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3
von 한용운 · 2026-08-25
대철이 고개를 들려고 했다.
“쯧쯧, 이래서 어쩌시려고요.”
순영은 두 팔로 얼싸안아 조심스레 일으켰다.
그러나 대철이 몸을 가누지 못해, 순영은 그를 붙든 채 앉아 있었다.
“에구, 죽겠다.”
대철은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순영에게만 의지한 채로 중얼거렸다.
“삼거웃같이 얽힌 이야기를 무슨 말부터 해야 옳을까.”
그러고는 몸을 조금 움직이더니 고개를 순영 쪽으로 돌리려 했다.
“여보.”
“네?”
“나는 오늘 저녁을 넘기지 못하고 죽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죽기는 왜 죽어요.”
“아니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내가 알지요. 몇 시간 버티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할 말이 있소.”
“말을 한들 좋은 말은 아니오.”
“나는 평생 죄악을 많이 지은 놈인데, 그중에도 당신에게 더욱 많은 죄를 지었소.”
“그런 말이나 하고 죽어야지요.”
침을 삼키고 조금 진정하더니 다시 불렀다.
“여보세요.”
“네?”
“당신하고 내가 내외로도 지내 보고, 그럭저럭 함께 지낸 지가 십여 년이 아니오?”
“그렇지요.”
순영은 대철의 말이 옳든 그르든 그저 듣기로만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를 어떤 사람인지 아시오?”
“그야 알지요.”
“아니오, 모르지요.”
“내가 어디서 났으며 어떤 짓을 하던 사람인지 모를 뿐 아니라, 내 이름조차 모르지요.”
순영은 이름조차 모른다는 말에 기가 막혀 말없이 대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본래 성이 김가가 아니오.”
“그럼 뭐예요? 김가가 아니라니.”
순영은 더욱 놀랐다.
“내 성은 강가요.”
“강가로 행세하는 데도 있지만 보통은 김가로 행세했소.”
“당신과 혼인 신고를 할 때는 강가로 했으니 호적에는 강가로 올라 있지요.”
“그 밖에는 김가로 행세했으니 당신도 여태 내 성을 몰랐던 게요.”
그러고는 한숨을 지었다.
순영은 그저 듣고만 있었다.
“이름을 숨긴 까닭은 죄를 많이 짓고 다녀 몸을 피해 다녔기 때문이오.”
“지은 죄야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대강만 말하면 사기도 하고 횡령도 하고 간통죄도 지었소.”
“그 밖에도 못된 짓을 많이 해서 늘 피해 다녔지요.”
“후유…… 죽게 된 마당에 무슨 소린들 못 하겠소.”
“또 당신에게는 평생에 지은 죄를 다 말하고 죽어야지요. 에구…….”
“그리고 나는 본래 함경남도 정평 사람이오.”
“그러나 누구든 나를 원산 사람으로 알지, 정평 사람인 줄 아는 이는 별로 없소.”
“그리고 당신은 나를 은인이라 하지요.”
“하기야 물에 빠져 죽게 된 당신을 건져 주었으니 은인이라 여길 만도 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나를 의협심 있고 훌륭한 사람이라 여겨 혼인까지 했고,”
“이제껏 이 고생을 해 가며 이 꼴이 된 나를 끝끝내 거두어 주고 있는 것 아니오?”
“그러니 내가 당신을 건져 주던 이야기를 자세히 하리다. 후유…….”
그가 숨을 돌리는 동안 순영은 정신을 차려 들으려 했다.
“나는 본래 헤엄을 잘 치는 사람이오.”
“그때 그 배에도 내가 헤엄을 잘 친다는 걸 아는 사람이 더러 있었소.”
“마침 당신이 빠졌는데 건져 낼 만한 사람이 없으니 나에게 건져 내라고 권하는 이들이 있었소.”
“그러나 나는 듣지 않았소. 까닭 없이 애쓸 필요가 없다고 말이오.”
“그렇게 건져라 싫다 하며 승강이를 벌이던 참에, 정평 환희사에 있는 여승 하나가 거기 있었소.”
“나하고 안면이 조금 있는 이였지요.”
“그 여승이 와서 당신을 건져 주라고 권하는데도 내가 듣지 않았소.”
“그러자 그 자리에서 돈 삼십 원을 내놓으며, 누구든 건져 주면 그 돈을 주겠다고 자꾸 나를 권합디다.”
“그래서 나는 그 삼십 원이 욕심나서 당신을 건져 준 것이오.”
“당신을 건져 내오니 그 여승이 삼십 원을 주고, 수고했으니 술이나 사 먹으라며 오 원을 더 주더군.”
“그러니 내가 당신을 건졌다 한들 은인 될 것도 없고, 의협이니 훌륭하니 하는 말은 당치도 않소.”
“건져 준 동기로 말하면 비루하기 짝이 없는, 못난 놈이지요.”
“그 여승이 아니었으면 당신은 물귀신이 되었을 것이오.”
“당신의 은인이요 의협하고 훌륭한 사람은 실로 그 여승이오. 아이, 죽겠다…….”
“또 당신에게 장가든 이야기를 하지요.”
“당신이 은혜를 갚는다고 나와 혼인할 결심을 했으니, 내 생각만 있으면 으레 혼인이 되었겠지요.”
“그러나 내가 당신과 혼인한 뜻은 실로 당신에게 장가들고 싶어서가 아니었소.”
“당신이 그때 저금해 둔 돈이 얼마간 있다기에 그것을 깎아먹으려 한 것이오.”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당신은 내가 금광을 한 줄 알지만, 금광이 무슨 금광이오.”
“나는 이제껏 금광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위인이오.”
“그때도 금광 출원을 한다며 당신 돈을 있는 대로 가져갔고,”
“그 뒤에도 금광을 한답시고 당신의 바느질 품삯 한 푼까지 긁어 가지 않았소?”
“내가 그런 놈이오.”
“그리고 당신과 이혼하게 된 일은 아까 난향이라는 여편네가 와서 다 이야기했으니 더 말할 것 없소.”
“그 여편네도 정신이 없어 내 행동을 다 말하지는 못했소.”
“나는 온갖 죄악을 지은 가운데 당신에게 그런 죄를 짓고도 여태 말하지 않고,”
“도리어 당신에게 이 고생을 시키고 있었소.”
“나는 열 번 죽어도 싸지요.”
“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착한 마음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 보고 싶소만, 만사는 다 늦었소.”
“조금만 더 말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