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술 취한 고백
von 루시엘 · 2026-10-26
## 8화. 술 취한 고백
밤 아홉 시 십 분.
강태준은 회의실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서류철과 노트북이 놓여 있었고, 맞은편 임원들은 저마다 굳은 표정으로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대표님, 이번 계약은 저희 쪽에서도 상당히 유리한 조건입니다. 상대 회사가 제시한 금액도 시장가보다 낮고, 향후 사업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발표를 마친 임원이 조심스럽게 태준의 눈치를 살폈다.
태준은 서류를 한 장씩 넘겼다.
“이 수치는 누가 계산했습니까?”
“재무팀에서 작성했습니다.”
“근거 자료는요?”
“별도 첨부했습니다.”
“첨부 자료에는 향후 매출 전망만 있고, 실제 비용 산출 근거가 없습니다. 이대로 계약하면 예상보다 손실이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태준은 서류를 덮었다.
“다시 검토하세요. 숫자가 좋아 보인다고 좋은 계약은 아닙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인지부터 판단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오늘 안으로 수정안을 보내 주세요.”
회의가 끝나자 임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준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아침부터 이어진 회의와 계약 검토, 쉴 틈 없이 울리는 전화까지.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 일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버겁게 느껴졌다.
이유는 하나였다.
오늘도 두부참이슬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태준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메시지 창에는 윤서하와 나눈 대화가 남아 있었다.
며칠 전, 서하는 그에게 처음으로 먼저 연락했다.
오늘 회사 일은 잘 끝났어요?
고작 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태준은 그 메시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녀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대전화를 확인하게 됐고, 다음 날에도 그녀에게서 연락이 올까 기대했다.
물론 서하는 그 뒤로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태준은 작게 웃었다.
“쉽지 않네, 윤서하.”
“대표님?”
문 앞에 서 있던 최도윤이 태준을 불렀다.
“아직 안 가셨습니까?”
“가려고.”
“오늘 저녁 약속도 취소하셨고, 집에 가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일정이 있습니다.”
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한잔해야겠어.”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술 말씀이십니까?”
“응.”
“설마 또 그 술집에 가시려고요?”
태준은 대답 대신 웃었다.
도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요즘 정말 이상하십니다.”
“뭐가?”
“예전에는 회의 끝나면 바로 집에 가셨잖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매일 그 술집에 가시고, 일정을 조정하시고, 퇴근 시간까지 신경 쓰십니다.”
“그래서?”
“……혹시 진짜 좋아하시는 겁니까?”
태준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응.”
도윤이 말을 잃었다.
태준은 재킷을 집어 들었다.
“나 간다.”
“대표님!”
“왜?”
“고백은 하셨습니까?”
태준은 문 앞에서 멈췄다.
“했어.”
“그럼 사귀시는 겁니까?”
“아니.”
“왜요?”
태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웃었다.
“그 사람이 아직 나를 못 믿거든.”
도윤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태준은 더 설명하지 않고 회의실을 나섰다.
그는 알고 있었다.
서하가 자신을 밀어내는 이유가 단순히 마음이 없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를 억지로 들춰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언젠가는 그 상처까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밤 열 시.
두부참이슬.
윤서하는 계산대 앞에서 영수증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손님이 유난히 많았다. 단체 손님들이 다녀간 뒤라 테이블마다 빈 술병이 쌓여 있었고, 주방에는 설거지할 그릇이 남아 있었다.
서하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왜 이렇게 바쁜 거야…….”
혼잣말을 하며 접시를 닦던 순간, 문 위의 종이 울렸다.
딸랑.
서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강태준이었다.
“사장님!”
그는 평소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하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은 늦었네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태준이 눈을 크게 떴다.
“네?”
서하는 뒤늦게 입을 다물었다.
아차.
태준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사장님.”
“왜요?”
“저 기다리셨어요?”
“아니요.”
“그런데 오늘은 왜 늦었냐고 물어보세요?”
“그냥 손님이 늦게 오셨으니까요.”
“다른 손님이 늦게 와도 그렇게 물어보세요?”
“…….”
태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너무 늦었네요.”
그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두부김치 하나, 참이슬 하나 주세요.”
서하는 주방으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진짜 말은 잘해요.”
그런데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늘 하루 종일 바빴던 것도, 조금 피곤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태준이 들어오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마치 하루의 마지막에 익숙한 풍경을 확인한 것처럼.
서하는 그 감정을 애써 모른 척했다.
