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큐
von Ensemble
제2부 기준의 충돌
제1화. 당구대는 하나가 아니다
월요일 저녁, 민호는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프로젝트 일정 관리안은 각 부서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되었고,
팀장은 다음 날 오전 회의에서 최종안을 검토하자고 했다.
급한 업무는 끝났지만 민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모니터에는 일정표가 떠 있었다.
담당자별 작업 기간, 중간 검토일,
수정 요청이 늦어졌을 때의 대체 일정이 차례로 정리되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자신이 만든 계획에 빈틈이 없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부서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처음 생각했던 계획을 여러 차례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놓친 부분도 발견했고,
처음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제안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민호는 문서를 저장하고 컴퓨터를 껐다.
회사에서 자신의 역할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승진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앞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혼자 답을 정한 뒤
다른 사람에게 따르라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결과로 보여 줘야 할 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민호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현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교육기관에서 수료생 두 명과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한 사람은 관련 업체에 취업했고,
다른 사람은 교육을 마친 뒤에도 다른 분야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현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본 뒤 결정하겠다고 했다.
민호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잘 알아보고 네가 납득할 수 있는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이야기 들어 보고 궁금한 게 있으면 같이 생각해 보자.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예전 같으면 자신이 어떤 말을 덧붙였을지 떠올랐다.
교육을 받는 데 드는 비용부터 계산하자고 했을 것이고,
취업률을 확인하라고 했을 것이며,
가능하면 실패할 확률이 낮은 선택을 하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그런 조언이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우가 무엇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일을 해 보고 싶은지 충분히 듣기 전에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결론을 내리려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민호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당구장에 가고 싶었다.
***
태성당구장에 들어서자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민호가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자 태성이 카운터에서 손을 들었다.
“오셨습니까?”
“네. 오늘은 사람이 많네요.”
“저녁 시간이라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 오신 분들도 몇 분 계십니다.”
당구장 안쪽에서는 두 사람이 경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당구대에서는 성철이 누군가에게 공의 배치를 설명하고 있었고,
정호는 빈 당구대에서 혼자 스트로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재식은 벽 쪽 의자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민호는 재식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직접 치지 않으십니까?”
“조금 전에 한 게임을 했습니다. 지금은 구경하는 중입니다.”
“무슨 경기입니까?”
재식은 당구대 쪽으로 턱을 살짝 움직였다.
“두 분 다 실력은 있는데 경기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민호는 당구대를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공의 배치가 좋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득점을 노렸다.
반면 상대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경로를 찾아 차분하게 공을 쳤다.
한쪽이 공격적으로 점수를 쌓으면 다른 쪽은 실수를 줄이면서 기회를 기다리는 듯했다.
민호는 한동안 말없이 경기를 지켜보았다.
“어느 쪽이 더 좋은 방식입니까?”
재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요. 자기 실력으로 성공시킬 수 있는 공인지,
실패했을 때 상대에게 어떤 배치가 남는지,
점수 차가 얼마나 나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공격적으로 치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군요.”
“그렇죠. 무리한 공격과 필요한 공격은 다릅니다.
반대로 안전하게 친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선택인 것도 아니고요.”
민호는 다시 당구대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아직 공의 배치만 보고도 가능한 경로를 모두 파악하기 어려웠다.
재식처럼 상대의 다음 차례까지 고려하는 판단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사람마다
경기를 풀어 가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방식만이 정답은 아니었다.
***
잠시 뒤 경기가 끝났다.
두 사람은 점수를 확인한 뒤 가볍게 인사했다.
이긴 사람은 웃으며 큐를 정리했고,
진 사람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 카운터 쪽에서 태성이 누군가를 불렀다.
“민호 씨, 잠깐 소개할 사람이 있습니다.”
민호가 돌아보자 태성 옆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오십대 후반쯤 되어 보였고, 당구 큐 케이스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옷차림은 단정했지만 얼굴에는 오랜 시간 이동한 사람처럼 피곤한 기색이 있었다.
“이쪽은 박인수 씨입니다.
예전에 이 근처에서 당구를 치셨는데,
한동안 다른 지역에서 지내다가 다시 오셨습니다.”
