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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을 속이다

von 허균 · 2026-10-03

그 무렵, 절 안에는 잔치에 끼지 않고 홀로 절을 지키던 목공 하나가 남아 있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도적 떼가 창고를 털어 가는 것을 보고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큰일 났다!”

목공은 곧장 절을 빠져나와 합천 관아로 달려가, 숨 돌릴 틈도 없이 외쳤다.

“해인사가 털렸습니다! 도적들이 절 재물을 모조리 가져가고 있습니다!”

합천 원은 크게 놀랐다.

“뭐라?”

그는 즉시 관원을 보내 사정을 알아보게 하는 한편, 관군을 급히 모아 도적을 뒤쫓게 했다.

한편 도적들은 재물을 가득 실은 소와 말을 몰아 산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수천 관군이 먼지를 일으키며 폭풍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도적들은 순식간에 겁에 질렸다.

“따라붙었다!”

“이제 끝장이야!”

“장수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

길동을 원망하는 자들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길동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아직도 내 계책을 모르겠느냐.”

그가 손을 들어 남쪽 큰길을 가리켰다.

“걱정 말고 남쪽 큰길로 가라.”

길동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관군은 내가 북쪽 샛길로 돌려놓겠다.”

그 말을 남기고 길동은 홀로 해인사 법당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승려의 장삼을 걸치고 고깔을 눌러쓴 모습은 영락없는 늙은 중이었다.

곧 관군이 절 가까이 들이닥쳤다. 길동은 일부러 다급한 얼굴로 뛰어나갔다.

“도적들이 북쪽 샛길로 달아났습니다!”

그는 장삼 소매를 휘저으며 북쪽 길을 가리켰다.

“어서 그리로 쫓으십시오!”

관군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눈앞의 노승이 홍길동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관군은 남쪽 큰길을 버리고 북쪽 샛길로 몰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길동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축지법을 써서 순식간에 도적들을 따라잡았다.

길동이 무사히 돌아오자 도적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장수님이다!”

“관군까지 속이다니!”

“천하의 기재로다!”

길동은 그저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그 뒤로 합천 원은 며칠이나 관군을 이끌고 산을 뒤졌지만, 끝내 도적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소문은 금세 퍼져 합천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결국 이 일은 감영에까지 보고되었다.

감사는 크게 놀라 고을마다 급히 방을 붙이고 도적을 수색하게 했다. 그러나 홍길동 무리는 끝내 종적을 드러내지 않았고, 관군만 헛걸음하며 허둥댈 뿐이었다.

며칠 뒤, 길동은 다시 수백 명의 도적을 불러 모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비록 녹림에 몸담고 있으나, 본래 모두 이 나라 백성이다.”

도적들이 말없이 길동을 바라보았다.

“나라가 위태로운 때가 오면 목숨을 걸고 임금을 도와야 한다.”

길동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러니 병법도 익혀 두어야 한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이제 군기와 창고를 손에 넣을 계책이 있다.”

도적들의 얼굴이 굳었다. 길동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약속한 날 밤, 함경감영 남문 밖 능소 근처에 불을 질러라.”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단, 능소 자체는 절대 건드리지 마라.”

“명을 받듭니다!”

길동은 군사를 둘로 나누었다. 한 무리는 능소 근처에 숨어 있다가 불을 지르고, 다른 한 무리는 길동이 직접 이끌었다.

마침내 약속한 밤. 삼경이 되자 능소 근처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하늘까지 붉게 물들였다.

그 순간 길동은 곧장 감영으로 달려가 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쾅! 쾅! 쾅!

“능소에 불이 났습니다! 어서 가서 불을 끄셔야 합니다!”

감사가 잠결에 뛰쳐나와 보니, 과연 불빛이 하늘을 태우고 있었다.

감사는 크게 놀라 급히 군사를 모았다.

“당장 출동하라!”

감영 안은 순식간에 끓는 물처럼 뒤집혔다. 백성들까지 모두 불을 끄러 몰려나가니, 성안에는 노약자들만 남았다.

바로 그때, 길동은 매복해 있던 도적들을 이끌고 감영 안으로 들이닥쳤다.

창고 문이 부서지고, 군기와 곡식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도적들은 질서정연하게 재물을 챙겼다.

그리고 길동은 다시 축지법을 써서, 눈 깜짝할 사이에 산채로 돌아가 버렸다.