잠시 후.
두부김치와 참이슬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태준은 젓가락을 들었다가 서하를 바라봤다.
“사장님.”
“네?”
“오늘은 저랑 한잔하실래요?”
서하는 눈을 깜빡였다.
“제가요?”
“네.”
“저 일하는 중인데요.”
“그럼 일 끝나고요.”
“싫어요.”
“너무 단호하시네.”
태준은 웃으며 소주병을 들었다.
“그럼 저 혼자 마실게요.”
서하는 주방으로 돌아가려다가 잠시 멈췄다.
오늘따라 태준의 얼굴이 조금 피곤해 보였다.
평소처럼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눈 밑에는 희미한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회사 일 많았어요?”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네. 조금요.”
“밥은 먹었고요?”
“아직 제대로 못 먹었어요.”
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맨날 술만 마시지 말고 밥을 먹어야죠.”
“사장님이 챙겨 주시면 먹을 텐데요.”
“말은 참…….”
서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따뜻한 계란말이 한 접시와 작은 국그릇을 가져왔다.
태준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건 뭐예요?”
“서비스요.”
“정말요?”
“오늘만이에요. 내일부터는 돈 받아요.”
태준은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서하는 시선을 피했다.
“빨리 먹어요. 식기 전에.”
태준은 계란말이를 한입 먹었다.
따뜻했다.
맛도 좋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았던 건, 서하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챙겨 줬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접시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사장님.”
“네?”
“이러시면 제가 착각하잖아요.”
서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착각이요?”
태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장님도 저를 좋아하시는 줄 알겠어요.”
서하의 얼굴이 붉어졌다.
“……밥이나 먹어요!”
태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날 밤,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술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술을 마셨다.
밤 열한 시.
태준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졌다.
서하는 계산대에서 그를 힐끗 바라봤다.
“강태준 씨.”
“네, 사장님.”
“오늘은 그만 마셔요.”
“아직 괜찮은데요.”
“괜찮긴요. 얼굴이 벌써 빨개졌는데.”
태준은 손등으로 자신의 뺨을 만졌다.
“정말요?”
“네.”
“사장님이 보시니까 그런가 봐요.”
“또 시작이네.”
서하는 빈 술병을 치웠다.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더 드시면 안 돼요.”
태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왜요?”
“저 오늘 기분이 이상해요.”
서하는 손을 멈췄다.
평소의 태준이라면 농담부터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목소리는 조금 달랐다.
“무슨 일 있어요?”
태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요.”
그는 물잔을 만지작거렸다.
“회사에서는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이 제 눈치를 봐요. 제가 웃으면 따라 웃고, 제가 화내면 다들 조용해지고.”
서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잘못된 결정을 하면 안 되니까 늘 신중해야 하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 하고…….”
태준은 작게 웃었다.
“그런데 여기 오면 그런 생각을 안 해도 돼요.”
서하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왜요?”
“사장님은 제가 누구든 똑같이 대하시잖아요.”
“그게 뭐가 특별해요?”
“저한테는 특별해요.”
태준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고,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그냥 강태준으로 있어도 되니까요.”
서하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술집 사장일 뿐이었다.
그런데 태준에게는 이 작은 가게가 그런 의미였던 걸까.
“……그럼 여기서는 편하게 있어요.”
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대신 술은 적당히 마시고요.”
태준이 웃었다.
“네. 사장님.”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장님.”
“네?”
“저 진짜 좋아해요.”
서하의 손이 멈췄다.
태준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처음에는 그냥 사장님이 재미있었어요. 제가 장난을 치면 화내시고, 제가 칭찬하면 괜히 시선을 피하시고.”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데 이제는 사장님이 웃으면 저도 기분이 좋아요. 사장님이 힘들어 보이면 신경 쓰이고, 오늘처럼 못 보면 아쉬워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준은 시선을 내렸다.
“저도 이런 제가 조금 낯설어요.”
그가 작게 웃었다.
“원래는 누군가를 이렇게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서하의 가슴이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자꾸 생각나요. 아침에 눈을 떠도 생각나고, 회사에서 회의하다가도 생각나고, 하루가 끝나면 제일 먼저 보고 싶어져요.”
태준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매일 오게 돼요.”
서하는 손에 쥔 행주를 꽉 잡았다.
“……강태준 씨.”
“네.”
“술 취했어요.”
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했다.
“조금요.”
“그럼 오늘 한 말은 내일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네요.”
