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2
von 한용운 · 2026-08-25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딴 이야기를 꺼내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얼굴이나 외양이 그다지 볼품없는 편도 아니야.”
“저 모양이 되었으니 그렇지, 화장이라도 하고 꾸며 놓으면 제법 괜찮을 거야.”
“그러니 더 어려운 일이란 말이오.”
“여자가 아주 못생겨서 어디에도 댈 데가 없다면 혹 모를 일이지요. 아무 데도 붙잡힐 손이 없으니까.”
“하지만 저만하면 어디에든 붙잡힐 손이 있단 말이오.”
“들으니 적잖이 꾀는 사람도 있었답디다.”
“저렇게 고생할 것 없이 마땅한 데 가서 잘 살라고 했는데도 기어이 듣지 않고 저 사람을 위해 저러고 다닌다니,”
“그 속내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어려운 일이지요.”
“저 여자가 우리 집에도 자주 오지요. 밥을 얻으러도 오고 동냥도 오고 하는데,”
“우리는 다른 거지는 못 주어도 저 여자에게는 꼭 주라고 해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아요.”
“나도 그렇지요.”
“나도 그러는데요.”
그들은 차림새로 보아 무지렁이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학문이 있거나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순영을 찬탄하기도 하고 제 심심풀이도 할 겸 이 말 저 말 하다가, 한 사람이 발의했다.
“여보, 우리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십시일반으로 돈푼씩 거두어 저 여자를 도와주는 게 어떻소?”
“아, 그것 참 좋은 말씀이오.”
여러 사람이 한입으로 찬성하여 얼마씩 거두었다.
그러고는 곰살궂게 순영에게 갖다 주니,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언니.”
그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신여성 한 무리가 있었다.
산뜻한 양장에 깨끗한 운동화를 신은 여자가 눈을 힘 있게 굴리며 불렀다.
덜 익은 포도알처럼 검고 윤기가 도는, 푸른 기마저 감도는 눈이었다.
누가 보아도 영리하면서 성깔이 있어 보였다.
“응?”
중키에 몸이 딱 벌어지고, 깎았다가 기르는 중인 머리를 한 여자가 대답했다.
짙은 회색 파라솔을 옆으로 짚고 거기 기대듯 몸을 비스듬히 기울인 채, 눈은 딴 데를 보며 무심한 듯한 대답이었다.
“이것 좀 보아요.”
“응? 뭘?”
그 여자도 시선을 돌리고 다른 여자들도 고개를 돌렸다.
“우리 조선의 여성 운동이 될 수 있을까?”
“난데없이 무슨 소리야?”
“운동 전선에 나선 여자가 자나 깨나 투쟁을 생각하지, 딴 게 있어?”
“아니, 또 변증법적 이론이야? 우리 운동이야 시간이 문제지 언제든 되지 않겠어?”
“우리가 그런 자신과 낙관은 가진다지만, 사실은 좀처럼 될 것 같지 않아.”
“왜?”
“우리가 겪어 본 바로 보아 모든 현상이 그렇지만, 당장 여기서 보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지 않아?”
“글쎄, 무엇 때문에 말이야? 말을 구체적으로 해야 알지.”
일행이 흥미를 느끼며 귀를 기울였다.
“나는 저런 걸 보면 곧 죽이고 싶은 생각이 나요.”
말하는 여자가 흥분했다.
“뭘 죽여?”
듣는 사람들이 다소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아따, 저기 있는 열녀 말이야.”
“열녀가 누구야?”
“저기 앉은 아편쟁이 계집 말이야. 그게 장안에 소문난 열녀 아닌가.”
“그러니까 저기 주머니깨나 있는 썩은 것들이 칭찬을 하고 돈까지 거두어 주는 거지.”
“그런데 열녀를 왜 죽여? 열녀라는 게 나쁜 것도 아닌데.”
파라솔을 짚은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뜻을 아는 듯 빙긋이 웃었다.
다른 여자들은 미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저런 것들 때문에 여권 확장이 안 되거든.”
양장한 여자가 입을 실룩이며 혀를 찼다.
“아니, 그 여자가 왜 여권 확장을 못 하게 한다는 거요?”
마흔이 넘어 보이는 여자가 물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와 괴롭게 잡힌 주름살에 온갖 풍상을 다 겪은 흔적이 드러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갸름하고 서글서글한 눈에는 애교 있는 웃음이 어려 있었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구식 여자들처럼 말씀하세요.”
“여권 확장이라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개성을 펼치는 것이거든요.”
“개성이 없으면 무엇이 되겠어요.”
“낡은 도덕으로는 여자란 남자에게 복종만 하는 것이요, 손톱만 한 권리도 없거든요.”
“개성을 지우고 남편만 위하는 것을 현모양처라 하고,”
“남편을 위해 수절하거나 죽기까지 하는 것을 열녀라 하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여자란 남자를 위해 생긴 한 물건에 지나지 않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에요.”
“그런 낡은 도덕을 부수고 올바른 새 도덕을 세우려고 우리가 여성 운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지요.”
“그런데 저런 썩은 것들이 낡은 도덕의 노예가 되어,”
“개성이라고는 한 푼어치도 없이 다 죽어 가는 아편쟁이를 쫓아다니며 열녀인 체하고 저 지경을 하니,”
“조선의 여성 운동이 될 수 있겠느냐는 말이에요.”
“게다가 썩은 사내들은 그게 좋다고 찬성하며 돈까지 거두어 도와주니 기가 막힐 일 아니에요?”
“우리는 성미가 편벽되다고 할까 철저하다고 할까,”
“우리 운동에 방해가 되는 저따위 인간을 보면 곧 죽이고 싶어서 못 견디겠어요.”
양장한 여자는 주먹을 쥐고 순영이 있는 쪽으로 달려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다른 여자들이 그제야 알아들은 듯이 맞장구를 쳤다.
“에구, 참 그래. 사실 저런 것들 때문에 여성 운동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거야.”
“나는 또 무슨 소린가 했더니. 하여간 관찰이 빨라. 머리가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