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ließen

세 부인을 맞다

von 허균 · 2026-10-03

“꿈에도 생각지 못한 흉적을 만나 목숨이 끊기게 되었구나. 너희는 이놈을 놓치지 말고 내 원수를 갚아라.”

그 말을 끝으로 숨이 끊어졌다.

울동들이 일제히 칼을 빼 들고 달려 나오며 꾸짖었다. “무슨 죄로 우리 형을 죽였느냐! 내 칼을 받아라!”

길동은 차갑게 웃었다. “제 명이 거기까지였을 뿐이다. 내가 어찌 죽였겠느냐.”

울동들은 크게 노하여 칼을 들고 길동에게 달려들었다. 길동도 맞서려 했으나 손에는 한 자 길이의 칼조차 없었다. 형세가 위급해지자 그는 몸을 날려 공중으로 피했다.

그러나 울동은 본디 몇만 년 묵은 요괴였다. 바람과 구름을 부리고 그 조화가 끝이 없어, 수많은 요괴가 바람을 타고 뒤쫓아 올라왔다.

길동은 하는 수 없이 육정육갑을 불렀다. 그러자 공중에서 수많은 신장이 내려와 울동들을 모조리 묶어 땅에 꿇어앉혔다.

길동은 놈들이 쥐고 있던 칼을 빼앗아 울동을 남김없이 베었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 여자 셋마저 죽이려 했다. 그러자 여자들이 울며 말했다.

“저희는 요괴가 아닙니다. 불행히 요괴에게 붙잡혀 왔는데, 죽으려 해도 틈을 얻지 못해 여태 죽지 못했을 뿐입니다.”

길동이 이름을 물으니, 하나는 낙천현 백용의 딸이고 나머지 둘은 정씨와 조씨 집안의 딸이었다.

길동은 세 여자를 데리고 돌아와 백용을 찾아가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백용은 평생 아끼던 딸을 되찾자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천금을 들여 큰 잔치를 열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은 뒤 홍생을 사위로 맞으니, 칭찬하는 소리가 온 고을에 자자했다.

정씨와 조씨 두 사람도 홍생을 청해 사례했다.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저마다 딸을 드려 소실로 삼게 하겠습니다.”

길동은 스무 살이 되도록 부부의 정을 몰랐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세 부인을 맞아 정을 나누니, 그 사이가 아교와 옻칠처럼 굳어 비할 데가 없었다. 백용 부부도 사위를 끔찍이 아꼈다.

이윽고 길동은 세 부인과 백용 부부, 일가친척을 모두 거느리고 제도로 들어갔다.

군사들이 강변까지 마중 나와 먼 길을 무사히 오신 것을 위로했다. 그들은 일행을 호위해 제도 안으로 들어간 뒤 큰 잔치를 벌여 즐겼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 제도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삼 년이 되었다.

어느 날 밤, 길동은 달빛이 좋아 달 아래를 거닐다가 문득 하늘의 별자리를 살폈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리라는 것을 알고 길게 통곡했다.

백씨가 물었다. “낭군께서는 평소 슬퍼하시는 일이 없더니, 오늘은 무슨 일로 눈물을 흘리십니까?”

길동이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불효자요. 나는 본디 이곳 사람이 아니라, 조선국 홍 승상의 천한 첩에게서 난 자식이오.”

“집안의 천대가 심하고 조정에도 나아갈 수 없었소. 대장부로서 그 억울함을 참지 못해, 부모를 하직하고 이곳에 몸을 숨긴 것이오.”

“그래도 늘 부모님의 안부를 그리워했는데, 오늘 하늘을 살피니 아버님의 목숨이 머지않아 다하실 것이오.”

“몸이 만 리 밖에 있어 미처 닿지 못하니, 살아 계실 때 아버님을 뵙지 못하게 되었소. 그것이 슬프오.”

백씨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탄복했다. ‘제 근본을 감추지 않으니 참으로 장부로구나.’ 그러고는 거듭 길동을 위로했다.

그 무렵 길동은 군사를 거느리고 일봉산에 들어가 산세를 살펴 명당을 정했다. 날을 가려 공사를 시작했는데, 좌우의 산골짜기와 무덤 자리를 임금의 능처럼 꾸몄다.

그러고 돌아와 군사들을 불러 일렀다.

“아무 달 아무 날, 큰 배 한 척을 준비해 조선 서강에 와서 기다려라. 부모님을 모셔 올 것이니 미리 알고 거행하라.”

군사들은 명을 받들고 물러가 채비를 했다.

그날 길동은 백씨와 정씨·조씨에게 작별을 고하고, 작은 배 한 척을 재촉해 조선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