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2
von 한용운 · 2026-08-25
대철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한숨을 쉬며 돌아누웠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마음을 진정하세요.”
양재기를 들고 나서면서 순영은 대철의 태도가 더욱 이상하게 여겨졌다.
아무리 고약한 사람도 죽을 때가 되면 마음이 착해진다더니, 대철도 죽으려고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순영이라고 대철이 머지않아 죽으리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죽는다 한들 조금이라도 애달플 것도 없었다.
그러나 산 사람이 죽는다는 그 큰 사실이 제 앞에 닥쳐온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내려앉고 정신이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몹시 괴로울 때나 대철이 정말로 못 견뎌 할 때면, 병을 고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일찍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면서도 막상 죽음이 앞으로 기어드는 것을 떠올리면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남산 너머로 몰려오는 무거운 먹구름이 건들건들 부는 바람을 따라 삽시간에 북악산을 덮었다.
금세 소나기가 쏟아질 듯 굵은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지자,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 너나없이 달음질을 쳤다.
순영이 설렁탕을 사 들고 사직공원에 들어설 때에는 빗방울이 제법 잦아졌다.
바람은 더욱 거세져 심상치 않은 날씨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왁자지껄 웅성거리던 소리만이 아직 다 스러지지 않은 채, 비바람에 몰려 어디론가 떠나가는 듯했다.
어지러운 발자국과 질펀하게 흩어진 물건들이 되는대로 굴러다녔다.
번화하던 도회가 전쟁을 겪고 빈터가 된 것처럼, 유난히 어수선하면서도 지나치게 적막하여 처량하기까지 했다.
그 가운데 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일어나려 해도 일어나지 못한 채, 그저 꾸물거리며 신음하는 대철이 있었다.
사바세계의 생존 경쟁에서 패하고 중상을 입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직 그런 부상병을 거두어 주는 적십자 병원이 생기지 않았다.
비가 와서 목숨이 붙은 채로 떠내려간다 한들, 구해 주기는커녕 가엾이 여길 사람조차 없었다.
“에구, 가엾어라. 일어나지도 못하시는구려.”
근심스럽고 따뜻한 말이 들려왔다.
“어서 일어나서 이것 좀 잡수세요. 설렁탕 사 왔어요.”
남들은 보기만 해도 얼굴을 찡그리고 외면하는 그 더러운 몸뚱이를, 알심 있게 끌어안아 가볍게 일으키는 천사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눈을 간신히 떠서 힘없이 순영을 바라보려던 대철은,
“아이구, 죽겠다.”
그러고는 도로 퍽 쓰러졌다.
“정신 차리고 일어나세요. 어서 잡숫고 문간으로 가야지요.”
“비가 와요. 큰비가 오겠어요.”
순영은 다시 대철을 일으켜 부축하고, 한 손으로 설렁탕 그릇을 들어 입 앞에 대어 주었다.
대철은 떨리는 두 손으로 그릇을 받쳐 들고 한 모금을 마시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써서 못 먹겠소.”
고개를 내두르며 그릇을 밀어내고는 도로 드러누우려 했다.
“에구, 갑자기 왜 이러세요? 더 드세요.”
“무엇을 좀 잡숴야 기운을 차리지요. 어서 좀 드세요.”
“그리고 어서 저리로 가세요. 비가 점점 더 오는데요.”
순영은 쓰러지려는 대철을 부둥켜안고 설렁탕 그릇을 입에 대었다.
두어 모금을 억지로 마신 대철이 고개를 젖히며 순영에게 기댔다.
“암만해도 못 먹겠소. 맛이 소태 같고 목구멍에 넘어가지를 않는 걸 어떻게 먹겠소.”
빗방울이 자꾸 떨어져 나무 밑으로도 물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에구, 일어나세요. 문간으로 가야지요. 비가 많이 오는데요.”
순영은 설렁탕을 미처 어쩌지 못해 살림을 넣어 둔 거적 밑에 넣어 두고 대철을 일으켰다.
그러나 대철은 일어나려다 도로 쓰러졌다.
억지로 일으켜 부축해 가면 두어 걸음 걷다가 주저앉아, 도저히 제 발로 걸어갈 수가 없었다.
“아이구, 이를 어쩌나. 비가 자꾸 오는데.”
“그럼 업히세요. 내가 업고 가 볼게요.”
대철은 업히지 않으려 하다가 하는 수 없이 업혔다.
연약한 순영이 저보다 키 큰 장정을 업고 쉽게 걸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힘없는 다리를 길게 늘어뜨려 질질 끌리는, 송장 같은 사람을 업고 가기란 더욱 어려웠다.
비는 자꾸 내리고 바람은 땅을 뒤흔들 듯 불었다.
순영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대철을 데리고 이런 일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대철은 점점 쇠약해져 눕고 일어나는 것조차 순영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똥오줌마저 제 힘으로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순영은 여러 사람의 눈을 피하려고, 비교적 시원하고 의지도 되는 가래나무 밑에서 자리를 옮겼다.
남쪽 언덕 아래 개울가로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루하고 스산하게 날을 보내는 사이, 어느덧 그 무성하던 여름이 지나갔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돌아 제법 선선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길도 차차 뜸해졌다.
한뎃잠을 자려면 밤저녁으로 선선한 날이 많았고, 몸이 성치 못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서늘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몸과 정신에 아무런 저항력도 남지 않은 대철은 한낮의 더위에도 헐떡였고 밤의 찬 기운에도 벌벌 떨었다.
대철이 더위를 견디지 못해 소리를 지를 때가 있었다.
“아이구, 더워 죽겠다.”
진땀을 흘리며 푸푸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면,
순영은 찬 우물물을 떠다 놓고 수건을 갈아 가며 이마에 얹어 주고 몸도 씻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