인수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박인수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김민호입니다. 반갑습니다.”
인수는 당구대들을 둘러보았다.
“여기 분위기가 괜찮네요. 제가 예전에 다니던 곳은 요즘 없어졌습니다.
근처에서 당구를 칠 곳을 찾다가 태성 사장님을 알게 됐습니다.”
태성이 웃으며 말했다.
“인수 씨는 예전부터 당구를 치셨습니다.
다만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못 치셨다고 하네요.”
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은 거의 못 쳤습니다. 일이 바빠서요.
이제 시간이 조금 생겨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민호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럼 실력이 상당하시겠네요?”
인수는 손사래를 쳤다.
“그건 쳐 봐야 알겠지요. 오래 쳤다고 해서 지금도 잘 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 말에 민호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당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몇 번의 경기만으로 사람의 실력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잘 치는 사람도 실수할 수 있었고,
초보자처럼 보이는 사람도 특정한 공에서는 놀라운 판단을 보여 주었다.
태성이 인수에게 물었다.
“오늘 한 게임 하시겠습니까?”
인수는 당구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몸이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네요.”
태성이 민호를 돌아보았다.
“민호 씨도 같이 치시겠습니까?
인수 씨가 오랜만에 경기하는 거라면 가볍게 몸을 풀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민호는 잠시 망설였다.
새로운 사람과 경기를 하는 것은 반가웠지만,
상대가 오랫동안 당구를 쳤다는 말에 마음 한구석이 조금 긴장되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좋을 가능성이 컸다.
예전 같았으면 그 사실부터 의식했을 것이다.
얼마나 큰 점수 차로 질지,
자신의 실수가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민호는 인수를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저도 아직 배우는 중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치겠습니다.”
인수가 웃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만이라 실수가 많을 겁니다.”
두 사람은 당구대 앞에 섰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서로 가볍게 인사한 뒤 뱅킹을 했다.
민호가 먼저 초구를 치게 되었다.
***
첫 번째 공은 민호가 득점에 성공했다.
이어진 공은 수구와 제1적구의 위치가 애매했다.
가능한 경로가 몇 가지 있었지만,
어느 쪽도 확실하게 득점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민호는 당구대 옆에서 각도를 살폈다.
인수는 말없이 기다렸다.
서두르라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민호가 선택한 경로를 미리 평가하지도 않았다.
민호는 한 가지 경로를 선택했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힌 뒤 쿠션을 돌아 제2적구로 이어지도록 두께와 속도를 조절했다.
그러나 수구는 예상보다 길게 움직였다.
제2적구를 비켜 갔다.
민호는 잠시 공의 위치를 살폈다.
속도를 조금 줄였어야 했는지,
처음 선택한 두께가 적절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확실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공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인수의 차례가 되었다.
인수는 당구대에 가까이 다가가 공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수구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어서 제1적구와 제2적구의 관계를 살폈다.
잠시 당구대 옆으로 이동해 다른 각도에서도 확인했다.
그는 곧 자세를 잡았다.
스트로크는 크지 않았다.
큐가 앞으로 곧게 나갔고, 수구는 제1적구를 맞힌 뒤 쿠션을 돌아 제2적구에 닿았다.
득점이었다.
민호는 큐 끝에 초크를 가볍게 문지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좋은 공이네요.”
인수는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좀 따랐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공을 자주 쳤는데, 오늘은 들어갈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인수는 다음 공을 살폈다.
이번에는 득점에 실패했다.
수구가 예상보다 짧게 움직였다.
인수는 공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가 부족했네요.”
그는 아쉬워했지만,
방금 득점에 성공했다는 이유로 다음 공까지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
반대로 실수했다고 해서 급하게 만회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민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인수의 경기에는 익숙함과 낯섦이 함께 있었다.
어떤 공에서는 오래된 감각이 살아났지만, 다른 공에서는 실행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경험이 있다고 해서 모든 판단이 맞는 것도 아니었고,
실수했다고 해서 경험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경기는 계속되었다.
민호는 몇 차례 득점에 성공했지만, 어려운 공에서는 여전히 실수가 나왔다.
인수도 초반에 좋은 공을 보여 준 뒤에는 연속 득점을 이어 가지 못했다.
