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남자친구의 조건
von 루시엘 · 2026-10-26
3화. 남자친구의 조건
“가짜라는 사실을 잊지 마. 네가 그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 이 계약은 너에게 가장 잔인한 족쇄가 될 테니까.”
“이번 주말, 저와 같이 여행을 가시죠.”
서도혁이 너무나 태연하게 말했다.
윤하니는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여행이요?”
“네.”
“누구랑요?”
도혁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저와 윤하니 씨요.”
“그건 아는데요!”
하니가 황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저희가 언제 여행까지 가기로 했어요? 계약서에 그런 내용은 없었잖아요.”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일정을 협의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게 여행을 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도혁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했다.
“열애설이 이미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만났는지,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하겠죠.”
“그렇겠죠…….”
“그런데 어제 처음 만난 사람처럼 행동하면 의심을 살 겁니다.”
하니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인터넷에는 벌써 두 사람의 사진이 퍼져 있었다.
누군가는 하니의 정체를 궁금해했고, 누군가는 도혁의 약혼설을 언급했다.
심지어 두 사람이 오래전부터 비밀연애를 해 왔다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었다.
하니는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혹시라도 자신의 얼굴이 더 알려지면 어떡하나.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거짓말을 얼마나 오래 이어 갈 수 있을까.
“그래도 여행은 너무 빠르지 않아요?”
“그래서 제안하는 겁니다.”
“네?”
도혁은 하니를 똑바로 바라봤다.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니까요.”
하니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약서에 서명했지만,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하니는 도혁이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다.
도혁은 하니가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했다는 사실 정도를 알 뿐이었다.
연인인 척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 어디로 가는데요?”
“강릉입니다.”
“강릉이요?”
“토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일요일에 돌아올 겁니다.”
하니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주말에 여행이라니.
그것도 계약으로 맺어진 남자와 단둘이.
물론 도혁은 잘생겼다.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잘생긴 편이었다.
하지만 잘생긴 것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하니는 그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대표님.”
“말씀하세요.”
“혹시…… 저한테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죠?”
도혁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의도 말입니까?”
“아니, 그게…….”
하니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거 있잖아요. 계약연애를 핑계로 이상한 걸 요구한다든가.”
도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놓인 계약서를 하니 쪽으로 밀었다.
“숙소는 각자 방을 사용합니다. 일정은 사전에 공유하고, 원하지 않는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여행 중에도 계약서에 명시된 신체 접촉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겠습니다.”
하니는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진짜 철저하시네요.”
“당연한 일입니다.”
도혁은 다시 서류를 정리했다.
“당신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하니는 잠깐 그를 바라봤다.
그 말은 진심처럼 들렸다.
그녀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갈게요.”
“좋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도혁이 고개를 들었다.
“말씀하세요.”
“여행 중에 제가 배고프다고 하면 바로 밥 먹기.”
“……그게 조건입니까?”
“저 배고프면 예민해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카페도 꼭 들러야 해요. 제가 맛있는 디저트 가게를 발견하면 무조건 가야 해요.”
“일정에 문제가 없다면요.”
“아, 정말!”
하니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대표님은 연애를 어떻게 하셨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하니는 입을 다물었다.
아차.
또 실수했다.
도혁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하니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그 뜻으로 물어본 건 아니었어요.”
“괜찮습니다.”
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연애를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니는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정말요?”
“네.”
“그럼…… 이번에도 잘 못하실 수도 있겠네요?”
도혁은 피식 웃었다.
“윤하니 씨가 잘 가르쳐 주시면 되겠죠.”
하니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 남자가 방금 웃으면서 무슨 말을 한 거지?
잘 가르쳐 달라고?
하니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업무 보러 가겠습니다!”
“윤하니 씨.”
“네?”
“아직 오전 업무가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아.”
하니는 천천히 다시 의자에 앉았다.
도혁은 고개를 숙여 서류를 읽었다.
그리고 하니가 보지 못하는 순간, 아주 작게 웃었다.
오전 열한 시.
하니는 대표실 한쪽에 마련된 책상 앞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긴장했다.
대표실 업무라고 하면 어려운 서류를 처리하거나, 복잡한 일정을 관리하거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해 보니 이전 카페에서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일정 정리.
회의 자료 출력.
회의실 예약.
거래처에 전달할 서류 확인.
