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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아들이 꺼내 놓은 공

von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 제1부 무너진 큐

### 제6화. 아들이 꺼내 놓은 공

토요일 아침, 민호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현우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아들은 집 근처 카페에서 보자고 했다. 특별한 장소도 아니었고, 오래전부터 자주 가던 곳도 아니었다. 그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민호는 아침을 먹으며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현우에게서 새로운 메시지는 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취업 문제일 수도 있었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돈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민호는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어느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아들에게 먼저 전화해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으니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대신 머릿속에서는 벌써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취업 문제라면 지금까지 지원한 곳과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해 보라고 할 생각이었다. 돈 문제라면 필요한 금액과 사용처부터 확인해야 했다. 진로를 바꾸겠다고 하면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 보자고 할 생각이었다.

민호는 자신이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아들이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면 길을 찾아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살아왔다.

오후 한 시 사십 분, 민호는 집을 나섰다.

카페에 도착해 창가 자리에 앉은 그는 커피를 주문했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까지 십 분이 남아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현우는 약속 시간보다 오 분 늦게 도착했다.

“기다렸어요?”

“아니. 나도 방금 왔다.”

민호는 습관처럼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는 이십 분 가까이 기다렸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현우는 맞은편에 앉아 가방을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기 전까지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앉아 있는데도 대화가 시작되지 않았다.

민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 하려고 했니?”

현우는 컵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어요?”

민호는 질문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궁금하지. 그래서 물어보는 거잖아.”

“그게 아니라요. 제가 요즘 어떤 상태인지, 뭘 고민하는지 그런 거요.”

민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했잖아.”

“제가 먼저 이야기해야만 물어보시잖아요.”

현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따지는 듯한 말투도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어렵게 꺼내는 사람처럼 보였다.

민호는 컵을 내려놓았다.

“그래. 내가 잘 몰랐던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해 봐.”

현우는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취업 준비가 생각처럼 안 돼요. 서류에서 떨어지는 건 이제 익숙해졌는데,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지면 며칠씩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친구들은 하나둘 자리를 잡는데 저는 계속 제자리인 것 같고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취업 시장이 쉽지 않다는 건 안다. 그래도 계속 지원해야지. 이력서도 다시 점검하고, 면접에서 부족한 점이 뭔지 찾아보면 도움이 될 거야.”

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호는 아들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줄 알고 계속 이야기했다.

“지원하는 회사도 너무 좁게 잡지 말고. 처음부터 원하는 조건을 전부 맞추기는 어려우니까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야.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자신감도 떨어질 수 있으니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고.”

그제야 현우가 입을 열었다.

“아빠.”

“응?”

“제가 지금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것 같아요?”

민호는 입을 다물었다.

현우는 컵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도 알아요.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거. 이력서를 고쳐야 한다는 거. 생활 리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요. 인터넷만 열면 그런 조언이 넘쳐나요. 저보다 취업 준비를 오래 한 사람들도 다 비슷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해 주길 바라니?”

민호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답답함이 묻어났다.

현우는 잠깐 숨을 골랐다.

“그냥 제 이야기를 들어 주면 안 돼요?”

민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현우가 원하는 것은 구체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민호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부터 생각했다. 방법을 알려 주고, 위험을 짚어 주고, 더 나은 선택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현우는 그 최선이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았다. 계속 이야기해 봐.”

민호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현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면접에서 떨어진 것보다 더 힘든 건 집에 와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예요. 아빠가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고, 엄마가 걱정할까 봐 별일 아니라고 해요. 그런데 속으로는 계속 내가 부족한 사람인가 싶어요.”

민호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현우는 예전보다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어릴 때는 속상한 일이 생기면 표정부터 달라졌고,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힘든 일이 있어도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민호는 그것을 아들이 성장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아들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아빠는 회사에서 오래 일했잖아요. 승진도 하고, 사람들도 인정해 주고, 그런 과정을 겪었으니까 제가 취업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죠.”

민호의 얼굴이 굳었다.

“누가 별것 아니라고 했니?”

“그렇게 말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제가 힘들다고 하면 늘 해결 방법부터 말씀하시잖아요. 그러다 보면 제가 괜히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민호는 반박하려다가 멈췄다. 자신은 아들을 무시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려고 했고, 아들이 잘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아들은 그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네가 잘됐으면 해서 그러는 거야.”

“알아요.”

현우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빠가 저를 생각하는 거 알아요. 그런데 아빠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실망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말하기도 전에 그건 위험하다, 현실성이 없다,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시니까요.”

민호는 가슴 한쪽이 답답해졌다.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말도 맞아요. 저도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끝까지 들어 보신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현우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민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페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통화를 하며 급히 걸었고,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보며 천천히 걸었다. 모두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민호 자신은 정작 아들이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제대로 묻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럼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뭔데?”

민호가 물었다.

현우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민호는 그 말에 다시 조언을 꺼낼 뻔했다. 확실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를 조사하고, 장단점을 비교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말을 삼켰다.

현우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더 답답해요. 뭘 하고 싶은지도 아직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빨리 결정하라고 해요. 저도 제가 뭘 원하는지 알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 걸 선택해도 잘못될 것 같아요.”

민호는 아들을 바라봤다.

자신도 비슷한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승진에서 탈락한 뒤 부서장이 새로운 역할을 이야기했을 때, 자신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해 온 일들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자신이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더 노력하라는 말이었다.