점수 차는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중반에 인수가 연속으로 두 공을 놓쳤다.
민호에게 기회가 왔다.
그는 조금 전보다 나은 배치에서 공을 선택했고, 득점에 성공했다.
다음 공도 나쁘지 않았다.
민호는 이번에는 앞선 공의 성공에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주의했다.
공의 위치를 살피고,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경로를 선택했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힌 뒤 쿠션으로 향했다.
각도는 적절했지만 마지막에 속도가 부족해 제2적구를 맞히지 못했다.
민호는 입술을 다물었다.
연속 득점을 이어갈 기회였다.
놓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는 큐를 내려놓고 공의 위치를 살폈다.
다음 차례에 인수에게 어떤 배치가 남았는지 확인했다.
수구는 인수가 비교적 편하게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멈춰 있었다.
인수는 당구대에 다가가 한참 공을 살폈다.
그리고 뜻밖에도 민호가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경로를 선택했다.
“저쪽으로 치시는군요.”
민호가 작게 말했다.
인수는 자세를 잡기 전에 대답했다.
“다른 쪽으로도 갈 수 있겠지만, 제가 익숙한 경로라 이쪽을 선택했습니다.”
인수는 스트로크 했다.
수구가 움직였지만 득점에는 실패했다.
공은 제2적구를 비켜 갔고, 수구도 다음 차례에 유리한 위치를 남기지 못했다.
인수는 공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두께가 두꺼웠네요. 다른 경로를 선택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호는 당구대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그 경로가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인수에게는 익숙한 길이었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인수에게 물었다.
“다른 경로보다 그쪽이 편하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인수는 당구대 옆에 서서 설명했다.
“수구가 제1적구에 닿는 두께를 제가 비교적 익숙하게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쪽은 각도가 조금 더 편해 보여도
제 스트로크로는 속도를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고요.”
“그렇군요. 저는 각도만 보고 반대쪽이 더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각도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니까요.”
인수는 잠시 웃었다.
“물론 제가 익숙한 길을 고집하다가 놓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 번 더 비슷한 공이 나오면 다시 생각해 봐야겠지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보기에는 더 쉬운 경로였지만, 인수에게는 실행하기 어려운 경로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인수가 선택한 경로가 반드시 옳았던 것도 아니었다.
당구대 위에는 여러 길이 놓여 있었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선수의 실력과 감각, 그날의 컨디션,
그리고 수구가 멈출 위치까지 고려해 결정해야 했다.
민호는 자신이 아직 그 모든 것을 충분히 살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선택을 이해하려고 질문할 수는 있었다.
***
경기는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이어졌다.
민호가 한 번 앞서면 인수가 따라왔고, 인수가 득점하면 민호도 기회를 잡았다.
두 사람 모두 연속 득점을 이어 가지 못했지만,
어느 한쪽도 경기를 대충 마무리하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 공에서 인수가 득점에 성공했다.
경기가 끝났다.
민호는 점수판을 확인한 뒤 인수에게 인사했다.
“잘 쳤습니다.”
인수도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제대로 경기해 봤네요.”
민호는 웃으며 말했다.
“오래 치셨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어려운 공에서도 어떤 경로를 선택할지 오래 고민하시더군요.”
인수는 큐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예전에는 더 빨리 결정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확신이 잘 안 서더군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항상 좋은 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민호는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도 공을 오래 살펴보곤 했다.
그러나 생각이 길어질수록 판단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결정한 경로를 실행하는 순간까지 의심하면 스트로크가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럼 언제 결정을 내리십니까?”
민호가 물었다.
인수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인지 확인한 뒤에는 결정을 내리려고 합니다.
물론 실제로 쳐 보면 틀릴 때도 있지요.
그때는 결과를 보고 다시 생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큐 케이스를 닫았다.
“그런데 민호 씨는 당구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습니까?”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큐를 잡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그런데 공을 꽤 진지하게 살피시네요.”
민호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아직 잘 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왜 실패했는지는 알고 싶습니다.”
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마음이면 오래 치실 수 있겠네요.
저도 한동안 당구를 못 쳤지만, 다시 시작하니 좋습니다.
