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ließen

말로(末路)

von 한용운 · 2026-03-20

봉님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런데, 나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눈을 감고 싶어. 왜냐하면, 그곳은 언제나 아편장들이 들썩거리거든. 아편이나 모르핀을 사느라 바쁘니까. 그런 것들이 보기 싫어서, 우리는 어쩐지 아편장들이 정말 싫어. 아우님은 그렇지 않아요?"

"왜 싫지 않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에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걸요."

"아, 아우님은 정말 부처님이 다 되셨군요. 이 다음에 극락이나 천당은 따놓은 당상이에요. 우리는 다른 거지보다 아편장이 거지가 제일 미워요. 그래서 동냥아치가 와도 아편장인 줄 알면 밥 한술도, 돈 한푼도 안 주죠. 멀쩡한 사람들이 아편을 처먹다가 그렇게 되는 걸 생각하면, 아무 이유 없이도 죽이고 싶어요. 글쎄, 아편장이 되면 계집도 팔아먹는다는데..."

봉림은 눈을 치뜨고 순영을 바라보았다.

"참 그런데, 그것도 인명이 아니에요? 그 지경이 되면 불쌍하기야 하지. 그런데 말씀이나 해보세요."

"그래도 나는 그들이 보기 싫어서 그곳을 지나려면 눈을 감다시피 하고 다녀요. 그런데 그날은 막 그 앞을 지나는데 문 여는 소리가 삐드득하고 나기에 엉겁결에 흘깃 보니, 그 안에 아편장들이 쭈욱 늘어 앉아 있었어요. 나는 아편장이 둘락날락하길래 누군가 들어가서 아편을 사가는 줄 알았더니, 그런 것이 아니라 아편장들이 모이면 호명을 하여 차례로 앉아 있었죠. 그런데 흘깃 보니 아이구, 사람이 기가 차더라고요."

봉림은 말을 멈추고 순영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기가 막혀?"

순영은 어리둥절하여 아무 표정이 없는 눈으로 봉림을 바라보았다. "글쎄, 이걸 보세요.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흘깃 보니 그 중에 수복 아버지가 앉아 있었어요."

"수복 아버지가?" 순영은 황급하게 놀랐다.

"그래."

봉림은 입을 벌리고 혀 끝을 조금 내민 채로 순영의 기색을 살폈다.

"아니, 아편장 속에 있어? 거기서 사무 보는 사람으로 있어?"

"사무 보는 사람이 뭐예요, 아편장이 속에 끼여 있더라니까요."

"주제나 모양은 어땠어요?"

"주제나 모양은 말해봤자 뭐하겠어요. 헌 누더기를 용문산의 안개 두르듯 하고, 얼굴은 바짝 말라 황달에 걸린 저처럼 누룽퉁퉁한 것이 콧물을 찌르르 흘리고 형편 없었어요. 말해봤자 뭐해요. 왜 얻어먹으러 다니는 아편장을 못 봤겠어요?"

"..........."

"똑같지 않겠어요?"

봉림은 신이 나는 듯이 말했지만, 순영은 가슴이 놀라 얼굴빛이 흐려졌다.

"그래, 어쨌어요?"

순영의 말소리는 떨지 않으려 애쓰는 품이 역력했다.

"어쩌긴요, 나도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했어요. 볼 때 낯이 익은 듯하더니 곰곰 생각하니 그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일부러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별꼴을 다 보았죠. 아편장이라면 눈을 감고 다니던 사람이 그 사람 때문에 아편장이 설핏했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눈여겨 보자 하니까 가끔 그 사람이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 아무리 보아도 수복 아버지거든. 더욱 확실한 것은 한 번 그 사람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확 수그리고 도망가더라고요. 그러면 뭘 하는지."

봉림은 말을 멈추다가,

"그렇지만 세상에는 같은 사람도 많으니까 모르지. 하지만 그 사람이 그새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죠, 아우님?"

하고 기운을 낮추었다.

순영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가 없어서 한참 있다가,

"같은 사람도 있겠지만, 언니가 여북이나 똑똑히 보았을 거예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하는 듯이 한 손을 가슴에 대고 힘없이 말했다.

"아무리 똑똑히 보아도 잘못 보는 수가 있거든. 내가 공연히 그런 소리를 했나 봐. 아우님 속만 상하게."

봉림은 자리를 고쳐 앉았다.

"에구, 사람이 어찌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새로 근심을 간직하는 순영의 눈은 눈물이 엉겼다.

"아니야, 자세히 모르는 일을 가지고 걱정할 것이 아니야. 그리고 아주 남이 되었으니까 그런 말을 해도 관계없을 줄 알았지, 누가 저렇게 생각할 줄이야 알았겠어요. 고만둬, 내가 잘못 보았나 봐."

봉림은 순영을 위로했다.

"아니야, 그 사람이 그렇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어째서! 짐작하는 일이 있어요."

"언니가 그런 말씀을 하니 나도 생각나는 일이 있어요."

"응, 무슨 일?"