다만 모든 것이 훨씬 체계적이었고, 실수 하나가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대표님, 오후 두 시 회의 자료 정리했습니다.”
하니가 서류를 가져다 놓았다.
도혁은 자료를 확인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습니다.”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지금은 없습니다.”
하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잠시 뒤, 도혁이 다시 불렀다.
“윤하니 씨.”
“네?”
“이 자료는 누가 정리했습니까?”
하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가 했는데요.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나요?”
도혁은 서류 한 장을 들어 보였다.
“매출 수치가 서로 다르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하니는 황급히 다가갔다.
“어디요?”
도혁이 해당 부분을 가리켰다.
하니는 자료를 확인하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정말이었다.
다른 페이지의 수치와 맞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하니는 서둘러 자료를 받아 들었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첫날부터 실수하다니.
자신이 괜히 이 자리에 온 건 아닐까.
혹시 도혁이 자신을 해고하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윤하니 씨.”
도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왜 그렇게 긴장합니까?”
하니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가 실수했잖아요.”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대표님이 보시는 자료인데…….”
“그러니까 고치면 됩니다.”
하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도혁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죠.”
하니는 그 말을 듣고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따뜻한 말이었다.
그녀가 이전 직장에서 실수했을 때는 달랐다.
작은 실수에도 한참을 혼났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는 말 대신 왜 그런 것도 제대로 못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하니는 실수하는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는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도혁은 달랐다.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하니를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하니가 작게 말했다.
도혁은 다시 서류를 내려다봤다.
“수정한 자료는 오후 회의 전까지 제출하세요.”
“네!”
하니는 자료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수치를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번에는 틀리지 않도록 꼼꼼하게 살폈다.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었을 때, 하니는 수정한 자료를 도혁에게 가져갔다.
“대표님, 다시 확인했습니다.”
도혁은 자료를 살펴봤다.
“좋습니다.”
“정말요?”
“네.”
하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행이다…….”
그녀는 무심코 웃었다.
도혁은 그 웃음을 바라봤다.
밝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하니는 웃을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억지로 웃는 순간에도 입꼬리를 올리려고 애썼고, 진심으로 기뻐할 때는 눈부터 환해졌다.
그런데 어제 식당에서 잠깐 보았던 하니의 얼굴은 달랐다.
도혁의 과거에 관해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슬퍼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윤하니 씨.”
“네?”
“점심은 먹었습니까?”
하니는 눈을 깜빡였다.
“아직요.”
“왜 안 먹었습니까?”
“자료 수정하느라고요.”
도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한 시 십 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하러 갑시다.”
“네?”
“점심 먹으러 가자고요.”
하니는 얼떨결에 가방을 챙겼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대표님.”
“네.”
“저희 둘이 같이 밥 먹어도 되는 거예요?”
도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왜 안 됩니까?”
“아니, 대표님이랑 직원이랑…….”
“직원과 식사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윤하니 씨.”
“네?”
“지금은 업무가 아니라 계약연애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세요.”
하니는 숨을 멈췄다.
“……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회사에서 일만 하고 있었다.
가짜 연애를 하기로 했는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도혁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말했다.
“오늘은 당신이 먹고 싶은 걸 먹죠.”
하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환하게 웃었다.
“그럼 저, 돈가스 먹고 싶어요!”
도혁은 잠깐 멈췄다.
“돈가스요?”
“네! 바삭바삭한 돈가스요. 소스 듬뿍 뿌려서!”
“……알겠습니다.”
하니는 신이 난 얼굴로 그를 따라갔다.
도혁은 그런 하니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하고, 칭찬을 받으면 기뻐하고, 누군가 자신을 믿어 주면 다시 열심히 해 보려고 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위험한지도 몰랐다.
그런 사람에게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없는 일상이 낯설어질 테니까.
도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녀는 계약 상대일 뿐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하니는 손에 든 작은 종이봉투를 내려다봤다.
“이건 뭐예요?”
도혁이 물었다.
“디저트요.”
“돈가스를 먹고 또 디저트를 삽니까?”
“당연하죠.”
하니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밥 배랑 디저트 배는 다르거든요.”
도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하니는 봉투를 열어 작은 빵 하나를 꺼냈다.
하얀 크림치즈가 듬뿍 들어간 빵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꿀이 얇게 발라져 있었다.
도혁의 걸음이 멈췄다.
하니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제가 크림치즈랑 꿀 조합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하니는 빵을 반으로 갈랐다.