민호는 그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은 회사에서 그 말을 듣고도 아들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랬구나.”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현우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무슨 조언이 이어질지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민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이번에는 서둘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았다.

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는 요즘 회사에서 어때요?”

민호는 뜻밖의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회사?”

“지난번에 승진이 안 됐다고 했잖아요. 그 뒤로는 어떻게 지내요?”

민호는 대답을 망설였다. 아들에게 자신의 실망을 자세히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걱정할까 봐 그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냥 다니고 있지. 업무도 하고.”

“괜찮아요?”

민호는 습관처럼 괜찮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아들이 방금 자신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떠올랐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현우는 조금 전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괜찮지는 않아.”

현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면 어느 정도는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어. 이유를 물어봐도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도 분명하지 않아.”

민호는 컵을 천천히 돌렸다.

“처음에는 화가 났어. 내가 해 온 일을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도 완전히 정리된 건 아니야.”

현우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민호는 아들이 자신의 말을 끊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자신은 지금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어떤 기분인지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과,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붙잡고 있는 일을 구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현우가 물었다.

“그럼 회사를 그만둘 생각도 있어요?”

“아니. 당장 그럴 생각은 없어. 내가 해야 할 일도 남아 있고, 섣불리 결정하고 싶지도 않아. 다만 예전처럼 무조건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게 됐어.”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도 답답하겠네요.”

그 말에 민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은 해결책을 말하지 않았다. 더 열심히 일하라거나 다른 회사를 알아보라는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답답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그래. 답답하지.”

민호는 작게 웃었다.

“그런데 너도 답답했겠구나.”

현우는 대답 대신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쌓인 서운함이 한 번의 대화로 사라질 리도 없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와는 조금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한참 뒤 현우가 말했다.

“저, 다음 달부터 다른 분야의 교육 과정을 알아보려고 해요. 지금 준비하는 쪽과 완전히 다른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실무적인 일을 배워 보고 싶어요.”

민호는 입을 열려다가 멈췄다.

어떤 과정인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수료한 뒤 취업 가능성은 있는지 묻고 싶었다. 알아봐야 할 것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그 질문부터 꺼내면 아들이 다시 입을 다물 것 같았다.

“그래. 어떤 과정인지 나중에 이야기해 줘.”

현우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반대하지 않으세요?”

“아직 무슨 과정인지도 모르는데 반대부터 할 수는 없지. 네가 왜 그걸 해 보려는지 먼저 듣고 싶어.”

현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작게 웃었다.

“오늘은 아빠가 좀 다르네요.”

“내가 원래 이랬는데 네가 몰랐던 거겠지.”

민호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현우는 웃지 않았다.

“아니요. 아빠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제가 아빠한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민호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두 사람은 두 시간 가까이 카페에 앉아 있었다. 현우는 취업 준비를 하며 겪었던 일들을 조금 더 이야기했고, 민호는 중간에 조언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한 박자 늦추려 했다. 가끔은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고, 현우가 표정을 굳히면 민호는 다시 말을 멈췄다.

완벽한 대화는 아니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카페를 나서기 전, 현우가 말했다.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

“그래. 언제든지.”

현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그런데 아빠, 제가 말할 때 바로 답을 주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까.”

민호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알았다. 노력해 볼게.”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걸어갔다. 민호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곧장 돌아가려던 그는 길목에서 잠시 멈췄다. 태성당구장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아 있었다.

민호는 당구장 문을 열었다.

태성이 계산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렀습니다.”

“한 게임 하시겠습니까?”

민호는 큐를 집어 들었다.

“오늘은 연습부터 하려고요.”

그는 빈 당구대 앞에 섰다. 수구와 두 적구를 놓고 한참 동안 배치를 살폈다. 처음에는 가장 쉽게 득점할 수 있을 것 같은 길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길을 택하면 수구가 쿠션 가까이에 붙어 다음 공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민호는 당구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다른 각도에서 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조금 드러났다. 그렇다고 확실한 답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큐를 잡았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오늘 현우와의 대화도 그랬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무엇이 문제인지 안다고 생각했다. 취업이 어렵고, 계획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떨어진 것이 문제라고 여겼다. 그래서 해결책을 준비했다.

하지만 정작 아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민호는 큐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수구가 지나갈 길을 한 번 더 살핀 뒤 스트로크를 했다.

수구는 제1적구를 맞히고 쿠션을 돌아 나갔다. 두 번째 적구를 향해 움직였지만 마지막 순간 조금 짧게 멈췄다. 득점은 실패였다.

민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곧바로 공을 다시 놓지 않았다. 수구가 멈춘 자리를 살피며 다음에 바꿔야 할 부분을 생각했다.

태성이 옆에서 말했다.

“이번에는 오래 보셨네요.”

“쉽게 보이는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이 정말 좋은 길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길도 살펴보셨습니까?”

“네. 그런데 결국 공은 맞히지 못했습니다.”

태성은 가볍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죠. 오래 본다고 항상 맞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제대로 보려고 한 건 남습니다.”

민호는 수구를 집어 들었다가 당구대 위에 다시 놓았다.

그 말은 당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몰랐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마음을 열었다고 해서 현우의 서운함이 당장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 시작할 수는 있었다.

민호는 다음 공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조금 덜 힘을 주고, 조금 더 천천히 큐를 밀었다.

공이 움직였다.

아직 서툴렀지만, 그는 그 움직임을 끝까지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