봉림은 흥미를 가지고 다가 앉았다.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누가 그렇게 되었으리라고 꿈에도 꾸었겠어요. 그랬더니 아마 그렇게 된 거로군요."

"응,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이야."

순영은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용기를 내는 듯이,

"날도 안 잊어버려요. 바로 지난달 보름날이야. 그때도 바느질을 하고 앉았는데, 밖에서 누가 동냥을 달라고 하는데 첫 마디는 못 알아듣고 두 번째 마디에 '돈 한 푼 주시오' 하는 소리가 수복 아버지 목소리 비슷하단 말이에요. 목소리가 조금 쉰 듯하기는 해도 그이 목소리 같단 말이에요. 그대로 심상히 알고서 동냥은 못 주었죠. 동냥 줄 것이 있나요, 어디. 그랬는데 이웃집에 가서 동냥을 달라고 하는데 목소리가 또 그렇단 말이지. 그래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러고 말았죠."

"그래, 그래서 어쩌면 그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있었나?"

봉림은 순영의 말 줄을 끊고 나섰다.

"그랬는데 일주일인가 지나서 바로 삼월 스무이튿날이야. 또 와서 동냥을 달라는데 또 그 목소리겠지. 그래 돈이 없다고 그대로 보내고서 하도 미심스럽기에 가만히 나가서 가는 것을 보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얼굴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뒷모습은 천연하단 말이에요. 방에 들어와서 곰곰이 생각하니 그 사람이 그렇게 되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이 안 나나, 그래도 의심이 나서 이 다음에 또 오거든 동냥을 주면서 보리라 하고 별러서 오기를 기다렸죠. 그랬더니 삼월 그믐날, 또 왔겠죠. 그래 돈 일 전을 가지고 나갔지요. 일부러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그랬더니 대문간에 거의 나가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이 나갈 수가 없었어요."

"아니, 왜 그렇게 떨려? 공연히 그래?"

봉림은 바쁜 듯이 물었다.

"모르지. 왜 그런지 공연히 그래진단 말이에요. 똑 무슨 호랑이나 만난 것 같아요. 그래 그 사람이 나를 몰라 봐서 가만히 돌아서서 들어와서는 동냥이 없다는 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죠. 자꾸 떨기만 하고. 그랬더니 동냥을 달라고 소리 지르다 못해서 저절로 가겠죠."

순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얼굴은 서로 봤어?"

"얼굴을 볼 수가 있었나요. 대문턱에 나가려다가 떨려서 두루 들어왔다니깐요."

"그러면 그 사람이 아우님 집인 줄 모르고서 왔을까?"

"알기를 어떻게 알아요. 그전에 살던 집 같으면 모르지만, 이사를 세 번이나 하고 문패가 있나 뭐 있나,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 그렇게 거지가 되어서 동냥을 달라고 하다가 동냥을 가지고 나가서 둘이 딱 마주치면 어떡해요? 아마 기가 막히겠죠."

"에구, 그러기에 말이야. 딱 마주치면 그이보다 내가 더할 것 같아요. 그러기에 처음에는 보았으면 하고 돈을 가지고 나가다가, 딱 마주치게 될 만하니까 가슴이 내려앉고 몸이 떨려지는 거죠. 그러니 딱 마주쳤으면 어떻게 될 뻔했어요?" 순영은 아직도 아슬아슬한 듯이 담을 쥐고 말했다.

"그러면 그게 분명한 수복 아버지인 거죠. 나도 그렇게 보았고 아우님도 그렇게 보았으니, 둘이 다 잘못 보았을 리가 없죠?"

"글쎄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되었었을 리가 없잖아요? 나는 목소리만 듣고 뒷모습만 보았으니까 얼굴은 똑똑히 모르죠. 그런데 만일 그 사람이 그렇게 되었으면 어떻게 하죠?"

순영의 얼굴빛은 다시 흐려졌다.

"어떻게 하긴 무얼 어떻게 해. 이제 무슨 상관이 있어서 그래요. 딴 남이 되었는데, 그전에 살던 정으로 조금 안됐기는 하였을까, 하지만 우리 같으면 그렇게 된 것이 도리어 고소할 것 같아요. 자기에게 원한을 끼친 아내를 아무 연고 없이 생나무 꺾듯이 잡아 떼고서 다른 계집하고 사는 그런 인종은 앙화를 받아야 마땅하죠. 천도가 무심치 않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까짓 것을 불쌍히 생각하면 무얼 하겠어요. 이 다음에 오거든 나가서 날 버리고 가더니 요 모양이 되었느냐고 얼굴에다 침이나 뱉고 말이죠."

봉림은 신이 나는 듯이 말했다.

"에구, 언니도, 사람이 차마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순영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할 테야? 도로 데리고 살 테야?"

"데리고 살지는 않더라도..."

"데리고 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 한단 말이야? 아랫목에 모셔 놓고 신주 위하듯 위할 테야?"

"에구, 언니도."

