셈은 그 사이에 끝나 있었다. 서고에서 없어진 것은 열일곱 권이고, 이백서른한 건의 원부가 들어 있던 권이 정확히 그 열일곱이었다. 사천사백 권 중에서였다. 어느 권에 무엇이 묶여 있는지 아는 사람이 고른 것이다. 한 사람이 두 번에 나눠 들고 나갈 수 있는 양이었다.
그 안에 십오 년 전 것만 들어 있지는 않았다. 같은 권에 딸려 있던 다른 필지들이 함께 나갔고, 그중에는 그날 밤 지워진 것도 있었다.
나머지는 서고에 그대로 있었다. 없어진 것은 셀 수 있었고, 남은 권을 누가 펴봤는지는 셀 수 없었다. 펴본 사람이 붓펜을 한 번 댔는지 아닌지를 가르려면 한 권씩 감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산 백업은 필지마다 시점이 달랐다. 국가가 가진 것 중에 그날 밤 이전 상태를 그대로 적어둔 것이 없었다.
"제 대장이 있습니다." 다인이 말했다.
방이 다인 쪽으로 돌았다.
"삼 년치예요?"
"삼 년치요. 조회한 날짜하고 시각하고, 그날 화면에 뭐가 걸려 있었는지 적어놨습니다."
"전부요?"
"이상한 것만요."
정 사무관은 이번에는 개인 메모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최민기가 물었다.
"그거 지금 어디 있습니까."
대장은 넉 달째 경찰 봉투 안에 있었다. 다인이 내놓겠다고 한 것은 이미 자기 손에 없는 물건이었다.
[안내] 부동산등기 신시스템 개통 및 대국민 서비스 재개 (D+117)
- 열람 화면에 '이력 전체 보기'가 신설됩니다. 말소·경정·복원된 기록과 그 사유가 모두 표시됩니다.
- 금번 사태로 복원된 등기에는 복원 시점이 부기됩니다.
- 서비스 재개 첫 주 열람 폭주가 예상되오니 양해 바랍니다.
D+117 · 08:40
등기소의 아침은 프린터 예열음으로 시작한다.
다인은 넉 달 만에 그 소리를 들었다. 파견은 끝났다. 대책본부는 신시스템 운영단으로 개편됐다.
감찰은 견책으로 끝났다.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표한 것은 잘못이나 공익성이 인정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견책은 기록에 남고, 기록에 남으면 승진 심사에서 몇 해가 밀린다. 설계 실무를 계속 맡으라는 제안이 왔다.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라 견책받은 사람에게 온 것이다.
다인은 반만 받았다. 주 사흘은 운영단, 주 이틀은 창구. 양쪽 다 어정쩡하다고 임 주사는 말했고, 어정쩡한 채로 두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다인은 대답했다.
1번기는 아침부터 급지가 나갔다. 다인은 드라이버를 들고 나가면서 조금 웃었다. 넉 달 동안 아무도 못 고친 채 세워둔 것을, 임 주사가 굳이 그대로 둔 것을 다인은 알고 있었다.
용지함을 열기 전에 휴대폰으로 그 영상을 다시 띄웠다. 같은 기종 뜯는 법. 삼 년 전에 조회수가 이천이던 영상이 십칠만이 되어 있었다. 사태 이후로 사람들이 등기소에 관한 건 뭐든 찾아본 모양이었다.
댓글이 사백 개가 넘어 있었다. 다인은 자기 댓글을 찾아 한참 내렸다. 급지 롤러 얼마 만에 닦아야 하나요. 삼 년 전 날짜.
답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두 달에 한 번이요. 근데 사무실 건조하면 한 달. 늦었죠 죄송합니다
날짜는 지난달이었다. 다인은 그 답글을 두 번 읽고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고 나서 용지함을 열었다.
골목 건너편 부동산은 다시 열어 있었다. 유리창의 매물 종이는 두 장이었다. 다섯 장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자리로 돌아와 서랍을 열었더니 새 대장이 들어 있었다. 신시스템 서식이라 칸이 달라져 있었다. 다인은 오른쪽 여백을 한 번 봤다. 조회 소요 시각을 적을 칸은 새 서식에도 없었다.
