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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2

von 한용운 · 2026-08-25

순영은 입버릇처럼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다가 홀연히 부처님께 귀의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것인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 절이나 찾아다니며 받아 달라고 청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디 아는 이가 있어 소개해 주거나 길을 일러 줄 사람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앞길이 캄캄하여, 어두운 밤중에 알지도 못하는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것 같았다.

그러다 홀연히 생각이 돌아, 대철과 운옥이 마지막으로 하던 말을 되씹어 보았다.

대철이 원산 바다에서 자기를 건져 준 것이 환희사의 어느 여승이 돈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그때 어느 여승이 자기에게 치료하라고 돈 십 원을 주던 일까지 생각났다.

그 생각이 나자 순영은 어두운 길을 헤매다 등불을 얻은 것처럼 앞이 환하게 트이는 듯했다.

그리하여 다른 것은 물을 것도 생각할 것도 없이 환희사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순영은 하찮은 세간이며 옷가지를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치웠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사직공원을 떠날 때에는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하게 고생한 곳이라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던 그곳이건만 어찌 그리 서운한지 몰랐다.

한 발자국에 돌아보고 두 발자국에 돌아보며, 돌아볼 때마다 눈물을 금할 수 없었다.

순영의 치마저고리는 있지도 않은 나뭇가지에 걸리는 듯했고, 발끝은 있지도 않은 돌부리에 채는 듯했다.

순영이 환희사에 이른 것은 그로부터 얼마 뒤의 일이었다.

북쪽이라 그런지 가을 기운이 완연했다.

날씨도 서늘하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환희사 어귀에 다다르니 어디서 흘러나오는 물인지 티끌 한 점 없는 맑은 시내가 흘렀다.

아무 걸림 없이 절로 가고 절로 오는 뜬구름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티끌 세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한다든지, 어느 것을 슬퍼하고 미워하고 사랑한다든지,

사람의 세상에서 시시각각 보고 듣고 겪는 그런 인정과 세태를 언제 씻어 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수풀 사이에서 마음껏 지저귀며 오락가락하는 이름 모를 새들이 있었다.

물결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다시 내려가기도 하는, 처음 보는 물고기들도 있었다.

모두가 즐겁고 평화로울 뿐, 다투거나 시기하는 마음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순영은 그 새와 물고기들이 자기를 보고 놀라는 것 같을 때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러운 사람이 깨끗하고 평화로운 짐승을 놀라게 하는 것이 곧 죄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숨소리를 죽이고 발걸음을 멈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댕, 댕.

구름과 나무 사이로 울려 나오는 종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실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향 연기 냄새도 맡았다.

절이 가까워졌음을 알면서, 순영은 머지않아 신선이 되고 부처가 될 것만 같았다.

점점 안으로 들어가자 절집이 한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높이 걸어 모신 괘불의 거룩한 모습이 정면으로 보였고, 오색 깃발이 펄펄 날렸다.

장엄한 도량에 가사를 두른 스님들이 오락가락했다.

절의 풍속을 잘 알지 못하는 순영이 보기에도 예사로운 날이 아니어서, 무슨 일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세상만사를 저버리고 오직 한 줄기 바라는 마음으로 왔던 순영이 홀연히 마음이 움찔하여 발을 멈추었다.

어디로든 몸을 감추고 싶었다.

도로 돌아서 가고 싶었다.

그렇게 어찌할 줄 모르고 머뭇거리는데, 장삼을 입은 여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근심스러운 낯빛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어귀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순영과 눈이 마주쳤다.

“여기가 환희사예요?”

순영이 허리를 굽히며 공손히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여승은 일어나 합장하고 답례하더니 순영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서울서 옵니다.”

“먼 데서 오셨군요. 무슨 일로 그리 멀리 오셨어요?”

“별로 볼일도 없이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좀 앉으시지요.”

여승은 앉았던 자리를 조금 비키며 앉기를 권했다.

두 사람이 앉은 뒤에 순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절에 무슨 일이 있어요?”

“네, 이 절에 계시던 노스님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내일이 사십구일입니다.”

“어제부터 삼일재를 지내는 중입니다.”

“그럼 부자 스님이 돌아가신 게로군요?”

순영은 공연히 마음이 섬뜩해지며 붙잡을 것이 없는 듯했다.

“아니오, 부자는 아닙니다.”

“생전에 거룩한 일을 많이 하시던 스님이라, 사십구재도 여러 사람이 추렴하여 절에서 지내 드리는 것입니다.”

여승의 얼굴에 슬픈 빛이 어렸다.

“무슨 좋은 일을 그렇게 많이 하셨어요?”

순영은 혹시 자기가 찾아온 그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욱 떨렸다.

“좋은 일이요? 여러 가지로 많이 하셨지요.”

“구차한 사람을 건져 주고, 병든 사람을 구완하고, 죽게 된 사람을 살리는 일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그 어른을 보살이라고도 하고 생불이라고도 했지요.”

“그 스님이 열반하시니 우리 중들뿐 아니라 속인들 중에도 애통해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 스님이 저희 스승이십니다.”

여승은 눈물을 씻었다.

순영은 어귀에 들어설 때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었다.

저런 산골 절간은 인간 세상과 달라 그 안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걱정이니 근심이니 하는 것이 없을 터이고,

눈물 같은 것은 이름조차 모를 소리이려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승이 근심스러운 낯으로 앉아 있다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니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순영은 자기가 찾아온 여승을 묻고 싶었으나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몰랐다.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며 생김새조차 또렷이 기억나지 않으니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한참 말문이 막혀 있다가, 부득이 제가 찾아온 사연을 처음부터 대강 이야기하고 그런 스님을 아느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