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당산의 요괴
von 허균 · 2026-10-03
어느 날, 길동이 부하들에게 일렀다.
“망당산에 들어가 화살촉에 바를 약을 캐 오겠다.”
그러고는 길을 떠나 낙천현에 이르렀다.
그 고을에 백용이라는 만석꾼 부자가 살았다. 아들은 없고 일찍이 딸 하나를 두었는데, 덕과 용모를 두루 갖춘 처녀였다.
물고기가 헤엄치기를 잊고 기러기가 내려앉을 만한 미모에, 달도 숨고 꽃도 부끄러워할 자태였다. 옛 글을 두루 읽어 이백과 두보 같은 문장을 지녔고, 아름다움은 장강에 견줄 만했다.
부덕은 태사를 본받아 말과 행동마다 예절이 배어 있었다. 부모는 그런 딸을 몹시 아껴 좋은 사윗감을 찾던 참이었다.
딸이 열여덟 살 되던 어느 날, 비바람이 크게 일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천둥과 벼락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 난리 통에 백 소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백용 부부는 넋을 잃고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천금을 풀어 사방으로 찾았지만 종적조차 없었다.
백용은 넋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헤매며 방을 붙였다.
‘누구든 내 딸이 있는 곳을 알려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위로 삼고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주겠다.’
한편 길동은 망당산에 들어가 약을 캐고 있었다. 날이 저물자 이리저리 헤매며 갈 곳을 찾지 못했다.
그때 문득 한쪽에서 불빛이 비치고 여러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찾아가 보니, 수백 무리가 모여 뛰놀며 즐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생김새만 사람을 닮았을 뿐이었다.
길동은 수상히 여겨 몸을 숨기고 그 거동을 살폈다. 이 짐승의 이름은 본디 울동이었다.
길동은 가만히 활을 들어 윗자리에 앉은 우두머리를 쏘았다. 화살은 정확히 그 가슴에 꽂혔다.
울동들이 크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길동은 뒤쫓으려 했으나 밤이 이미 깊어, 소나무에 몸을 기대고 밤을 새웠다.
이튿날 동틀 무렵 둘러보니, 그 짐승이 흘린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핏자국을 따라 몇 리를 들어가자 몹시 웅장한 큰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문을 두드리니 군사 하나가 나와 길동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곳까지 왔는가?”
길동이 대답했다. “나는 조선 사람이다. 이 산중에 약을 캐러 왔다가 길을 잃고 여기까지 왔노라.”
그 짐승은 반기는 기색으로 말했다.
“그대는 의술을 아는가? 우리 대왕께서 새로 미인을 얻어 어젯밤 잔치를 벌이고 즐기시던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화살이 날아와 대왕의 가슴에 박혀, 지금 생사를 오가고 계신다. 오늘 다행히 그대를 만났으니, 의술을 안다면 우리 대왕의 병을 고쳐 다오.”
길동이 대답했다. “내 비록 편작 같은 재주는 없으나, 웬만한 병쯤은 어렵지 않게 다스린다.”
군사는 크게 기뻐하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길동을 불러들였다. 길동이 들어가 자리에 앉자 우두머리 짐승이 신음하며 말했다.
“제 목숨이 오늘내일하던 참에, 하늘이 도우셔서 선생을 만났습니다. 부디 좋은 약을 일러 주시어 남은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
길동은 상처를 살펴보고 말했다.
“어려운 병이 아니오. 내게 좋은 약이 있는데, 한 번 먹으면 상처가 나을 뿐 아니라 온갖 병이 사라지고 오래 살아 죽지 않게 되오.”
울동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몸을 삼가지 못해 스스로 화를 불러, 하마터면 저승으로 갈 뻔했습니다. 하늘이 도우셔서 명의를 만났으니, 선생께서는 어서 그 약을 써 주십시오.”
길동은 비단 주머니를 열어 약 한 봉지를 꺼내 술에 타 주었다. 짐승은 그것을 받아 마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뒤틀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너와 원수 진 일도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나를 해쳐 죽이려 하느냐!”
그러고는 제 아우들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