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末路)
von 한용운 · 2026-03-20
순영은 마음이 어지럽고 궁금증이 가득했다. 대철이 같은 사람을 본 이후로 의심이 풀리지 않았고, 그의 정체를 알아보려고 애썼다. 봉림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대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철이 그렇게 변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봉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지는 않았다.
순영은 그 사람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지만, 이틀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조급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순영은 봉림이 말한 아편을 판다는 곳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가면서도 자신만이 그를 알아보기를 원했고,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주의했다. 그래서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헐벗은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거지 같은 사람을 보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순영은 아편을 판다는 집 문 앞에 가지 못하고, 중학동 어귀의 한 편에 서서 저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왕래는 많았지만 아편장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거지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 집으로 드나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순영은 봉림이 말한 곳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너무 오래 한 곳에 서 있는 것이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일까 두려워, 조금씩 자리를 비켜가며 거의 한 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저녁이 되어 화가 나서 돌아서려고 했다. 그러나 물어볼 곳이 만만치 않았다. 의관을 갖춘 사람이나 순사를 보고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그러다 큰 길 한쪽에 구르마에 기대어 졸고 있는 늙은 영감을 발견했다. 그 근처에는 다른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여보세요?”
순영의 목소리는 떨리는 듯했다.
“......”
졸고 있던 그는 대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말씀 좀 묻겠어요.”
순영의 말소리는 조금 커졌다.
“응.”
눈을 뜨며 수염에 흘러내린 침을 씻어내고 순영을 바라보던 그는 피곤한 듯 말했다.
“에이, 피곤하기도 하네.”
“이거 보세요, 말씀 좀 묻겠어요.”
“무슨 말씀이요?”
그는 곤한 잠을 깨운 것이 못마땅하다는 듯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저기 저게 무슨 집이에요?”
순영은 아편을 판다는 집을 가리켰다.
“어떤 집이요?”
“저기 저 집 말이에요. 저기는 내자동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죠. 그 질 들어가는 첫 버리 남쪽으로 양옥집처럼 지은 저 집 말이에요.”
“예, 그 집이요? 그 집은 왜 묻소?”
순영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아니 글세요.”
순영은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집이 아편 파는 집이라우, 왜 아편 사실라우?”
“아니오, 그 집에 아편장이들이 많이 드나든다고 하기에 말이에요.”
“아편장이가 많이 드나들고 말고요, 그게 아편장이 도회청이라우. 왜 아편장이를 만날 사람이 있소?”
“아니요, 글세 말이에요. 그럼 아편장이들이 저 속에 있나요?”
“아니오, 아침 나절이 되면 모두 와서 아편을 사가지고 가지요. 거기 있기는 왜?”
“그럼 아침 나절에만 오는 구요?”
순영은 아편장이를 볼 수 없는 이유가 저녁이 되어 그런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소, 그건 왜 그렇게 자세히 묻소. 보아하니 침 받는 이는 아닌데.”
순영은 위로 안 좋은 기분을 느끼며 돌아왔다.
이튿날, 순영은 일찍 가서 어제 서 있던 곳에서 기다렸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 너무도 점직해져서 경관 연습소 모퉁이로 가서 수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서 있었다.
여덟 시가 되면서 아편장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모습이었다. 의관을 그대로 하고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거지 행색이었다. 얼굴은 모두 파리하고 누런 빛이 돌며,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젊은 여자들이었다.
“저런 망할 것들이 왜 아편을 처먹기 시작하여 저 모양이 되었담.”
“저것들이 지금은 저래도 처음에 아편 먹기 시작할 때에는 돈푼이나 있고 형편도 좋았었겠다.”
“저것들은 저러다가 며칠 안 있으면 다 죽지, 할 수 있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흘금흘금 보며 서로 지껄이는 중이었다.
“저 지경이 되었어도 결심만 있으면 고치는 수가 있지마는 결심들이 있어야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순영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이라도 아편장에 관한 말이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철이 아편장이가 되어 그곳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순영의 눈은 한 군데에 머물지 않았다.
내자동 쪽에서 오는 길을 보기도 하고, 중학동 쪽이나 광화문동 쪽을 보기도 하며, 때로는 고개를 돌려서 동심자인나 서심자각 쪽을 바라보았다. 순영의 눈은 여간 피로하지 않았다. 중학동 쪽을 보다가 마차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며, 노하여 뛰어가는 말을 구경하다가, 다시 사직동 쪽을 보았을 때, 어느새 자기 앞에 바짝 가까이 와서 기침을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바로 전날 자기 집에 동냥 왔던 그 사람이었다.
순영은 그 사람이 기다리던 사람임을 알았지만,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며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광경을 유심히 보던 그 사람은 휙 돌아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집 문으로 들어갔다.
순영은 그 자리에 서서 그 사람이 나오는 것을 다시 볼 생각도 했지만, 어쩐지 더 있을 용기가 없어 조금 주저하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왔다. 이번에는 그 사람의 얼굴과 몸, 모습을 자세히 보았다. 그 사람의 얼굴은 파리하고 누런 빛이 돌았지만, 모든 것으로 보아 대철임이 분명했다.
의복은 봉림이 말한 것처럼 참혹하지는 않았지만, 보통 사람의 차림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동냥 다닐 적에 입는 의복보다는 나은 듯했다. 그리하여 그냥 다닐 적에 입는 의복이 따로 있는 듯하게 느껴졌다.
순영은 대철이 그렇게까지 되었을 리가 있나 하는 의심과,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나 그런 억지스러운 생각을 빼놓고 보면 그 사람이 대철임이 분명했다. 순영은 그 사람이 자신을 알아봤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다. 자신이 수건으로 얼굴을 많이 가려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며 갑자기 돌아서는 모습을 생각하니 자신인 줄 알았던 것 같았다. 순영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거울을 보았지만, 자신도 알아보기 힘들어 다소 안심했으나, 다시 생각하니 그렇게까지 걱정하는 것이 오히려 우습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