"그런 소리는 말아요. 당장에 데리고 사는 남편이라도 그 지경이 되면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데, 벌써 이혼한 사내를 어떻다는 말이야. 아편 중독이라는 것은 막 가는 일이에요. 그것은 고치지도 못하고 사형 선고를 등에다 붙이고 다니는 것이라, 어느 때에 죽을는지 모르는 것이요. 목숨이 붙어 있 다니 오죽한다. 그야말로 산 송장이지. 만일 그 사람을 아는 체 했다가는 큰일 나지. 그 사람과 같이 되고 말 것인데, 아예 그 사람을 아는 체할 생각은 말아요. 다른 사람 같으면 이러니 저러니 할 것이 없지만, 아우님이니까 친동생과 다름이 없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아우님의 인자한 마음으로 이런 것 저런 것 생각지 아니하고 또 그 사람을 아는 체할는지도 모르는 일이나, 그러면 둘의 신세를 다 망치고 마는 것이에요. 그리고 보통 사람같이 죽이면 죽고, 밥이면 밥, 가만히 먹고만 있으면 오히려 모르지만, 이건 밤낮 먹을 것만 찾고 인에 몰려서 제때가 되면 곧 죽는대요. 그럼 무슨 짓이라도 하여서 아편을 먹든지 침이라도 맞아야 한다니, 그 노릇을 어떻게 하느냐 말이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지, 안 그러우?"

봉림은 친절한 태도로 말했다.

"아편에 인이 박이면 그렇대요. 어쩌면 사람이 그 모양이 될까."

순영은 간단히 말을 하고 한숨을 쉰다.

"아우님이 한숨을 쉬고 내리쉬고 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지?"

봉림은 반만 웃으면서 순영을 들여다보았다.

"그럼 어떻게 하죠, 자꾸 불쌍한 생각만 나는데."

순영은 눈물이 글썽거렸다.

"아우님, 그러지 말고 생각을 돌려요. 그러면 내가 할 말이 있으니, 깨어진 시루를 생각하면 무얼 한담."

"할 말이 무슨 말씀이에요?"

순영은 새로운 정신으로 물었다.

"할 말이 있지마는 아우님이 생각을 돌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말이거든."

"글쎄 무슨 말씀이에요?"

"말을 해야 아우님에게 이로운 말이지 해가 되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듣지 않을 테면 말을 않는 것이 옳지."

"말을 해봐야 알지, 들을지 안 들을지 어떻게 아우?"

"이건 그렇게 할 말은 아니야. 듣는다면 하고 안 듣는다면 입밖에 낼 소리가 아니거든."

"글쎄, 말을 해 봐요."

"말을 하면 들을 테야?"

봉림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웃었다.

"내가 이로운 말이면 듣지."

순영도 웃는 모양을 지었다.

"그럼 이로운 말이지 해로운 말일까?"

"글쎄 해봐요."

"정말 들을 테야?"

"정말 들을 테야, 이로운 소리를 안 들을까 뭐."

"정말 듣는다고 그랬겠어요?"

"글쎄 들어요."

"그런데..."

하고 봉림은 얼굴빛을 고치고 진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그 사람은 그렇게 되었으니 여망이 없는 사람이거든. 그 사람이 그렇게 되지 않고 금광을 잘하고 있다면 또 몰라, 그 사람 말마따나 돈이 많이 생기면 도로 와서 같이 살는지. 하지만 그런대도 확실히 와서 같이 살는지도 모르는 일인데, 사람이 저 지경이 된 바에야 터럭 끝만큼이나 다른 여망이 있을 수가 있나, 안 그러우?"

"사람이 그렇게 되었으면 무슨 여망이 있어?"

순영은 한숨을 쉬려다가 멈췄다.

"그러니 말이야, 그러면 아우님은 무엇을 바라고 사느냐 말이야. 남편이 있나 자식이 있나, 무얼 바라고 사느냐 말이지."

"바라기야 무얼 바라, 죽을 때나 바라지."

"그러니 말이야. 그럴 필요가 없거든, 공연히 일생을 고생으로 지낼 필요가 무엇이냐 말이야. 그것도 사람이 이만저만하여서 잡힐 손이나 없는 것 같으면 모르지. 고생을 면하려면 면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아우님 같은 이야 백모로 보아도 고생할 자격이 아니거든 하니까 여러 말 할 것이 팔자를 고치면 어떻겠어요?"

봉림은 용기를 내는 듯이 힘있게 말했다.

"팔자를 고친다니요?"

순영은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봉림을 보았다.

"팔자를 고친다는 말을 못 알아들어?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마땅한 데 가라는 말이지."

"다른 데로 시집을 가란 말이야?"

"그래, 시집을 가면 어때. 지금 세상에 무슨 일이 있어? 사람이 상당한 서방을 두고 다시 시집을 가는 것은 못쓰지만, 이혼한 바에야 시집을 열 번인들 못 가랴. 내가 띄어놓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마땅한 곳에 지수할 데가 있어서 말을 하는 거예요. 생각해서 하라구, 그런 일은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봉림은 기운을 눅였다.

"차차 생각해봐야겠어요."

순영도 간단한 말로 그 자리는 가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