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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1

von 한용운 · 2026-08-25

순영이 처음 사직공원으로 왔을 때만 해도 순영은 순영대로, 대철은 대철대로 다니며 밥도 얻고 돈푼도 얻었다.

그래서 살림에 다소 보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철이 점점 눈이 어두워져 혼자 다닐 수 없게 되면서부터는, 순영이 대철을 이끌고 다니며 밥이나 돈을 얻어야 했다.

그러다 대철이 걸음조차 변변히 걷지 못하게 되자, 대철은 한편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눕게 되었다.

그때부터 순영 혼자 두 사람 몫의 살림을 온전히 짊어졌다.

순영은 한쪽 어깨에 자리를 메고 한 손에 바가지를 든 채 온 장안을 닥치는 대로 돌아다녔다.

밥이든 쌀이든 돈이든 되는 대로 얻어다가 두 입에 풀칠을 하고 옷가지도 지어 입혔다.

대철의 주사약을 대고도 남는 것이 있으면 군것질까지 시켜 주었다.

밤이 되면 대철 곁에 누워, 만사가 자유롭지 못한 그의 시중을 하나에서 열까지 들어 주었다.

순영에게는 날마다 그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 일생의 큰 경륜이요 큰 사업이었다.

그러는 동안 닥치는 일 가운데 쓰라리고 아프지 않은 것이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순영은 언제나 만족한 듯하여,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한숨을 짓고 눈물을 흘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는 동안 한 입 두 입 건너 순영의 사정이 알려졌다.

사직공원에 다니는 사람들뿐 아니라 서울 바닥에서 대개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순영이 밥을 얻으러 다니거나 동냥을 하러 갈 때면 이런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저게 아편쟁이 계집이래. 밤낮 얻으러 다니는 거지야. 없어, 어서 가.”

그렇게 볼품없이 말하며 미처 들어서지도 못하게 내쫓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런 일을 당하면 너무 부끄럽고 괴로워, 이 세상과 함께 자기 자신을 파멸시키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끝내는 두어 줄기 뜨거운 눈물로 박정한 세태와 서러운 제 마음을 함께 씻어 버릴 뿐이었다.

“아이구, 저 댁네가 왔군. 병든 남편을 위해 저렇게 고생을 하니 가엾은 일이지.”

그렇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밥이나 반찬을 남달리 챙겨 주는 집도 많았다.

그럴 때면 순영의 마음도 고마워, 이 세상이 제법 따뜻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빌러 다니며 온갖 인정과 세태를 보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 하늘 아래 같은 세상이요 똑같이 이목구비를 타고난 사람들인데, 마음 쓰는 것은 어찌 이토록 다를까.

그 까닭을 알아보고 싶었으나 너무 막연하여 쉬이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순영을 박대하는 집보다 동정하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순영이 그만한 생활을 이어 가기는, 다른 거지들에 견주면 고통스럽다기보다 차라리 넉넉한 편이었다.

순영은 그러는 동안 언제나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그만한 생활이나마 남들보다 낫게 되는 것이 부처님의 은혜라고 여기며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처음 얼마 동안 순영은 대철의 병을 고쳐 보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써 보았다.

주사 횟수를 줄여 보기도 하고 아편 중독이 풀린다는 약도 써 보았다.

그 밖에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은 다 해 보았으나 되지 않았다.

게다가 겪어 보니 대철의 마음가짐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는 일이었다.

병은 점점 더해 가는 한 길을 걷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순영은 병을 고쳐 보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대철의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제 힘껏 돌보아 주다가, 마지막 운명은 자연에 맡기기로 했다.

굶어 죽지 않고 주사약이 끊이지 않을 만큼만 얻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겼다.

동냥을 많이 하려 애쓰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대철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보살폈다.

하다못해 이라도 잡아 주는 것이 순영의 하루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세상이라 순영에 대한 평판이 적지 않았다.

“영감, 저기 있는 저 여자를 보시오.”

“어떤 여자 말이오?”

“아따, 저기 가래나무 밑에 아편쟁이하고 같이 앉은 여자 말이오.”

“그게 그 아편쟁이 마누라랍디다.”

“그런데 그 여자의 내력을 들으셨소?”

“듣고말고. 그 여자 일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소. 여기 다니는 사람이야 다 알지.”

“그런데 저런 게 정말 연애지.”

“연애고말고.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하오?”

“우리야 연애가 뭔지도 모르고 늙었지만, 요새 젊은 애들은 밤낮 연애를 찾습디다.”

“그런데 연애인지 뭔지 하루 하다 말고 이틀 하다 말고,”

“시집가고 장가갔다가도 이혼하기를 우리네 담배 한 대 피우는 것보다 더 쉽게 합디다.”

“연애를 하려거든 저만큼은 해야 비로소 연애라 할 것 아니오?”

“저런 일은 연애에 견줄 일이 아니지요.”

“요즘 세상에 저런 내외가 어디 있소?”

“우리가 어려서 어른들께 듣기로는 남편을 위해 죽는 아내도 있다고는 합디다만, 그런 여자가 어디 흔하오?”

“설령 그런 여자가 있다 한들, 잠시 남편을 위해 죽기는 오히려 쉬운 일이지요.”

“저렇게 병든 사람을 따라다니며 오랫동안 고생하기는 훨씬 더 어려운 노릇이오.”

늙은이 한 무리가 의관을 벗어 나뭇가지에 걸고 서성이며 순영을 가리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런데 지금은 내외간도 아니랍디다.”

“그거야 누가 아오. 내외간이건 아니건 그게 무슨 상관이오?”

“내외간은 그만두고 친부모라도 저렇게 할 사람이 누가 있겠소?”

“게다가 내외간이라 한들 사내가 저 지경이 된 마당에 남녀 간의 정이 남아 있을 수가 있소?”

“어쨌든 저 여자의 타고난 천품에서 우러나는 마음이 아니면 저렇게 할 수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