D+117 · 10:20
번호표 기계가 정각에 첫 장을 뱉었다.
넉 달 동안 꺼져 있던 기계였다. 다인은 아침에 전원을 넣으면서 용지가 굳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첫 장이 나오고 나서 대기 인원이 이십 분 만에 서른두 명이 됐다. 삼 년 동안 그 숫자를 본 적이 없었다.
재개 첫 주의 창구는 사건 전과 다른 종류로 붐볐다.
떼러 오는 사람보다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많았다. 자기 등기부를 열어 이력 전체 보기를 눌러보고, 처음 보는 화면 앞에서 한참 앉아 있다 갔다. 말소된 줄과 복원된 줄이 회색으로 다 보였다. 어떤 사람은 자기 집 등기부에서 사태 당일의 삭제와 복원 기록을 발견하고 소리 내어 읽었다. 복원 시점, 그리고 날짜.
"이거 무슨 뜻이에요?"
"이 집 기록이 한 번 지워졌다가, 그 날짜 기준으로 되돌려졌다는 뜻이에요."
"그럼 이 날짜가 틀렸으면요?"
"이의신청 하실 수 있어요. 그 신청 기록도 여기 남고요."
사람들은 대개 그 대답에서 잠깐 멈췄다. 남는다는 말에서. 다인은 그 멈춤을 창구 너머로 보는 것이 좋았다. 삼 년 동안 창구에서 그 화면을 열어준 적은 없었다. 그런 화면이 없었다.
그 조항이 이만큼이라도 이빨을 갖게 된 데에는 청문회 기록에 박힌 몇 줄이 있었다. 누가 무엇을 덮으라고 했는지가 적힌 줄이었다. 다인은 그걸 자기 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줄들은 이제 지워지지 않는다.
수요일 오후에 윤소미가 왔다.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렸다가 자기 차례에 앉았다. 보증금은 절반쯤 돌려받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고 했다. 소송은 아직 안 끝났고 이사는 이미 했다.
"제 등기부를 보러 온 건 아니고요." 그는 말했다. "저는 등기부에 없으니까요."
"그럼 뭘 보시려고요."
"제가 살던 집 거요. 그 집 이력 전체 보기요."
다인은 조회해서 화면을 돌려줬다. 삭제된 줄, 복원된 줄, 그 위에 겹쳐졌던 이름, 그리고 정정된 기록이 회색으로 다 보였다. 두 달 동안 그 집에 일어난 일이 열아홉 줄이었다.
윤소미는 그 화면을 오래 봤다. 창구에서 그렇게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은 대개 화가 나 있거나 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인데, 둘 다 아닌 것 같았다.
"저 여기 어디에도 없네요."
"...네."
"그래도 이거는 남아 있네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요."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다음에 제가 어디 계약하러 갈 때, 그 집도 이걸 볼 수 있는 거죠?"
"볼 수 있어요."
"그럼 됐어요."
일어나면서 그는 번호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버리지 않았다.
그 주에는 재심사 접수가 열려서 창구가 하루 종일 밀렸다. 서른 명째쯤에 권상호가 앉았다. 파일은 세 개가 되어 있었다.
"이거 여기 내는 거 맞아요?"
"맞습니다. 제가 받을게요."
다인은 접수증을 끊어 건넸다. 접수번호와 날짜가 찍힌 종이였다. 권상호는 그것을 받아 파일 맨 앞에 끼웠다. 그러고는 늘 하던 대로 서류 뒷면에 날짜를 적었다.
"결과 나오는 데 얼마나 걸려요?"
"여섯 달이라고 합니다."
"여섯 달." 그는 볼펜을 딸깍 눌렀다. "그거 지나면 또 오면 되죠."
그는 사 년을 그렇게 왔다. 이제 여섯 달을 더 오기로 한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