태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 말은 기억하고 싶어요.”
서하는 숨을 멈췄다.
태준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장님, 저는 사장님이 좋아요.”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장난으로 하는 말 아니에요. 술김에 아무한테나 하는 말도 아니고요.”
서하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고백은 단순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았다.
좋아한다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뻐야 하는데, 서하는 동시에 두려웠다.
자신도 그를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받으면?
또다시 혼자 울게 되면?
그녀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만해요.”
태준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네?”
“그런 말…… 쉽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쉽게 하는 말 아니에요.”
“저는 아직 강태준 씨를 잘 몰라요.”
“알아요.”
“강태준 씨가 저를 좋아한다고 해도, 제가 그 마음을 바로 받아 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니까…….”
서하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저한테 너무 잘해 주지 마요.”
태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자신을 밀어내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뒤에 숨겨진 두려움이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억지로 웃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서하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태준은 그녀를 바라봤다.
“이미 사장님한테 잘해 주고 싶어졌거든요.”
서하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정말 못 말려.”
태준은 조용히 웃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밤 열한 시 삼십 분.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나갔다.
서하는 테이블을 정리한 뒤 태준에게 다가갔다.
“강태준 씨.”
“네, 사장님.”
“이제 집에 가요.”
태준은 고개를 들었다.
“벌써요?”
“벌써가 아니라 열한 시 반이에요.”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돼요?”
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 돼요. 내일 출근해야 한다면서요.”
태준은 아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몸이 조금 휘청거렸다.
서하가 얼른 그의 팔을 붙잡았다.
“어머, 조심해요!”
태준은 그녀의 손을 내려다봤다.
자신의 팔을 잡은 작은 손.
그 손이 따뜻했다.
서하는 그가 균형을 잡자마자 손을 놓으려 했다.
그런데 태준이 조용히 불렀다.
“사장님.”
“……네?”
“잠깐만요.”
서하는 손을 멈췄다.
태준은 그녀의 손을 억지로 붙잡지 않았다.
그저 조금 더 가까이 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오늘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될까요?”
서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태준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아니, 제가 더 있고 싶어서요.”
서하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봤다.
취한 남자의 얼굴에는 평소의 능글맞은 웃음이 없었다.
그저 자신을 조금 더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의 표정이 있었다.
서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조금만이에요.”
태준의 눈이 커졌다.
“네?”
“물 한 잔 더 마시고 가라고요. 그 이상은 안 돼요.”
태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네!”
서하는 물을 가져왔다.
태준은 물을 마시고 의자에 다시 앉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가게 안에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작게 들렸다.
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장님.”
“네?”
“저 내일도 와도 돼요?”
서하는 그를 바라봤다.
평소 같았으면 마음대로 하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그가 내일도 오겠다는 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오지 않는 날을 상상하니 조금 허전할 것 같았다.
서하는 작게 대답했다.
“……와도 돼요.”
태준은 잠시 멈췄다.
“정말요?”
“네. 대신 술은 오늘처럼 많이 마시지 말고요.”
그는 환하게 웃었다.
“약속할게요.”
서하는 그 웃음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자신도 웃고 있다는 사실을.
그날 밤, 태준은 서하의 도움을 받아 가게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잡아 주려는 서하에게 그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했다.
“사장님.”
“왜요?”
“오늘 제가 한 말…….”
서하는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네.”
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내일도 기억할게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준은 택시에 올라탔다.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이 멀어졌다.
서하는 택시가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가게 안으로 돌아왔다.
빈 테이블 위에는 그가 마셨던 물잔이 놓여 있었다.
서하는 물잔을 치우려다가 잠시 멈췄다.
“……좋아한다고.”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강태준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아, 머리야.”
그는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오전 여덟 시였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태준은 이마를 짚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더라.
회사에서 회의했고, 도윤이 잔소리했고, 두부참이슬에 갔고…….
두부김치를 먹었다.
그리고 술을 마셨다.
많이 마셨던 것 같았다.
태준은 침대 옆에 놓인 물을 마셨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최도윤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최도윤] 대표님, 오늘 오전 회의 잊지 않으셨죠? 그리고 어제는 대체 몇 시에 들어가신 겁니까?
태준은 짧게 답장을 보냈다.
[강태준] 기억 안 나.
답장은 즉시 도착했다.
[최도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 서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
자신의 팔을 잡아 주던 손.
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말.
와도 돼요.
태준은 천천히 웃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