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
von 한용운 · 2026-08-25
법사는 차를 마시고 엄숙하게 듣고 있는 대중을 둘러본 뒤 말을 이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선행 수좌의 정신은 아름답다 할지라도, 그 희생을 바친 대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곧 김대철이라는 사람, 부도덕하고 의리 없는 데다 아편 중독까지 되어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그런 위인을 위하여,”
“공연히 한평생을 희생한 것은 그다지 칭찬할 일이 못 될뿐더러,”
“도리어 사회에 나쁜 본을 보인 것이 아니냐고 헐뜯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혜를 갚고 자비를 베푸는 데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처지를 저울질하여 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김대철의 인격이 훌륭하고 처지가 넉넉했다면,”
“선행 수좌로서는 은혜를 갚을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고, 몸을 바쳐 갚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김대철이 아무리 인격이 모자랐다 한들, 물에 빠져 죽게 된 선행 수좌를 건져 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선행 수좌의 은인이 된 것은 분명하다.”
“또 불행히 아편 중독자가 되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선행 수좌에게는 은혜를 갚고 자비를 베풀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런 기회에 진정으로 힘을 다해 도운 것이 아름답고 위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세상 사람은 형편이 좋은 이를 위해서는 그런 마음을 내지도 않으니, 함부로 의논할 바가 아니다.”
“우리 불교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대자대비는 사람뿐 아니라 생명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고루 미치는 것이다.”
“『대장엄경론』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적에 한 비구가 밥을 빌러 다니다가 구슬 만드는 집에 가서 밥을 청하였다.”
“마침 주인은 그 나라 임금의 부탁으로 마니주를 갈고 있었는데, 밥을 가지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마당에 있던 거위가 그 구슬을 먹을 것인 줄 알고 삼켜 버렸다.”
“주인이 나와 구슬이 없어진 것을 보고 비구를 의심하여 몰아세웠다.”
“비구는 거위가 죽임을 당할까 염려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인이 비구를 몹시 때려 입과 귀에서 피가 흐르자, 거위가 그 피를 핥았다.”
“주인은 노여움을 옮겨 거위를 때려죽였다.”
“그제야 비구가 게송으로, 제가 거위를 대신해 고통을 받으려다 도리어 거위를 죽게 했음을 밝혔다.”
“주인이 거위의 배를 갈라 구슬을 찾아내고는 뒤늦게 비구에게 참회하였다.”
“그 비구를 아주 비구라 일컫는다.”
“이는 생명과 의식이 있는 거위를 위하여 한 일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초계 비구라는 이도 있었다.”
“그는 일찍이 도적을 만나 풀로 몸이 묶였는데, 풀이 상할까 두려워 풀을 끊고 일어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이가 수레에서 내려 손수 묶인 것을 풀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세상 사람의 작은 소견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거위나 풀 한 포기를 살리기 위해 제 몸을 희생하는 것이 불교의 대자대비이다.”
“하물며 사람이며, 게다가 제 목숨을 살려 준 은인에게라면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선행 수좌는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사람이니 불문에 드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지금 와서 보면 진정한 은인은 김대철이 아니라 공수좌 스님이다.”
“그러니 그 어른의 상좌가 되는 것 또한 마땅한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