잘 맞는 날도 있고 안 맞는 날도 있겠지만요.”
민호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
당구를 오래 쳤다는 사람도 다시 시작할 때는 낯선 부분이 있었다.
잘 치는 사람도 모든 공을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다시 당구대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이기기 위해서만은 아닐 수 있었다.
민호는 이제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해졌다.
***
당구장 안쪽에서는 성철이 정호에게 공의 두께를 설명하고 있었다.
정호는 몇 번 공을 쳐 본 뒤 고개를 갸웃했다.
“설명은 이해한 것 같은데, 막상 치면 생각한 대로 안 됩니다.”
성철이 웃었다.
“그게 당구지요. 설명을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익히는 건 다릅니다.”
정호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도 수구는 예상한 경로에서 조금 벗어났다.
정호는 아쉬워했지만 큐를 내려놓고 공의 위치를 확인했다.
민호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당구장에 들어서기 전에는 당구가 이렇게 많은 판단을 요구하는 운동인지 몰랐다.
공을 맞히고, 쿠션을 계산하고, 속도와 두께를 조절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여기에 점수 차와 상대의 경기 방식,
자신의 심리까지 더해지면 같은 공도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시 당구장에 왔다.
잘 치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려고 왔을 것이다.
오랫동안 치지 못했던 사람은 잊고 있던 감각을 되찾으려고 왔을 것이다.
이제 배우기 시작한 정호는 어제보다 조금 더 잘 치고 싶어서 왔을 것이다.
민호 역시 처음에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증명하는 곳이 될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족하다는 사실 자체가 당구장을 찾지 못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태성이 카운터에서 민호를 불렀다.
“민호 씨, 다음 주에는 저녁 시간에 사람들이 조금 더 모일 겁니다.
가끔씩 같이 치는 분들도 있고, 처음 오시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무슨 모임이라도 있습니까?”
“정식 모임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서로 시간 맞으면 경기하고, 끝나면 이야기 나누는 정도지요.”
태성은 당구장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당구를 치는 방식도 다르고, 실력도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점수에 민감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연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오기도 하지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당구대 앞에서는 다들 같은 공을 치는 거군요.”
태성이 웃었다.
“공은 같아도 그 공을 보는 눈은 다르지요.”
그 말이 민호의 마음에 남았다.
당구대 위의 공은 누구에게나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공을 어떻게 볼지, 어떤 길을 선택할지,
실패한 뒤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는 사람마다 달랐다.
민호는 그 차이를 더 알고 싶어졌다.
“다음 주에도 오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민호는 당구장을 나섰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퇴근길에 이곳을 처음 발견했던 날과 비슷한 시간이었다.
그때는 당구장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달랐다.
아직 실력은 부족했지만, 당구장에 들어가면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공을 치는 사람들,
자신의 실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
때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져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민호는 걸음을 옮기다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현우에게서 새로운 메시지가 와 있었다.
수료생들과 이야기해 보니
교육을 받는 동안 실제로 해 볼 수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더 확인하고 싶어졌다는 내용이었다.
현우는 교육기관에 다시 문의해 보겠다고 했다.
민호는 답장을 쓰기 전에 잠시 생각했다.
이번에도 자신이 아들에게 해 줄 말은 여러 가지였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비교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어떤 자료를 확인해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현우는 이미 스스로 다음에 할 일을 정하고 있었다.
민호는 짧게 답장을 보냈다.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알아보고 나서 네 생각이 어떤지 들려줘.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민호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판단으로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도 필요했다.
물론 그 선택이 언제나 옳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당구에서도 그랬다.
어떤 경로를 선택하든 실패할 수 있었다.
익숙한 길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민호는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제1부에서 그는 당구를 시작했다.
제2부에서는 그 당구대 앞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공을 치는지 알아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호는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지 않다는 사실을
더 자주 확인하게 될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상대의 태도에 실망하고, 자신의 부족함에 답답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민호에게는 다시 당구장으로 돌아갈 이유가 있었다.
이기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아직 모르는 공을 만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 차이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당구대는 하나였지만, 그 앞에 선 사람들의 세계는 하나가 아니었다.
민호는 다음 주에 만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