“드셔 보실래요?”
도혁은 빵을 바라봤다.
하얀 크림치즈.
황금빛 꿀.
오래전, 누군가의 주방에서 맡았던 달콤한 냄새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아닙니다.”
하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단 거 싫어하세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드셔 보세요.”
하니는 작은 조각을 떼어 내밀었다.
“진짜 맛있어요.”
도혁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결국 빵을 받아 들었다.
한입 베어 물었다.
부드러운 크림치즈와 달콤한 꿀이 입안에 퍼졌다.
그 순간 도혁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비 오는 오후.
작은 주방.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웃던 한 여자.
‘도혁아, 이거 먹어 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야.’
그녀는 식빵 위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꿀을 뿌려 주었다.
‘맛있지?’
그때 도혁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았다.
그 여자가 왜 그토록 이 간식을 좋아했는지.
왜 자신에게도 자꾸 먹어 보라고 했는지.
도혁은 손에 든 빵을 내려다봤다.
하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맛없어요?”
도혁은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요?”
“무슨 표정 말입니까?”
“뭔가…… 슬픈 사람 같았어요.”
도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니는 괜히 미안해졌다.
“죄송해요. 제가 또 쓸데없는 말을 했죠?”
“아닙니다.”
도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예전에 누군가가 좋아했던 음식과 비슷해서요.”
하니는 그의 손에 들린 빵을 바라봤다.
“첫사랑이요?”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니는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남은 빵을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 사람도 참 좋았겠네요.”
도혁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뜻입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취향을 기억해 주는 거요. 별것 아닌 음식도 같이 먹어 주고.”
하니는 웃었다.
“저는 그런 게 좋거든요.”
그 말에 도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별것 아닌 음식.
누군가의 취향을 기억하는 일.
그리고 함께 먹어 주는 일.
그는 오래전 그 여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언젠가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이 맛은 기억해 줘.’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는 그 맛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하니가 건넨 작은 빵 한 조각이 오래 닫아 두었던 기억의 문을 다시 열어 버렸다.
토요일 아침.
하니는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일찍 집 앞에 나와 있었다.
캐리어 하나.
작은 가방 하나.
그리고 손에 들린 커피 한 잔.
검은색 세단이 도착하자 하니는 손을 흔들었다.
“서도혁 씨!”
도혁은 차에서 내려 하니의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
“짐이 이것뿐입니까?”
“네. 이틀 여행인데 많이 필요 없잖아요.”
“필요한 건 다 챙겼습니까?”
“네!”
“신분증은요?”
“있어요.”
“휴대전화 충전기는요?”
“있어요.”
“약은요?”
하니는 눈을 크게 떴다.
“……대표님, 저 초등학생 아니거든요?”
도혁은 캐리어를 트렁크에 넣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확인하세요?”
“빠뜨리는 게 있으면 곤란하니까요.”
하니는 피식 웃었다.
“대표님은 진짜 꼼꼼하시다.”
도혁은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타세요.”
하니는 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니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어제부터 모르는 번호로 온 메시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 남자가 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지, 정말 알고 싶지 않으세요?
누가 보낸 걸까.
왜 자신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걸까.
정말 도혁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니는 화면을 껐다.
계약서에는 사생활을 존중한다고 적혀 있었다.
자신이 그 사람의 과거까지 파고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메시지를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윤하니 씨.”
도혁의 목소리에 하니가 고개를 들었다.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또 거짓말이군요.”
하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의 표정을 잘 읽었다.
“그냥…… 조금 걱정돼서요.”
“무엇이요?”
하니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결국 물었다.
“대표님은 저랑 계약연애를 하는 게 정말 괜찮으세요?”
도혁이 그녀를 바라봤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합니까?”
“아니, 대표님은 원래 결혼 이야기를 피하려고 저를 선택하신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사진도 퍼지고,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잖아요.”
하니는 창밖을 바라봤다.
“제가 괜히 대표님 인생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해서요.”
도혁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차 안에는 잔잔한 음악만 흐르고 있었다.
한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이미 복잡한 인생입니다.”
하니는 그를 바라봤다.
도혁은 앞을 향한 채 말을 이었다.
“당신이 오기 전부터 그랬습니다.”
하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당신 때문에 복잡해졌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말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하니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당신이 불편해지면 언제든 말하세요. 계약을 중단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니는 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